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방송사 사장 부르는 국회...'언론 독립성' 위태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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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동 KBS 사장 15일 이어 19일도 국회 출석 거부...여야 "KBS 청문회 소집해야"
방송계·언론단체 '총선 앞둔 언론 길들이기' 반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60여 명이 양승동 KBS 사장과 KBS를 규탄하는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PD저널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60여 명이 양승동 KBS 사장과 KBS를 규탄하는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PD저널

[PD저널=이미나 기자] 양승동 KBS 사장이 <시사기획 창>에 대한 국회의 업무보고 출석 요청을 두 차례 거부한 것을 두고 여야가 '청문회 소집'까지 거론하며 KBS와 전면전을 치를 태세다. 언론계 안팎에선 개별 프로그램을 이유로 공영방송 사장을 국회에 세우는 게 언론 독립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양승동 사장은 지난 15일에 이어 1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KBS는 특정 프로그램을 명목으로 공영방송인 KBS 사장이 국회에 출석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훼손할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는 사유를 댔다.

KBS 측의 거듭된 불출석 의사에 자유한국당은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이제 오만을 넘어서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KBS 청문회 요구를 비롯해 통상적으로 가을에 진행되는 결산안 상정을 앞당기자고 제안하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설상가상 18일 KBS <뉴스9>가 일본제품 불매 리포트 중 화면에서 자유한국당 로고를 사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19일 오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60여 명은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한 시간가량 양승동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다. 

<시사기획 창>의 재방송 결방을 둘러싸고 청와대 외압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 달가울 리 없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양승동 사장의 불출석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웅래 과방위원장은 19일 "자칫 KBS 측이 공개적으로 외압 논란을 소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새로운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출석은) 더욱 유감"이라고 말했다.

김성수 의원도 19일 회의에선 "공영방송에 대한 외압 논란이야말로 방송의 자유‧독립과 직결된 일이므로 나와서 의혹을 해소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계에서는 국회가 특정 사안이나 프로그램을 이유로 언론인의 출석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한국방송협회는 18일 "방송프로그램과 관련된 특정 사안의 사실 확인을 위해 공영방송사 사장을 국회에 출석하게 하는 것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저해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방송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훼손을 초래할 수 있는 공영방송 사장에 대한 무리한 출석 요구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 시청자위원회도 같은 날 정례 회의를 마친 뒤 "정치권의 KBS 사장 출석 요구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언론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으니 자제해주시기 바란다"는 의견을 냈다.

언론시민단체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공영방송 길들이기'를 경계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운영되고 있는 여러 제도와 절차들을 무시하고 정부나 정치권이 직접 나서게 되면 공영방송은 정쟁거리로 전락하고, 애써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고 밝힌 데 이어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독립시민행동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특히 방송독립시민행동에서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공영방송 사장을 국회에 불러내는 행태는 정치권력의 방송장악 시도에 다름 아니"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이러한 압박은 공영방송으로 하여금 민감한 사안을 다루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정 사안이나 프로그램을 이유로 방송사 경영진이 출석한 사례가 드물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2013년 국정감사 당시 미래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TV조선과 채널A의 보도본부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이유로 MBC 경영진 등 4명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2016년 MBC 해직 언론인에 대한 언급이 담긴 녹취록 파문으로 백종문 전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증인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채널A 보도본부장을 제외하곤 모두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기관장으로서 업무보고에 출석하지 않은 양승동 사장의 경우와 달리 강제력이 있는 국정감사의 증인 자격으로 출석을 요청받았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사례도 있다.

특히 2013년 국정감사 당시 TV조선 보도본부장의 불참을 놓고 박대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를 갖고 있는 언론인을 국회 증인으로 부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양승동 사장의 국회 불출석을 둘러싼 논란이 '언론은 정치에 종속된 것'이라는 낡은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윤석년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의 공적 기구와 제도를 통해 충분히 논의를 할 수 있음에도 공영방송사 사장이 국가 보안 사안도 아닌 방송 내용과 관련해 국회에 출석해 진술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여야가) 합의한 이유도 모르겠다"며 "아직까지 언론을 정치의 종속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KBS 이사이자 공영방송 연구자인 강형철 숙명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논란이 불거지자 자신의 SNS에 '연구자로서의 개인 의견'임을 전제한 후 "방송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여러 법적 장치가 있고, 심지어 이사회도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며 "총선을 얼마 앞둔 시점에 국회의원들은 명백히 방송보도의 이해당사자이며, 개별 보도 프로그램을 놓고 이해당사자들이 논의하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19일 방송사 경영진에 대한 출석요구를 둘러싸고 문제가 반복되는 만큼 공론화를 통해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김종훈 의원은 "어디까지가 국회의 권한이며 어디부터가 개입인지,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따져봐야 한다. 청문회를 열 것이 아니라 공청회나 시민사회 공론화를 통해 바로잡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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