[PD의 눈]탄핵, 총선…그리고 풍자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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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바야흐로 풍자와 패러디의 시대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통령 탄핵이라는 기상천외한 상황이 벌어진 뒤 인터넷은 재기발랄하고 신랄한 시사패러디 작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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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강아지 ‘개죽이’로부터 조롱받는 국회의원들 덕분에 ‘물은 셀프’가 새로운 식당문화가 되었고, 건전지는 깽판치기 좋아하는 ‘병렬’연결보다 직렬연결이 여러 사람을 위해 훨씬 득이 된다는 것이 인터넷상의 패러디 작가들에 의해 검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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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현실 앞에서 재주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거친 욕설과 함께 풍자의 욕구를 느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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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관심도 놀랍다. 오늘(4월6일) 하루만도 ytn에서는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헤딩라인 뉴스’의 앵커 이명선 씨 단독 인터뷰가 생방송으로 꽤 긴시간 진행되었고, 문화일보 한 면을 가득 채운 기획기사의 머리제목은 ‘인터넷은 정치풍자의 바다’이다. 각 방송사마다 뉴스건 시사프로그램이건 넘쳐나는 인터넷 풍자의 세계를 다루지 않은 곳은 아마 없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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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주류 매체에서 패러디물을 다루는 방식은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보는 듯하다. 모처럼 신기한 구경거리가 나왔다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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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게 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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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인터넷 풍자물의 홍수 속에서, 시사프로그램pd로서 느끼는 솔직한 심정 중 하나는 부러움이다. 자괴감이다. 용기의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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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의 쓰레기 신문에서 ‘저질’이라며 궁시렁거리고, 선관위와 경찰에서 불법성을 위협하며 체포까지 하는 판이지만, 네티즌들은 꿋꿋하다. ‘에라, 나도 잡아가라’고 되레 덤벼들며, 패러디물을 만들고 퍼나르고 있다. 한 인터넷 사이트 대표는 잡혀갈 걸 대비해서 헬스클럽 회원권도 끊고, 보리밥 적응훈련도 시작할 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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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공중파에서 상상도 못했던 표현의 자유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지켜가겠다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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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우고, 능력 있어서, 듬직한 월급봉투를 챙기는’ 공중파의 인력들이 직접 나서 풍자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생각은 없는 것일까? 품위가 떨어져서? 팩트에 기반한 정론을 구사하고 싶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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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기억하는가? 과거 공중파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종종 패러디물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변죽 두드리기를 계속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하고 싶었지만, 못 한거다. 왜냐구? 솔직히 말하자. 괜히 구설수에 올라 두들겨 맞기 싫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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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그것은 기나긴 상처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독재정권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보도지침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강제 받고, 세상이 바뀌어 이제 좀 자유로워질까 싶으면, 수신료 제도를 빌미로 공영방송의 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그것도 모자라 떼거리로 방송사를 찾아와 물 달라고 생떼 쓰는 국회의원들로부터 받은 깊게 패인 상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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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내가 누구이고, 저널리즘이란 무엇이고,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찾아내기 이전에 지레 겁먹고 주저앉게 만든 치욕스러운 기억과 깊게 패인 상처들. 그것이 지금 한국의 방송판에서 먹고사는 이들이 너나없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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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과 총선. 나는 인터넷 패러디 문화 폭발의 계기가 된 이 사태가 방송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회일 것이라 생각한다. 탄핵정국은 정치판 패거리들의 반발이야 어떻든 전 사회적인 공분에 힘입어 방송의 저널리스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총선은? 더 이상 방송의 표현 방법을 가지고 찍자를 붙을만한 치사하고 저질스러운 인간들이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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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바야흐로 텔레비전에 진정한 풍자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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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 유쾌한 예언을 앞에 두고 한 마디만 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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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여,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혹은 자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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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필/kbs 기획제작국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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