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 제한’ 꺼내든 법무부, 불똥 떨어진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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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사실 공표 제한’ 꺼내든 법무부, 불똥 떨어진 언론   
법무부, 피의사실 공개 금지 훈령 개정 추진...검찰 ‘언론플레이’ 차단   
‘피의사실’ 경쟁적 보도‧수사단계 취재력 집중한 보도 관행 돌아봐야 
 
  •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9.09.16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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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훈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검찰 깃발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 ⓒ뉴시스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훈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검찰 깃발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 ⓒ뉴시스

[PD저널=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준칙이 곧 마련될 것 같다. 그동안 피의사실 공표죄는 사실상 사문화돼 언론은 수사기관이 흘린 피의사실을 받아 보도하는 게 관행이었다. 정부가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과 보도 관행 사이에서 언론도 절충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 왔다. 

법무부는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 공보준칙’을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개정안 골자는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것이다.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은 △중대한 오보나 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범죄 피해의 급속한 확산 또는 동종 범죄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범인 검거나 주요 증거 발견을 위해 국민의 제보가 필요한 경우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기소 전 수사 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할 경우 대검찰청의 감찰을 받는 벌칙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수사 당사자 동의 없인 소환 일정도 공개하지 않고 ‘포토라인’ 관행을 없애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 피의자 입장에서는 정식 재판을 받기도 전에 피의사실이 언론에 공개돼 여론재판을 받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포토라인이 ‘사회적 모욕감’을 주는 식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던 터라 피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방향이다.

그러나 사문화된 피의사실 공표죄가 왜 현시점에서 부활시키는 것인지는 정부의 납득할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이 수사를 받는 상황이라서 피의사실 공표 제한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제도 개선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밀실수사’, ‘봐주기 수사’ 등 수사기관의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일체 금지시켰을 경우 그 부작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도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법무부와 수사기관이 그동안 국민 알권리 충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으며 정보공개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앞다퉈 의혹 수준의 피의사실을 언론이 보도하도록 한 책임은 없는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피의사실을 함부로 언론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반대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피의사실 공개의 한 축을 형성했던 수사기관이 그동안 선별적으로 정보를 유출, 사실상 여론몰이식으로 수사를 한 책임도 가볍지 않다.

문제는 언론이다. 불법인줄 알면서도 수사기관의 흘리기 수법을 단독 혹은 특종으로 포장해서 피의사실을 공표하던 관행은 현재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검찰의 정보를 사실인양 과대포장해 보도해온 언론은 정작 재판 과정에서 이를 뒤집는 정보가 나와도 무시하거나 정정보도를 게을리한 게 사실이었다. 

법무부의 피의사실공표 제한 움직임에 발맞춰 언론도 적어도 세 가지 관행을 바꿔야 한다. 먼저 형사사건에 관한한 ‘특종’ ‘단독’보도를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형사건의 단독보도의 경우 검찰이나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로 나온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된 ‘논두렁 시계 보도’가 대표적인 예다.

또 수사‧기소단계에 집중해온 취재력을 재판과정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게 바람직하다. 수사 시작 단계, 검찰의 말을 마치 사실인양 일방적으로 대서특필하면서 정작 재판에 가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보도 태도는 후진적일뿐만 아니라 인권침해 소지도 상당하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은 기소단계까지 적용되고 법정에 가면 범행내용과 방식 등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 검찰 출입기자보다 법원 출입기자들의 수가 더 많아야 한다고 본다.  

재판부의 법리 적용의 문제점을 따질 수 있는 보도도 이제는 나와야 한다. 한국은 판결문 공개가 여전히 제한적이며 그 내용 또한 이해하기 힘들다. 흔히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검사는 수사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법조출입기자가 판결문을 분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가 얼마나 되는가. 언론의 사법부 감시 역할이 지나치게 검찰에 집중된 것은 아닌지 언론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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