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지정생존자’, 선한 정치는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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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지정생존자’, 선한 정치는 이길 수 있을까
박무진 대통령 권한대행의 신중한 선택이 낳은 결과는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9.08.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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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종영하는 tvN '60일, 지정생존자'. ⓒtvN
20일 종영하는 tvN '60일, 지정생존자'. ⓒtvN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아마도 미드 원작을 본 시청자라면 tvN <60일, 지정생존자>가 어딘가 답답하다 느꼈을 것이다. <60일, 지정생존자>는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들,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사망한 상황에 대통령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환경부 장관 박무진(지진희)이 60일 간의 권한대행을 맡아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드 원작에서는 지정생존자로서 대통령직을 맡게 된 주인공은 과감하고 신속한 선택들을 해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식으로 해석된 <60일, 지정생존자>는 과감하고 신속한 선택보다는 더뎌도 신중한 선택을 하는 권한대행의 모습을 더 강조한다. 

그래서 다소 지지부진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60일, 지정생존자>는 대중이 가질만한 정치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선한 정치는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정치인은 선함과는 거리가 먼 현실적인 선택들을 하는 인물들로 여겨온 게 사실이다. 국회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드잡이를 하는 모습을 더 많이 봐왔고, 때론 당리당략에 의해 결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지 못한 선택들도 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정치인들은 이런 현실적인 선택들을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야당 대표인 윤찬경(배종옥)은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타협과 파워게임에도 능수능란한 정치인이다. 그는 박무진 권한대행이 대통령이 부고하기 전 환경부 장관직에서 사직될 뻔했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흘려 지지율 상승을 막아선다.

여당의 유력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강상구(안내상) 서울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국회의사당 테러로 국민들이 느끼는 공포심을 이용해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탈북자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몰아세우고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수법을 써서 말이다.  

이런 현실 정치인들의 복마전 같은 정치 공세 속에서 박무진은 연거푸 비서진들이 반대하는 선택들을 한다. 장관직에서 경질될 뻔한 사실을 부인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 탈북자들에게 가해지는 핍박을 멈추기 위해 무리하게도 한주승 비서실장(허준호)을 경질하면서까지 대통령령을 발령한다. 그건 차기 대권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지지율 떨어지는 선택’이지만 박무진은 아랑곳없이 소신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행동에 옮긴다. 

선한 정치를 소신 있게 해나가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은 판타지에 가깝다. 도무지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박무진의 킹메이커를 자처하며 나선 차영진(손석구)이 “선이 이기는 걸 보고싶다”고 말하는 대목은 이를 잘 말해준다. 

동시에 <60일, 지정생존자>는 오영석(이준혁)이라는 정적을 내세워 부적절한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안 되는 이유들을 그려낸다. 저격을 받아 잠시 공석이 된 권한대행 자리를 대행하기 위해 잠깐 대통령의 자리에 앉는 오영석은 하지 말아야할 중대한 선택들을 아무런 자문이나 협의 과정 없이 강행해버린다. 공적인 위치에서 사적인 이익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우리가 지난 정권에서 겪은 ‘국정농단 사태’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60일, 지정생존자>는 우리가 정치에 어떤 판타지와 공포를 갖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정치에 냉소와 무관심을 보내는 이들이 많지만 지난 정부에서 겪은 국정농단 사태는 그런 무관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줌으로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래서인지 <60일, 지정생존자>는 현실에서 발견하기 힘든 박무진이라는 판타지를 내세워 ‘선한 정치’가 이기는 과정들을 담아내고, 그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되는 인물을 박무진이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소 느린 전개와 비현실적인 정치 상황 등의 허점들이 보이지만, 끝까지 지켜보게 만다는 건 바로 선한 정치에 대한 바람과 국정농단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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