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밀 누설' 아니라지만 석연치 않은 TV조선 ‘노환중 문건’ 보도
상태바
'수사 기밀 누설' 아니라지만 석연치 않은 TV조선 ‘노환중 문건’ 보도
  •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9.09.02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V조선이 지난달 27일 단독으로 전한 '노환중 문건' 발견 보도.
TV조선이 지난달 27일 단독으로 전한 '노환중 문건' 발견 보도.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알권리’를 내세운 TV조선의 ‘노환중 문건’ 단독보도가 법의 심판대에 섰다. 검찰의 언론플레이에 놀아났는지, TV조선의 주장처럼 ‘공익을 위해 보도할 가치’ 때문에 자체적으로 취재한 보도물인지는 수사 결과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TV조선은 지난 8월 27일 <뉴스9>을 통해 <“대통령 주치의 선정에 깊은 역할” 문건 발견>을 단독 보도했다. 조국 후보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준 노환중 부산의료원장의 컴퓨터에서 “대통령 주치의 선정에 (자신이) 깊은 역할을 했다”는 문건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그날 검찰이 압수수색한 문건에서 나온 내용임을 강조하며 노 원장이 스스로 ‘깊은 역할’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조국 의혹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단연 눈길을 끈 TV 조선의 단독보도는 검찰 관계자가 압수수색 중에 누군가가 흘리기 수법으로 언론에 건네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내용의 은밀성과 취재기자가 접근할 수 없는 사적 정보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문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그만큼 보도에 신중을 기했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박훈 변호사는 보도 이틀 만에 TV조선 보도는 사건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며 서울중앙지검 관계자(신원 불상자)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박 변호사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지방경찰청에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을(성명불상자) 피고발인으로 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우편 발송했다”고 썼다.

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이 조 후보자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한 당일 TV조선이 사건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안을 단독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수사권도 없는 기자가 알아낼 수 없는 정보를 보도한 것은 검찰 내부의 공모자가 있다고 판단해서 고발한 것이다.

TV조선은 30일 오후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내고 검찰 관계자로부터 자료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TV조선은 “TV조선 취재진은 당일 검찰의 부산의료원 압수수색이 종료된 뒤, 부산 의료원 측의 허가를 받아 해당 사무실에 들어가 다수의 타사기자들과 함께 켜져 있는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보도된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더라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먼저, 가장 큰 의문은 TV조선의 주장처럼 검찰 관계자로부터 자료를 받지 않았고 부산의료원 사무실에 들어가 켜져있는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보도된 내용의 문건을 확인했다는 해명이다. 부산의료원이 압수수색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기자들에게 사무실 입장을 허락했는지, 사무실 컴퓨터 내용 확인까지도 허락했는지 등이 확인돼야 한다.

병원이 기자들의 사무실 입장을 허락했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고, 더군다나 압수수색당한 직후 다수의 기자들에게 사무실을 개방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잠시 입장을 허용했더라도 원장실 컴퓨터 내용까지 살필 정도로 취재를 허락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과거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수사 중인 검사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관련 내용을 입수하려다 현행범으로 기자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언론자유’를 내세워 석방되긴 했지만 수사권이 없는 기자가 남의 사무실을 함부로 들어가 공개되지 않은 내용을 빼내는 행위까지는 용인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겼다.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마치 압수수색 나온 것처럼 신분을 위장해 한 가정에 침입, 관련서류를 검찰에 앞서 빼돌렸다가 나중에 법적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합법적 취재가 중요하다는 점을 법치사회는 강조하고 있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TV조선의 주장처럼 부산의료원측의 허가를 받았다면 그 허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허가가 어떤 형태로 명시적으로 있었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또한 다수의 기자들이 함께 켜져있는 컴퓨터를 보았다면, TV조선이 단독보도하는 동안 이들은 왜 보도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TV조선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수사기관이 당일 압수수색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성급하고 자칫 여론몰이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모든 정보가 통제되던 과거 독재사회에서 벗어나 한국은 대부분의 정보가 공개되는 언론자유 선진국이다. 수사기관과 결탁한 보도 관행,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에 동원되던 언론의 구태는 이제 청산해야 할 낡은 문화다.

언론이 수사기관처럼 행세하며 의혹제기 차원을 넘어 압수 문건이라며 먼저 공개하고, 법치사회를 위험에 빠트리는 행위는 언론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언론자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덮기에 한국 언론의 불신은 너무 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