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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범죄 재연 프로그램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위하여

|contsmark0|상황 재연 방식을 도입한 프로그램들이 요즘 아주 많아졌다. 그동안에는 주로 역사 교양물에서 재연을 사용했었고, 때때로 독서 좌담에서 작품의 줄거리를 약식으로 전달하거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처럼 사건 발생과 수사의 진행 개요를 설명하기 위해 극히 부분적으로 재연을 사용했었다. 그러던 것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도입하며 등장한 [경찰청 사람들]과 [119 구조대]가 인기를 끌면서 재연 방식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재연의 대상이 되는 범위는 이제 역사([tv 조선왕조 실록])나 사건·사고([다큐 사건 파일], [공개수배 사건 25시]) 뿐만 아니라, 추억([tv는 사랑을 싣고]), 생활([구두쇠 왕],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인생([성공시대], [사장님 힘 내세요]) 심지어 귀신([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 [토요 미스테리 극장])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다.이처럼 재연 방식이 범람하게 된데에는 까닭이 있다. 상황을 눈앞에 보여줌으로써 설명과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아울러 본격적인 드라마가 갖추어야 하는 구성상의 짜임새와 연기의 세련됨을 충족시키지 않더라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프리미엄 덕택에 큰 공감과 관여를 손쉽게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의 편의성과 전달의 효율성 그리고 시청의 즐거움을 모두 성취시킬 수 있기만 하다면야 프로그램의 격이 조금 떨어진다 한들 재연 방식의 사용을 문제시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작의 편의성과 시청의 즐거움의 동기가 전달의 효율성을 뛰어 넘음으로써 주객이 전도되는 단계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가령 귀신 이야기들의 경우에는 그 분장도 치졸할 뿐더러 “비과학적인 생활 태도를 조장해서는 안된다”는 심의 규정을 염두에 두고 “제보자의 말을 토대로 재구성하였다”고 밝히면서까지 제작하는 것을 보면 리얼리티 양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재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구실일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예 오락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처음부터 진정성을 포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양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문제는 범죄 재연 프로그램의 경우 더 크다. 각종 범죄 수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명분은 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경고와 주의환기이다. 하지만 흉기의 노출이나 잔혹 행위의 상세한 묘사, 액션 활극 장면들까지도 그런 명분에 걸맞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일부 재연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계도의 명분보다 볼거리 오락성에 더 치중한다는 혐의를 버리기 어렵다.이렇게 더 실감나는 볼거리에 대한 추구가 심해지다보면 몇 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아사히 tv의 연출된 집단 성폭행 장면이나, 티베트 취재진의 산소 부족으로 인한 졸도와 낙석 연출 등과 같은 기만으로까지 비화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가령 ‘공개 수배’ 프로그램이 그 사회적 효력을 과시하기 위해 덮치기만 하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는 사건을 소재로 삼으려는 유혹을 제작진들이 절대 받을리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강한 경종을 울리겠다는 사명감은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을 수 없는 재연의 혹은 연출의 사실성과 허구성의 경계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가령 [경찰청 사람들] 이나 [다큐 사건 파일] 등을 보면 사건의 내용이 길게 재연되는데, 가끔 범죄자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상황 요인들이 강조되면서 오히려 그들이 검거되는 순간 어떤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때 범죄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사건 개요가 드라마화하다보면 제작자의 감정이 개입할 소지가 많아지고 결국 허구의 부분이 사실의 부분을 능가하게 되어 시청자에 대한 계도와 주의 환기라는 당초 프로그램의 취지를 벗어날 수도 있다. 물론 범죄자에게도 인격이 있지만 그런 복합적인 면을 프로그램에 모두 담으려면 장르 선택이 달라져야 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드라마가 되려 한다거나, 악당을 영웅시하는 액션 영화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범죄 재연 프로그램이나 공개 수배 프로그램의 공익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재연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항상 고심해야 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공익을 구실로 폭력물을 제작한다는 혐의에 대해 항변하기 어렵다. 100번의 예방 효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모방이 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모방 범죄의 가능성이나 공포감 유발 혹은 폭력에 대한 둔감화 등의 문제제기에 대해 고마운 조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또 공개수배는 비록 그 공익의 효과가 크다 해도 그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해 참회의 기회를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상세한 재연 속에 등장한 그의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사생활 보호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흉악범과 파렴치범을 체포함으로써 재범을 방지하고 보호해야 할 선량한 다수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에 대한 사회적 매장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피해까지 감수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이런 여러 지적들에 대해 범죄 재연 프로그램을 제작할때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고언으로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고발의 기능은 살리되 모방과 인권 침해의 부작용을 없애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수준 높은 범죄 고발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제작진들의 이런 노력을 추동하려면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을 개별 pd가 아니라 방송사 차원에 물어야 한다. 시청률만 높으면 방송위원회로부터 어떤 처벌을 받아도 프로그램이 살아남지만 시청률이 낮으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죽어버리는 풍토에서 pd 개인의 노력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노력하는 pd에게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모든 공은 pd에게 돌리고 잘못은 방송사가 책임지는 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또, 심의의 기준도 더 정교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심의의 한계선 안에서는 제작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모호하고 포괄적인 강령으로는 무한한 제작의 자유와 무한한 비판의 자유가 있을 뿐, 프로그램의 개선은 없다. 그래서 이제 필요한 것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모방과 예방 간의 논쟁이기 보다는 표현의 가능한 한계를 구체화하는 논의라고 생각한다.pd연합회 비평모임정리: 손 병 우|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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