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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오래전 그날'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삶에 대한 관조 돋보이는 작사가 박주연의 노랫말

2018년 5월 23일 '작가사 박주연' 특집으로 꾸민 KBS '불후의 명곡' 방송 화면 갈무리.
2018년 5월 26일 '작가사 박주연' 특집으로 꾸민 KBS '불후의 명곡' 방송 화면 갈무리.

[PD저널=박재철 CBS PD]  “눈에 그려지듯 쓴다.” 묘사에 대한 풀이다. 묘사란 물감이 아니라 말로 그리는 것이다. 언어로 시각화하는 일이다. 

이 묘사에 능한 작사가를 떠올릴 때 박주연이 빠지면 좀 허전하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양손에 쥔 가사들이 적잖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머릿속에서 스틸 컷 몇 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노는 아이들 소리/저녁 무렵의 교정은/아쉽게 남겨진 햇살에 물들고/
메아리로 멀리 퍼져가는/꼬마들의 숨바꼭질 놀이에/ 
내 어린 그 시절/커다란 두 눈의 그 소녀 떠올라/

<가려진 시간 사이로>

방과 후 저녁놀에 물든 교정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정경이 한 눈에 그려진다. 아름답고 평화롭다. 파스텔 톤으로 잔잔히 퍼지는 어린 시절이다. 

풍경묘사 하나로 그때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군더더기 없는 가사다. 유년은 가려진 커튼 뒤에서 넘실대는 햇살을 닮았다. 아련하고 아스라하다. 그 시간 속에 머물기만 할 것 같은 소년은 어느 샌가 사랑에 눈뜬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뭐가 그렇게도 좋았었는지/우리들만 있으면/
너의 집 데려다주던 길을 걸으며/수줍게 나눴던 많은 꿈/

<오래전 그날>

너의 집으로 향하던 두 사람은 그 길 끝에서 등 돌려 나의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 또다시 함께 선다. 헤어지기 싫어 그렇게 또 몇 번을 오고 갔을 어느 봄밤의 길.

달빛 아래에서 조심히 꺼내 나눴던 서로의 꿈. 들뜨기도 했고 비틀 거리도 했던 청춘의 어느 비탈길에서 너와 내가 서성거렸던 숱한 시간들. 그리고 연정(戀情)의 추억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그댈 남겨두긴 싫어/...
이런 생각만으로 눈물 떨구네/
내 손에 꼭 쥔 그대 사진 위로/

<입영열차 안에서>


그의 가사는 많은 경우, 상황 툭 던지며 시작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때’ ‘그곳’으로 청자(聽子)를 데려다 놓고는 한참동안 그 분위기에 머물게 한다. 

입영열차 안, 엄습해 오는 단절감과 내무반을 감싸는 모포보다 두꺼운 외로움, 오래전에 그 공간을 경유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노래는 조용히 불을 지핀다. 

1인칭 시점으로 일기를 쓰듯 써내려간 가사는 과거 내 일기장의 어느 한 페이지를 들춰보는 기분을 들게 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병영생활에도 마침표가 찍힌다. 그러나 마침표는 끝이 아니다. 삶을 묘사할 새로운 문장의 시작을 알릴뿐이다.  
 

어떤 약속도 없는 그런 날엔/너만 혼자 집에 있을 때/ 
넌 옛 생각이 나는지/그럴 땐 어떡하는지/
또 우울한 어떤 날/비마저 내리고/ 
늘 우리가 듣던 노래가/라디오에서 나오면/ 
나처럼 울고 싶은지/왜 자꾸만 후회되는지/ 
나의 잘못했던 일과 너의 따뜻한 마음만 더 생각나/ 

<나와 같다면>

너와 함께 했던 방, 이제는 나 혼자다. 너의 크기만큼 너의 부재로 인해 커진 방. 그러나 난, 큰 쟁반에 담긴 좁쌀만큼 작아져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다. 만남과 이별은 한몸이다. 비는 내리고 약속이나 한 듯, 함께 듣던 익숙한 멜로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후회와 미안함으로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방의 공허함이 내 마음의 공허함과 포개지고 있어야 할 존재가 없어진 그 자리에는 이내 회한과 애틋함이 채워진다. 그렇게 사랑앓이는 혹한처럼 다가오며 긴 성장통을 동반한다. 시간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뭇없이 제 갈 길로 흘러갈 뿐이다.   


