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력 있는 매체니까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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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력 있는 매체니까 믿으라고?
직접 검증하고 평가하는 매서운 이용자들...쏟아지는 정보와 뉴스 속에서 선택 받으려면
  • 허항 MBC PD
  • 승인 2019.10.02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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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갈무리.
싸이월드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갈무리.

[PD저널=허항 MBC PD] 20대 시절 나름 열심히 꾸몄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오랜만에 들어가 봤다. 퍼뜩 궁금해서 충동적으로 들어가 봤는데, 그 당시 올렸던 사진 하나하나, 글 하나하나에 추억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통에 결국 한참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 SNS의 대세는 인스타그램이다. 심심할 때마다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클릭하면,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사진들이 내 눈 앞에 뜬다. ‘인친’들의 근황이나 팔로우하는 브랜드들의 새 콘텐츠, 광고 등 물밀 듯이 밀려오는 사진 정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넘겨보게 된다. 마치 이 정보 저 정보가 정신없이 널린 큰 광장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취사선택할 새도 없이 모든 정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정보의 제공자와 수용자 간의 관계가 인스타그램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미니홈피는, 친구를 맺은 사람의 것이라도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정보를 볼 수 없다. 내 미니홈피도 나의 일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찾아와서 본다. 인스타그램에 비해서는 능동적으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궁금하면 자세히 들여다보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찾아가지 않으면 됐다.

몇 차례의 정치적 사태 이후, 사람들은 무방비하게 널린 정보들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네이버 뉴스화면도 본인이 선호하는 언론사의 기사만 보이고,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은 블로킹한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 놓이다 보니 내게 들어오는 정보들을 능동적으로 취사선택하겠다는 욕구가 싹트는 것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송출되는 방송을 그대로 흡수하는 시청자층은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찾아가서’ 보는 시대가 온 지 꽤 됐다. 심지어 프로그램 안에서도 보고 싶은 부분만 추출해서 보는 것이 대세다. 유튜브도 선호하는 콘텐츠만 구독하는 추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채널들이 불쑥 눈앞에 나타나도, 한 번 훑어보았다가 내 취향이 아니면 가차 없이 차단한다.

콘텐츠 수용자들의 이런 능동적 행보를 이번 ‘조국 사태’로 더욱 확실히 느꼈다. 이제는 주요 방송사나 중앙일간지에서 썼다고 그것을 오롯이 수용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최근 조국 사태와 관련해 MBC, JTBC에서 보도한 내용을 두고 인터넷 커뮤니티는 자체적인 ‘팩트 확인’으로 불타올랐다. 공신력 있는 언론사의 보도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극우 매체발 가짜뉴스들도, 네티즌들의 철저한 확인 작업에 쭈뼛쭈뼛 꼬리를 내렸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현재의 콘텐츠 수용자들은 ‘무작정 들이민다고 해서 다 받아줄 것 같냐’고 외치는 것만 같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한 서초동 촛불집회 드론샷을 보며 일방적인 정보들로 국민들을 호도시키려던 고전적인 정치 수법이 드디어 수명을 다했음 느꼈다. 이제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에 자신을 무방비로 내어놓지 않는다.

예능PD인 나도 이런 흐름을 보며 각성하게 된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여드릴게요’ 하난 시대를 지나 ‘제가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보러 오세요’의 시대다. 한 끗 차이인 것 같지만 엄청난 차이다. 시청자들이 수많은 콘텐츠들 사이를 지나 바로 내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받는다 해도, 재미나 의미를 측정하는 눈이 점점 매서워져 가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일반 대중이 ‘우중(愚衆)’이 아닌 적극적 시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는 고무적이다. 물론 나의 생업은 갈수록 녹록지 않아지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그 무엇도 쉬운 게 없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게시판을 보니 당시 25세의 나도 ‘인생이 녹록지 않다’고 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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