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망' 귀신들이 머무는 곳, '호텔 델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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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이야기 변형한 tvN '호텔 델루나', 냉소적이고 우울한 세상에 위로 담은 판타지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 현장 포토.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 현장 포토.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흔히 ‘권선징악’이라고 하면 결국은 악당이 무너지고 선한 이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 관점에서 보면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그 권선징악의 지점이 조금 특이하다.

<호텔 델루나>는 선한 이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 죽은 이후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원혼을 풀어주는 이야기다.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을 풀고 ‘이승을 잘 떠났다’로 끝을 맺는다.  

이 구조는 <전설의 고향>과 유사하다.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들은 처음에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하지만 알고 보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존재다. 억울함을 풀고 싶은 귀신들은 누군가에 의해 구원을 받고 비로소 저 세상으로 떠난다. 

<호텔 델루나>는 귀신 이야기의 원형을 가져와 델루나 호텔이라는 특이한 공간을 구현했다. 이 호텔은 실제 구청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지만, 죽은 자들이나 남다른 기운을 가진 자들의 눈에만 보이는 판타지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과 판타지가 적당히 뒤섞인 이곳에서 한을 푼 원귀들은 저 세상으로 향한다. 불교적인 세계관이 엿보이는 설정이다.  

이 세계관을 뒤집어보면 현실의 우울과 절망이 아무런 출구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행복은 현실에서의 존재하지 않고 저편 세상에서 기원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델루나 호텔의 주인인 장만월(이지은)이라는 인물은 지독하게 냉소적이다. 그는 천 년 넘게 그 곳의 고목에 붙잡혀 지내며 천형처럼 억울한 원귀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연민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원귀들을 힐링시켜주는 일에 제 마음을 담지도 않는다. 마치 비즈니스처럼 그 일들을 처리하고 사치를 일삼는다. 그는 아무런 희망을 갖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지만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호텔 앞 고목을 그대로 닮았다. 

그러다가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는 공간에 구찬성(여진구)이라는 연약해보이기만 하는 인간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온기가 생겨난다. 구찬성은 처음에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원귀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치지만, 원귀들이 가진 억울한 이야기들을 들여다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그는 점점 원귀들의 상황에 몰입하고, 진심을 다해 돕는다. 현실에서도 귀신의 세계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던 장만월은 구찬성의 이런 모습들을 보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온 몸을 던져 원귀들을 돕는 구찬성이 자꾸만 신경 쓰이고 위험에 처한 그를 도우며 고목 같은 마음에 잎이 나기 시작한다. 

<호텔 델루나>는 장만월과 구찬성의 기묘한 멜로를 담은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냉소적이고 우울한 세상에 대한 위로도 담고 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이 사후에라도 진실이 밝혀지고 ‘권선징악’의 결말을 갖는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가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건 그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델루나 호텔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때론 공포스럽고 때론 코믹하지만 그 위로의 기운이 조금씩 채워지는 곳이다. 

처음 귀신들의 처참한 얼굴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기만 하던 구찬성이 점점 그들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델루나 호텔은 점점 따뜻해진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장만월과 구찬성의 달달한 멜로에 빠져들었다가, 차츰 그들의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갈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지 않으면 고목 같은 마음에도 잎이 피어날 수 있다. <호텔 델루나>의 판타지에 대중들이 빠져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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