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진땀 나는 공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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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예상 밖의 문제가 공개되는' 공개방송 현장..."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지난 5월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에서 CBS가 릴레이 공개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CBS
지난 5월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에서 CBS가 릴레이 공개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CBS

[PD저널=박재철 CBS PD] 기억이 가물가물한 옛 영화를 떠올리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청산도에서 찍었다는 <서편제>의 유장한 롱테이크 컷이나, <시네마 천국> 키스신 모음 장면에서 흐르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선율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용쟁호투>의 이소룡 같은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나 <식스센스>처럼 구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스토리 역시 망각의 미로에서 영화를 탈출시킨다. 나에게 1994년 작품인 <필라델리피아>는 한 줄의 대사로 소환된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주인공 톰 행크스는 주문처럼 이 대사를 되뇐다. 영화 속 그의 입술을 보면서 나 같은 관객은 “그래, 정말 해결책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기운 내. 행크!”라며 남몰래 그의 대사를 따라한다. 말의 힘은 참 묘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문제에 맞춤한 해결책이 예비 돼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말의 힘은, 독백의 힘은 쉽게 부정 못한다.

‘모든 이념은 회색이다. 저 나무만이 푸르다’(괴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단련시킬 뿐이다’(니체)

한번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런 류의 아포리즘은 신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긴 절망으로부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당면 문제와의 심리적 거리를 만든다. 차분하게 형성된 그 거리로부터 해결책은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곤 한다. 그렇다. 대부분의 해결책은 조급함이나 두려움 때문에 멀어져 간다.

공개방송을 할 때마다 난 이 영화의 대사를 훔쳐와 조용히 읊조린다. '그래,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해결책이 있어!'

공개방송은 혹 ‘예상 밖의 문제가 공개되는 방송 현장’의 준말이 아닐까 싶게 다양한 문제들이 팔색조처럼 펼쳐진다. 작게는 주차에서부터 크게는 출연 사고까지 이런 저런 문제들이 나의 대처능력을 시험하곤 한다.

얼마 전 8시간 릴레이 공개방송을 했다. L사에서 큰 규모의 불꽃축제를 준비 중이었고 그 현장에 라디오 부스를 만들어 연속으로 생방송을 하는 기획이었다. 콘서트 진행이나 중계차 현장 스케치 정도는 여러 차례 했지만 8시간이나 스튜디오가 아닌 외부에서 동료들과 생방송을 제작‧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느 선배는 공개방송에서 아무 문제가 없길 바란다면 그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말하곤 했다. 맞다. 경험상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는 야외 스튜디오 설치 때부터 터져 나왔다.

몇 달 전부터 조율했다고 여겼는데, 주최 측에서 소방법 규정을 들먹이며 스튜디오 설치 반경을 규제하더니 급기야 어디선가 경찰서장이 나타나 일방적으로 철거를 통보했다. 해주기로 했던 전기와 통신망 공급도 현장 관리자가 ‘내가 언제 그랬냐?’는 의아한 표정으로 돌변해 애를 먹이더니, 설상가상 생방에 필수인 방송장비 하나가 전날 작동되지 않아 새벽에 급히 교체를 해야 했다.

MR 체크도 못한 채 라이브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돌아가는 CD를 바라보면서 갑자기 CD가 멈추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표정관리를 했다.

지난 5월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 현장에서 열린 CBS 8시간 릴레이 공개방송 모습.ⓒCBS
지난 5월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 현장에서 열린 CBS 8시간 릴레이 공개방송 모습.ⓒCBS

행사 당일은 밀려드는 인파를 통제하면서 스튜디오 안으로 타고 들어오는 소음을 최소화하는 데 동분서주해야 했고, 현장 위치를 모른다고 연신 전화기를 울려대던 매니저들에게 일일이 응대하며 초대가수를 제시간에 데려와 앉혀야 했다.

백미는 종료 30분 전에 발생했다. 마이크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마이크와 콘솔, 시디플레이어까지 갑자기 아웃이 됐다. 음악도 못 틀고 하나의 마이크에 의지해 진행자와 게스트가 적잖은 방송 시간을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나마 마이크 하나가 어떻게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하마터면 긴 묵음 속에서 제작진의 속이 행사장의 불꽃처럼 하얗게 탔을 순간이었다.

음향, 조명, 영상 등 수십 명의 스태프가 각자 문제 하나씩을 품고 나만을 바라볼 때 “아... 내가 왜 이 짓을 여기서 하고 있나” 내심 자책한다.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마치 예리한 화살촉처럼 여기저기서 날아 들 때마다 의연히 품위를 지키며 하나둘 막아내는 일은 연차가 쌓여도 능숙하지 않다.

쉽지도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도 않을 일들을 매번 좌충우돌하면서 해쳐나가다 보면 순간 이런 생각과 맞닥뜨리게 된다.

“현장은 문제를 내놓을 뿐이고 
나는 해법을 내놓을 뿐이다. 
그게 각자의 일이다. 그뿐이다.”  

독백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갑자기 완성된다. 자연스레 소설가 필립로스의 멋진 독백이 슬그머니 그 뒤를 받쳐준다.

“글쓰기의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다. 
우리는 그저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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