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한글날 특집 '겨레말모이'에 담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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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보배' 겨레말큰사전 제작 과정 담아
말 때문에 차별받는 탈북민 ·조선족...구존동이의 정신 빛나는 '겨레말큰사전'

MBC가 한글날 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로 마련한 '겨레말모이' 방송 화면 갈무리.
MBC가 한글날을 맞아 2부작 다큐멘터리로 마련한 '겨레말모이' 방송 화면 갈무리.

[PD저널=정길화 MBC PD(통일협력사업팀 국장)] ‘겨레말큰사전’은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의 우리말을 집대성하는 사전이다. 이 사전을 궤적을 더듬는 프로그램을 한글날 특집으로 제작을 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날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염무웅)의 정도상 부이사장(당시는 상임이사)을 만났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10일 공덕동에 위치한 사업회 사무실을 찾아 겨레말큰사전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통일방송추진단 소속으로 처음 기획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소설가이기도 한 정도상 상임이사는 1989년 MBC 아침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반전반핵 시민운동을 벌이던 그를 ‘체르노빌 원전사고’ 3주년을 맞아 초대했는데 “핵발전소가 그렇게 좋고 안전하면 여의도나 광화문에 왜 핵발전소를 세우지 않느냐”고 사자후를 통하는 바람에 MBC 간부들이 아연실색한 일이 있었다. 생방송에 출연한 정도상 이사를 본 서울지검 관계자로부터 “시국 수배자가 MBC 생방송에 나울 수 있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일화다.   

이런 인연으로 올해 1월 동사업회와 MBC간에 MOU가 체결되면서 겨레말큰사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회가 MBC에 주어졌다.
 
최근 <경향신문> 원희복 선임기자가 한글날을 맞아 ‘원희복의 인물탐구’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여기에 저간의 사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문익환 목사 북한 방문기를 읽는데 1989년 문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 국어사전을 제안했고 긍정적 대답을 받았다’는 대목을 읽고 ‘이거다’라며 무릎을 탁 쳤다”면서 “소설가 눈에 남북 국어사전이 갖는 의미와 역사가 그려졌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북쪽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남북 통합 국어사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집요한 노력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으로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이 시작했다. 2004년 3월 합의서를 쓰고 2005년 2월 금강산에서 남북공동편찬위원회가 발족했다. 그리고 남북이 각각 공동 편찬사업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MBC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겨레말모이' 방송 화면 갈무리.
MBC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겨레말모이' 방송 화면 갈무리.

'겨레말모이', 겨레말큰사전의 다른 말

이렇게 해서 MBC의 <겨레말모이>는 2부작의 한글날 특집으로 기획됐다. 애초의 기획안에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남과 북의 말이 모이다> 또는 <겨레말, 하나가 되다>였다. 기획을 위한 움직임은 2018년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2019년 1월에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이 프로그램의 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을 배경으로 조선말큰사전 발간의 의미를 조명한 영화다. 자연스럽게 겨레말큰사전은 ‘제2의 말모이’로 자리매김했다. 이윽고 한글날이 다가오고 방송이 임박하면서 좀더 함축적이고 방송적인 제목을 찾는 노력이 계속됐다.

떠오른 제목 후보는 1)겨레말 하나가 되다, 2)겨레말모이, 3)겨레말큰사전 대장정, 4)겨레의 말이 모이다, 5)말모이 뜻모이 힘모이 등이었다. 후보작에서는 '겨레말'과 '말모이'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겨레말과 말모이를 합치면 되겠구나...! 이럴 때엔 집단지성의 힘이 필요하다. 회람을 돌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겨레말모이'에 다수의 의견이 모였다. 

겨레말큰사전에서 '겨레말'을, 말모이(사전의 고유어)에서 '말모이'를 가져와 합친 <겨레말모이>가 방송입말로 입에 잘 붙었다(고 생각한다). 타이틀 디자인에서도 이런 콘셉트를 반영했다. 초록색 2글자 + 파란색 3글자의 디자인 초안을 보고서 겨레말모이의 '말'자에서 색상이 변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겨레말 + 말모이’이기 때문이다. 이는 겨레말큰사전의 다른 표현이다.

제목 후보에 오른 ‘다르다고 하면 안 되갓구나’

다음으로는 1, 2부의 제목을 정해야 한다. 한글날 전후 즉 10월 7일, 14일로 편성이 거의 확정되자 각 부의 제목이 초미의 과제로 떠올랐다. 보도자료도 작성해야 하고 예고 동영상도 만들어야 한다. 제목 없이는 진도가 나갈 수 없는 작업이다. 구성의 뼈대는 다음과 같다. 1부는 큰 틀에서 겨레말큰사전이 왜 필요한지를 느낄 수 있도록 탈북민, 조선족, 고려인 등 여러 곳에서 우리말의 차이와 위계(位階 heirarchy)로 인한 차별적 현상을 보여줬다. 겨레말큰사전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2부는 사전을 어떻게 만들고 장차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즉 겨레말큰사전을 만들면 뭐가 좋은지를 말하고자 했다. 즉 1부는 문제제기, 2부는 솔루션과 비전이다.

1부에는 1)말의 눈물, 2)차이와 차별까지, 3)다른 한국말, 틀린 한국말, 4)왜 겨레말큰사전인가 등이 후보에 올랐다. 2부에는 1)분단에서 통합으로, 2)다시 말이 모이다, 3)겨레말, 다르다고 하면 안 되갓구나, 4)겨레말 하나가 되다 등이 거론됐다. 2부작일 경우 단위 프로그램의 개별 완성도와 1, 2부간의 연속성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각 부의 제목은 프로그램의 흐름을 연결하고 보강하는 탄탄한 로직(logic)이 있어야 한다. 

결국 ‘문제제기 VS 솔루션과 비전’이라는 구도에 맞는 짝을 찾아야 했다. 먼저 1부를 ‘차이와 차별’로 하고 2부를 ‘분단에서 통합으로’와 같이 하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나 너무 논문투로 딱딱하고 규정적이라는 게 단점이었다. ‘다르다고 하면 안 되갓구나’는 재미는 있는데 혹시 진지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까봐 저어스러웠다. 이렇게 해서 1부는 '말의 눈물', 2부는 '다시 말이 모이다'로 정했다. "모든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경험과 집단지성이 녹아 있는 인류 지혜의 백과사전이다. 단순한 팩트가 아닌 세상을 보는 관점과 가치관까지 언어 속에 들어 있다."(조효제, 인권 오디세이). 이런 정신을 지향하는 겨레말큰사전의 현재 공정은 대략 80%(남북공동은 61.5%) 수준이다.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정신 담긴 ‘겨레말’

2005년 금강산에서의 결성식을 가진 뒤 지금까지 25차례에 걸쳐 공동편찬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양측이 사전의 이름을 ‘한국어’도 ‘조선어’도 아닌 ‘겨레말’로 합의한 것은 이 사업을 가능하게 한 정수(精髓)다. 초창기에 정도상 작가가 이를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정신이다. 남북한이 각각의 다름과 실체를 인정한 바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사전에 남과 북 나아가 해외동포의 말까지 담을 수 있게 됐다. 

겨레말큰사전에는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가 삶속에서 사용하는 우리말이 동등하게 표제어로 오른다. 등가성의 법칙이다. “말은 사람들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 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해방 후 비로소 나온 ‘조선말큰사전’의 서문이다. 영화 <말모이>에서 나왔듯, 1945년 9월 서울역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찾아낸 원고로 만든 그 사전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준 거룩한 보배’라는 정신을 잇는 겨레말큰사전은 2022년에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겨레말모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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