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쿨 오브 락’, 딴짓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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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5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

[PD저널=정서현 TBN 한국교통방송 경남본부 PD] 2년여 전 ‘취준생’이었던 시절, 한 회사의 자기소개서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지금까지 특별히 몰입했던 일이나 활동, 취미 등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남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소위 ‘덕질’을 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배웠나요?’

‘너의 덕질은 무엇이니?’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여행이라고 대답한다. 배낭가방과 카메라 하나면 몇 날 며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보낼 수 있어서다. 여행으로 거창한 것을 얻으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즐거울 뿐이다.

‘덕질에서 무슨 교훈을 얻니?’라는 질문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지난 11일 한국PD연합가 마련한 국내연수공연으로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을 보는 내내 2년 전에 받았던 그 질문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난 2004년 개봉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오직 명문대 입학만을 목표로 기계 같은 일상을 보내는 호러스 그린의 아이들, 한 달 방값이 궁해 선생님으로 위장했다가 아이들과 록밴드를 만들어 밴드 배틀까지 나가는 괴짜 듀이 핀의 이야기다. 이 말도 안 되는 밴드의 이름은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 음악으로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인 밴드 배틀에서 ‘스쿨 오브 락이 너희에게 록을 가르치리라’고 당당히 외친다.

뮤지컬 속 모든 노래와 연주는 현장에서 라이브로 진행된다. 열 살 남짓 되는 어린 배우들이 실감나는 표정과 노련한 자세로 기타와 베이스, 드럼, 키보드를 연주하고 노래한다. 록 밴드의 음악뿐 아니라 호러스 그린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클래식 풍의 노래까지 선보인다. 이렇게 넓디넓은 음역대의 스펙트럼은 매일 소리로만 두 시간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라디오 PD에겐 꽤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그간 부모들과 엄격한 선생님 밑에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Stick it to the man, 권력자에게 맞서자’고 힘껏 소리칠 땐 눈물이 핑 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밴드 배틀 본선에서 ‘스쿨 오브 락’ 팀이 멋지게 공연을 마무리했다. 극장에 있던 사람들 역시 한 마음 한 뜻으로 각자의 마음 속 권력자를 향해 통쾌하게 소리치는 상상을 했을 테다.

이 와중에 제일 마음이 갔던 등장인물은 보조교사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네드 슈니블리였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데다, 선생으로 위장해 학교에 들어가서 지각과 땡땡이를 밥 먹듯 하는 듀이 핀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네드 슈니블리는 오래 전 듀이와 함께 ‘록 스피릿’을 외쳤던 락커였지만 결혼을 하면서 재능도 없는 것 같고, 돈벌이도 안 되는 록을 접었다. 하지만 네드는 항상 록에 미쳐 있었던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현재의 지긋지긋한 일상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언제든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듯이.

어쩌면 사회생활을 시작한 많은 어른들이 네드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70, 80년대를 빛냈던 가수들이 콘서트 표 예매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지금은 엄마 아빠가 됐지만 한때 전설이었던 90년대 아이돌이 다시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울고 웃는다. 그 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무언가에 미쳐 있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음악뿐 아니라 우리가 젊은 시절 어딘가에 미쳐 있었던 짧지만 강렬한 시간이 각자의 고된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아닌가 생각한다. 호러스 그린의 아이들에게도 ‘스쿨 오브 락’이 그런 게 될 수 있겠지. 언젠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로 가득할 때 버텨낼 수 있는 힘 같은 것 말이다. 나에겐 그게 여행하던 시간과 잘 찍진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사진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2년이 지난 뒤에야 그 자기소개서의 질문에 조심스레 답한다. ‘덕질’을 하면서 뭘 배웠냐고? 뭘 배우긴, 아무런 대가나 교훈이 없어도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설레니까 ‘덕질’인 거지. 그런 질문 할 시간에 빡빡한 학교 수업, 학원 뺑뺑이에 갇힌 애들한테 딴짓 할 겨를이나 만들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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