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이스북에 지배당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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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 18] '생각을 빼앗긴 세계'
  • 오학준 SBS PD
  • 승인 2019.08.27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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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오학준 SBS PD] 오래된 책을 들춰보는 취미가 있다. 어릴 적엔 이해하지 못했던 유머 코드를 발견하거나 그때는 몰랐던 저자의 세계관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재미있는 건 빗나가버린 예측들을 찾아보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만큼 당대의 사람들이 지닌 낙관과 비관을 함께 엿볼 수 있는 대상은 드물다.

그 오래된 책들 가운데 하나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다. 나의 첫 만화책이기도 한 그의 책 한 구석엔 인터넷 ‘짤방’으로도 유명했던 예측이 나온다. 이 교수는 “네티즌에겐 민족의 구분이 없다”거나 “네티즌의 세계는 진정한 민주주의 세계”라며 인터넷 세계를 낙관한다.

인종‧장애‧성별과 같은 차별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 서로가 하나의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공간, 권위주의적인 정부와 기업이 감추어둔 정보들이 자유롭게 흘러나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공간. 한때 인터넷은 이러한 자유로움을 가져다 줄 구원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인터넷은 우리를 진정으로 통합된 ‘지구촌’으로 이끌었는가. 인종‧계급‧성별‧장애는 인터넷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정체성이 되었는가.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정말로 각자를 위해 자유롭고 올바르게 전달되고 있는가. 아마 오늘날을 사는 그 누구도 이 질문들에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의 저자 프랭클린 포어는 한때 ‘자유’의 상징과도 같았던 인터넷이 어째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 인터넷을 지배하는 거대 ‘테크 기업’들의 창업자들이 공유했던 사상적 기원을 되짚어보며 분석해낸다. 한때는 히피와 해커로 대변되는 ‘반문화’적인 태도로 무장했던 창업자들이, 어떻게 인터넷을 독점시장의 공간으로 만들어갔는지를 짚어보며 저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를 말해주고자 한다.

1960년대, 미국의 경제는 전쟁 이후 점차 윤택해지고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인종차별은 점차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통령과 인권 운동가의 암살로 혼란스러운 사회는 마치 물질문명의 극단처럼 보였다. 이에 일군의 젊은이들은 사랑과 평화, 자유와 화합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문명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징집을 거부하고, 마약을 즐겼다. 이른바 ‘히피’가 탄생하던 시기였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잡지 <홀어스 카탈로그> 역시 이 히피문화의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1968년 출간된 이 잡지는 반문화의 가치들을 테크놀로지와 접목시켰다. 군국주의자들과 거대 기업들의 손에서 테크놀로지를 풀려나게 하여, 인민들의 손에 쥐어준다면 개인들은 더욱 자족적이고 스스로를 더 잘 표현하게 될 것이라 믿었던 그는 마이크로컴퓨터와 컴퓨터 네트워크가 개인의 해방과 공동체의 연결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컴퓨팅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젊은 기술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그 기술자들 중 하나였던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 잡지를 자기 세대의 ‘바이블’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들은 브랜드의 영감을 자신들의 엔지니어적인 충동과 접합시켰다. 그들은 집중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을 꿈꿨고, 동시에 개인들이 소외되지 않고 하나가 되는 지구촌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줄 도구들을 자신들이 만들어나간다고 믿었다. 

프랭클린 포어의 저서 '생각을 빼앗긴 세계'
프랭클린 포어의 저서 '생각을 빼앗긴 세계'

저자가 보기에 이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독점’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협력과 공유를 강조하고, 소외된 이들이 없는 브랜드의 영적인 태도에 대해 기술자들이 그다지 깊게 고민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러한 ‘비전’을 내세우는 도구들은 하나같이 독점의 길로 나아갔고, 그리하여 몽상은 오히려 자본주의 아래에서 거대한 이윤을 창출한 기회가 되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이 인터넷 상의 수많은 정보들을 가르고, 고르게 해주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테크기업’들은 그렇게 독점기업이 됐다. 저자가 보기에 이들 기업은 자신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매진할 뿐,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부작용에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그 비전의 실천을 앞당기기 위해 기존의 제도, 관습, 의무들을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가장 큰 공격의 대상은 언론과 책이다. 특히 언론은 그간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를 1차적으로 가르고 고르는 ‘게이트 키퍼’의 역할을 담당했다. 뉴스는 민주주의 아래에서 의사 결정을 위한 중요한 자료들이었고, 그렇기에 이 자료들은 공정해야만 했다. 이 막중한 책임은 하나의 신화처럼 언론 종사자들과 독자들에게 자리를 잡았고, 그 덕택에 언론은 민주주의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크기업이 점차 커지고, 그 테크기업들을 거치지 않고서 무엇도 네트워크에서 유통되지 않는 오늘날 언론은 그 신화를 감당할 힘과 자원이 없다. 동시에 테크기업들은 이전보다 더 깊숙하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를 투명한 공기처럼 만들고, 사람들이 그 위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게 만든다. 

저자는 이것이 민주주의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라 주장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도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빼앗는다. 윤리적인 책임감 없이 그들은 사용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을 보여줄 용의가 있다. 그 세상이 얼마나 편견으로 가득하든 상관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얼마나 올바른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를 견제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허울 좋은 기술독재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이러한 테크기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두 가지 방향의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독점적 지위를 가진 테크기업들을 적극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책임감 있는 ‘뱃사공’을 육성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전히 드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뱃사공이 필요하며, 사람들은 충분히 이 뱃사공들에게 뱃삯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뱃사공이다. “잊힐 스토리를 자세히 평하는 덧없이 사라질 기사들”이 아닌 보도를 해낼 수 있을까. 올드미디어를 운영하는 이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과연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책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취재도 없이 기사를 쓴다’며 개탄하지도, 그 탄식에 ‘배고픈 현실도 모른다’며 냉소하지도 않을 새로운 모델은 과연 가능할까. 언론이라는 삼단노선의 노잡이는 일단 가라앉지 않기 위해 노를 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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