언젠가/마주칠 거란 생각은 했어/한눈에 그냥 알아 보았어/
변한 것 같아도/변한 게 없는 너/...  
먼 훗날 또 다시/
이렇게 마주칠 수 있을까/그때도 알아볼 수 있을까/

<사랑이 다른 사람으로 잊혀지네>


회자정리였던가 하니 거자필반(去者必返)이다. 여러 겹으로 굴곡진 인생사 어느 굽이에서 뜻하지 않은 재회는 또 이렇게 예비 돼있던 거다. 헤어지고 난 후에 부질없이 떠올린다. 

언젠가, 어느 자리에선가, 우연히 마주칠 거란 부질없는 생각. 그때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건네야 가장 자연스러울지, 아니, 그보다는 세월이 지나 변한 너를 제대로 알아보기나 할는지... 기우였다. 변한 모습 속에서도 변한 게 없는 너를 금세 찾아내는 나. 

그의 노랫말을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의 서사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만큼 공통분모에 속하는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삼는다. 그리고 하나의 상황 묘사만으로 그 상황을 겪은 이에게 당시의 감정을 추체험하게 한다. 공감을 탑재한 묘사력 덕분이다. 박주연의 가사는 노랫말의 본령인 가사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서도 빛을 발한다. 두 대목만을 꼽아본다.


옛 얘기하듯 말할까/바람이나 들으렴
거품 같은 사연들/서럽던 인연 

<옛이야기>

‘옛 애기하듯 말한다’는 건 어떤 걸까. 대수롭지 않게 꺼내지만, 만만치 않은 내용이 담길 거란 예감이 깃든 말 걸기 방식. 바람에게 이야기하듯 무심히 건네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 바람에 실려 어딘가로, 누군가에게로 전해지길 원하는 마음의 한 자락. 때론 덧없음이 또 때론 애달픔이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직조되어 있을 법하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곱씹어보면 이런 저런 다양한 맛을 함의한 가사다. 

나는 떠날 때부터/다시 돌아올 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 자리/편히 쉴 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그대 그늘에서 지친 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철학은 ‘자기 삶에 거리두기’라고 말하던데, 그는 노랫말을 쓰면서 조용히 삶을 관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젠’이라는 부사가 깨달음의 그 긴 여정을 넉넉히 설명한다. 무언가를 찾아 떠돌기만 했던 나다. 아니 우리들이다.

이젠 ‘국화 옆에서’ 선 시인처럼 떠난 자리로 되돌아와 보니 안보이던 것이 보인다. 성찰의 순간이 찾아온다. 축약컨대, 파랑새는 먼 곳이 아닌 바로 당신 옆에 있다는. 이 사실,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좋으련만. 

처음으로 돌아가 가사를 한 번 더 음미해보니 불쑥 이런 생각이 든다. 파랑새는 출발선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새는 아닐까? 먼 길을 에둘러,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귀환자의 지친 어깨에만 날아와 살포시 앉는 그런 새는 아닐까? 

그러니 ‘이젠’이라는 부사를 쓸 수 있는 헤맴과 방황의 시간은 필수불가결이며, 단숨에 건너 뛸 수는 없는 너비의 강인지도 모르겠다. 노랫말에 삶의 지혜와 희로애락을 세련되게 담을 줄 아는 작사가 박주연. 아름다운 선율에 얹힌 그의 솜씨를 오랫동안 감상해 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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