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 무너뜨린 '부마항쟁', 라디오 드라마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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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 무너뜨린 '부마항쟁', 라디오 드라마로 만난다
MBC경남, 부마민주항쟁 40주년 맞아 '79년 마산' 오는 7일 첫 방송
"제대로 된 보도 못했던 MBC 구성원으로 빚을 갚는 심정...'이름 없는' 시위 참여자들 조명됐으면"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9.10.06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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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일부터 방송되는 MBC경남 20부작 라디오 드라마 '79년 마산' 녹음 현장 ⓒ MBC경남
오는 7일부터 방송되는 MBC경남 20부작 라디오 드라마 '79년 마산' 녹음 현장 ⓒ MBC경남

[PD저널=이미나 기자] "다섯 시까지 3·15 의거탑 앞에서 모입시다!" "와!" "싸웁시다!"

성우들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오자 서울 상암동에 있는 작은 녹음실은 순식간에 '40년 전 그날'로 돌아갔다. 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에 저항해 마산 일대의 시민들이 행동에 나선 날이다. 오후 3시께 경남대학교 교정에서 시작돼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이 날의 시위는 훗날 부마민주항쟁(이하 부마항쟁)으로 불리게 된다.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시작해 18일 마산으로 번졌고, 20일까지 이어졌다. 한국 현대사에서 4대 민주화운동으로 꼽히지만,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주목받지 못한’ 역사였으나 지난달 정부가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서 부마항쟁 40돌의 의미가 더욱 뜻깊어졌다.

오는 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오전 8시 30분에 방송되는 MBC경남 <79년 마산>(창원 98.9MHz, 진주 91.1MHz)은 부마항쟁을 생생하게 기록한 20부작 라디오 드라마다.

MBC경남의 정은희·김지현 PD는 지난해 말부터 2019년 40돌을 맞이하는 부마항쟁을 기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고민해 왔다. 상대적으로 남아있는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큐멘터리를 다시 만들기도, 여전히 당시 참가한 시민들의 상당수가 '이름 없는' 장삼이사로 남은 상태에서 허구를 가미해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중 떠오른 것이 라디오 드라마였다.

"방송사에 부마항쟁 당시의 영상이 별로 없어요. 많은 시민들이 밤에 시위를 했고, 얼굴이 드러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가로등을 깼다고 하더라고요. 또 상대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강한 지역이라, (부마항쟁을)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로 여기는 분들이 많아 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라디오 드라마를 떠올렸어요." (김현지 PD)

<79년 마산>은 2009년 막을 내린 MBC의 대표 라디오 드라마 <격동 50년>의 명맥을 잇는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격동 50년>의 이영미 작가가 산더미 같은 자료들을 모아온 두 PD의 열정에 <79년 마산>의 각본을 썼다. 해설을 맡은 김종성 성우, 박정희·김영삼 역의 이상훈 성우, 김재규 역의 유만준 성우 등 <격동 50년>주역들도 뭉쳤다.

이영미 작가는 "MBC 라디오 드라마의 명맥을 잇는다는 책임감을 갖고 모두가 모였다"며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건 10년 만의 일"이라고 말했다. 김현지 PD도 "현실적으로 모든 조건을 떠나 MBC에서 라디오 드라마를 한다는 이유로 기꺼이 모여 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79년 마산>은 당시 뉴스를 통해 노동 탄압·장발 단속·학도호국단 창설 등 유신 시대의 억눌렸던 생활상을 함께 전달하는 데도 신경을 썼다.

오는 7일부터 방송되는 MBC경남 20부작 라디오 드라마 '79년 마산' 녹음 현장 ⓒ PD저널
오는 7일부터 방송되는 MBC경남 20부작 라디오 드라마 '79년 마산' 녹음 현장 ⓒ PD저널

이와 함께 매회 부마항쟁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육성 인터뷰도 전파를 탄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 공단 노동자를 비롯해 그 맞은편에 섰던 진압 경찰, 편의대, 헌병 등 27명이 증언에 나섰다. 최근에야 비로소 부마항쟁 사망자로 인정된 고 유치준 씨의 유족도 <79년 마산>의 마이크 앞에 섰다.

김현지 PD는 "부마민중항쟁기념재단에서 2011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증언집을 훑고, 그 중에서 30분가량을 따로 인터뷰했다"며 "지금이라도 그 분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 인터뷰는 UHD 영상으로도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79년 마산>은 당시 권력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공영방송의 뒤늦은 반성문이기도 하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파출소와 같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신문사와 방송사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지금의 MBC경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 두고 정은희·김지현 PD는 "빚을 갚는 심정"이라고 했다. 김현지 PD는 "당시 보도국장이 기자가 현장에서 녹음해 온 테이프를 빼돌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당시 MBC가)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마산MBC를 불 질러라'라는 구호도 나왔다고 한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털어놨다.

제작진은 <79년 마산>을 통해 청취자들에게 유신 체제의 종식을 알린 부마항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마항쟁 참여자들의 기억 속에서 '구두닦이' '술집 보이' 등으로만 남아 있는 이들이 드라마를 듣고 자신의 이름을 찾길 바란다는 소망도 <79년 마산>에 함께 담았다.

정은희 PD는 "증언집에 나온 분들도, 인터뷰를 해 주신 분들도 모두 자신이 아니라 이름 없는 그 분들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주인공의 자리를 찾으러 와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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