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가십 퍼나르는 언론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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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윤리위, ‘송혜교-송중기 이혼 소문’ 다룬 유튜브 콘텐츠 그대로 옮긴 언론사에 경고
자율규제‧자정 노력 없는 언론, 언론윤리 실종     

송혜교 송중기 이혼 소식을 다룬 언론 보도는 또 한번 황색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줬다. 2016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송혜교와 송중기. ⓒ뉴시스
송혜교 송중기 이혼 소식을 다룬 언론 보도는 또 한번 황색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줬다. 2016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 송혜교와 송중기. ⓒ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의 신뢰와 품격이 바닥인데도 이를 회복하기 위한 가시적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적 지탄을 받을 때마다 새로 만들거나 개정한 언론윤리강령은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권력이 된 언론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빠져 정부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사실조차 무시하는 반저널리즘적 행태를 일삼고 있다. 가십성 연예기사에 대해서조차 품격과 절제를 벗어나 상업적 보도로 눈총을 받는 일은 허다하다.

언론윤리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신문윤리위원회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7월 회의 결과를 공개하고 송혜교와 열애설이 불거진 남성들이 함께 깃발 쓰러뜨리기 게임을 하는 합성사진을 내보낸 조선닷컴 등 9개 매체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경고’ 제재를 했다고 밝혔다. 신문윤리위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개인의 아픔을 희화화한 사진을 실어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엄중한 제재”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29일 “‘송혜교가 만났던 남자들은…’ 강용석 발언에 네티즌 갑론을박”을 내보낸 조선닷컴을 포함해 한경닷컴, 동아닷컴, 머니투데이, 국민일보, 쿠키뉴스, 국제신문, 세계일보, 아시아경제 등 9개 매체가 관련 사진을 보도했다고 한다. 
  
앞서 강용석 변호사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송혜교의 열애설을 언급하며 남성 배우들이 해변에서 깃발 쓰러뜨리기 놀이를 하는 합성 사진을 공개했다. 조선닷컴 등 9개 매체는 강용석 변호사가 생산한 유튜브 콘텐츠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해당 합성사진을 내보낸 게 문제가 됐다. 

신문윤리위는 “남성들이 한데 모여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놀이를 하고 있는 설정 자체가 송혜교를 모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고, 깃대 쓰러뜨리기 놀이 속성상 송중기를 패배 직전의 당사자로 묘사함으로써 ‘송중기가 망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매우 저속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윤리위는 “강용석의 유튜브 채널 인용이라 해도 문제가 있는 발언을 검증 없이 그대로 내보내 게이트키핑을 소홀히 했고 사생활을 마구 들춰 모욕을 준 측면이 있으며, 여배우라는 이유로 성차별적인 시각에서 나온 조롱을 조장하거나 부추겼다”고 밝혔다.

신문윤리위가 경고를 해도 해당 언론사들이 무시하며 그만이고,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특히 멀쩡한 언론사가 일개 개인의 유튜브 채널을 인용하거나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불법적 보도를 자행하고 있는 현실은 아찔하다. 누구라도 걸리기만 하면 언론사의 보도행위를 통해 인권, 개인법익이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국이 과연 법치사회가 맞는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개인의 법익을 무시하고 유린하는 것을 목격한 언론사가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퍼나르고 뉴스로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이는 해당 언론사만 신뢰와 품격을 잃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가치관, 문화가 저속해지는 풍토를 만든다.

개별 언론사 언론윤리강령은 취재, 보도시 준수하겠다는 스스로 만든 행동수칙이다. 모든 언론 선진국이 법이라는 타율적 규제수단으로 언론의 잘못을 단죄하기 전에 언론윤리강령이라는 자율규제에 의존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언론자유가 훼손될 위험성 때문이다.

언론 스스로 윤리강령을 제정, 준수하려는 노력을 통해 법이 개입할 여지를 줄이고 언론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윤리강령만 만들고 실제로는 그 윤리강령을 지키려는 시도조차 하지않을 때 부득이 법은 그 파괴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언론사가 불리해지면 무조건 들고 나오는 ‘언론자유’는 실제로는 국민이 생각하는 언론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과 스마트폰에서 주로 소비되는 뉴스는 단편적이고 흥미위주의 가십거리다. 헛소문, 뉴스의 진위 여부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민감하고 자극적인 내용과 제목일수록 선택받는 반저널리즘적 시대는 미디어 환경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기자들은 뉴스의 품질보다 양으로 승부하고 과장된 제목달기로 미디어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이렇다보니 뉴스와 소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SNS와 언론사의 구분도 무의미해지고 있다. 엄정 중립하게 정파성을 탈피해야 하는 언론사들은 오히려 노골적으로 정파적인 보도를 일삼고 특정정당을 편들기거나 죽이기에 동원되는 모양새다.

‘언론윤리를 지켜달라’고 소리쳐봐야 허망하다. 자율규제는 이미 현장에서 사라져버렸다. 절제와 품격을 잃은 언론보도의 잘못을 법이라는 강제적 수단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살아있는 법만이 빈사상태에 빠진 자율규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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