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뒤적이고' 싶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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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 내게로 온 날 45]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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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예전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인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뒤적이다’는 ‘이리저리 들추며 자꾸 뒤지다’라는 뜻의 타동사다. ‘몸을 이리저리 방향을 자꾸 바꾸어 눕다’는 뜻의 자동사도 있지만, 대부분 타동사로 써왔던 것 같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뒤적인 적도 있지만, 직업상 자료를 찾기 위해 신문을 뒤적인 적이 많다.

신문보다 인터넷이 밀접한 시대에 문득 인터넷을 ‘뒤적인다’는 말이 맞을지 의심이 걸렸다.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닌 듯하지만, 아무래도 단어의 형성이나 쓰임새에 있어서는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의 대상이 필요하고 의성어가 연상되는 행위가 따른다. 뒤적이는 것은 기억을 헤집는 일이기도 하다. 

가물거리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오 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과 초라한 속죄가
옛이야기처럼 뿌연 창틀의 먼지처럼
오 가슴에 쌓이네
이젠 멀어진 그대 미소처럼
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오 그대여
눈물이 없어도 꽃은 피고 낙엽은 지네
내 남은 그리움 세월에 띄우고
잠이 드네 꿈을 꾸네
(이선희 노래 /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가사 일부)

개인적인 느낌으로 ‘인터넷을 뒤적이다’는 표현은 썩 동의하기 어렵다. 사전에는 ‘인터넷 서핑’이라는 말이 명시돼 있다.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흥밋거리를 찾기 위하여, 인터넷을 통해 여러 웹 사이트를 둘러보는 일’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내가 책상에서 주로 하는 행위는 마우스를 이용한 인터넷 서핑이다. 

‘뒤적이다’와 ‘인터넷 서핑’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 비로소 서문을 시작할 수 있겠다. 수첩을 뒤적여 글감이 될 만한 것을 찾다가 포기하고 인터넷 서핑에 매달리기 시작한 지 며칠 째, 인터넷에는 ‘가짜뉴스’와 흥미를 촉발하는 저급한 제목과 난삽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매겨둔 검색어는 나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은 거의 없다.

연예인들의 결혼, 이별, 이혼, 출산, 유산 등 개인사 일색이고 알고 싶지 않은 이혼 공방과 SNS 속기까지 자세히 전달해준다. TV 드라마나 연예계 소식을 중계 수준으로 친절하게 써주고 어쩌다 연결된 사이트에는 몸매 좋은 여인이 당당하게 웃고 있는 카카오 스토리나 누군가의 럭셔리한 집 자랑이 한창이다. 어느 경우에는 알맹이 없는 기사보다 촌철살인의 댓글 속에 더 많은 정보와 사회적 함의가 담긴 가치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서핑에 서핑을 거듭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4차원 5차원의 세계에 떨어져 있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자각이 들 즈음 마감시간은 초를 다투고 있다. “낚였다”라는 생각이 들 즈음 나의 시간은 인터넷 서핑과 함께 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허무함만 쌓인다. 솔직히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행위가 반드시 생산적이고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백한다. 인터넷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오늘 하루가 지나는 동안 
당신은 얼마만큼 바쁜 척 했었나
쓸데없이 야야야야야야야
오늘 하루가 지나는 동안
당신은 몇 잔이나 커피를 마셨나요
습관적으로
야이야이야이야이야이야
오늘 하루가 지나는 동안
스포츠지 연재만화 몇 번씩 복습했나
보고 또 보고
야이야이야이야이야이야이야
(중략)오늘 하루가 지나는 동안
당신은 얼마만큼 남의 얘기 했었나
쓸데없이 
야야이야이야이야이야
(느티나무언덕 노래 / <자기성찰>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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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인터넷과 사귀긴 해야 하겠으나 요즘 같은 시대엔 도대체 보고 싶은 ‘꺼리’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몇 초 단위로 편집되는 화면과 광고 배치는 얼마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꼭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고 인터넷을 멀리 하고 책을 가까이하기로 결심했다. 아뿔싸! 급격하게 노화된 시력은 독서의 열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돋보기를 쓰고 한두 장 읽으면 어지럽고 멀미인 듯 속이 울렁거렸다. 이래서 어른들은 눈 좋을 때 공부하라고 하신 거지.

어쨌든 인터넷은 일을 하는데 필수적인 동력이고 절대적 의지처이다. 대부분 인터넷을 활용해서 자료를 확보하면 다음은 방송 원고를 작성하고 그 원고를 가지고 스튜디오로 향한다.

현재 내가 맡은 일은 새벽 프로그램과 주말 프로그램이라서 주로 녹음으로 제작하고 있다. 주말 프로그램은 구성상 많은 시간 편집을 필요로 한다. 역시 인터넷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인터넷에 담긴 방송 자료를 받아 그 자료를 편집하는 방식이다. 가끔 녹음기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이메일로 주고받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음질도 좋다.

성우와 일하는 방식도 예전에는 일일이 스튜디오에서 한컷 한컷 녹음했지만 요즘은 원고를 보내주면 녹음해서 이메일로 보내준다. 스튜디오에서 음향 작업을 포함해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섬세한 다큐멘터리 같은 작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튜디오에서 대면 녹음을 한다. 성우와 호흡을 같이하며 디렉팅 하는 것은 느낌상 아날로그처럼 감성의 교류가 충만하다.

같은 문장을 수없이 반복하며 미세하지만 최상의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은, 비록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충만하다. 쉽게 만들어진 것은 어쩐지 정신의 결핍을 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굳이 몸을 혹사해서 무리하게 강수를 둘 필요는 없다.

오래전 나의 방송 멘토이자 스승이신 P 선배는 ‘방송은 강약약 중강 약약’이라고 조언해줬다. 전력 질주하면 금방 탈진하지만 오랜 호흡으로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해서 만사를 쉽게 하는 법은 없으셨다. 방송에 대한 모든 것이 중강 약의 강도에서 시작하였으니 강약의 차이도 사실 크지 않았다. 

하늘에 구름 떠가네 보라색 그 향기도 
이몸이 하늘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곁에 사랑도 가네 빨간 입맞춤도 
시간이 멈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비 맞은 태양도 목마른 저 달도 
내일의 문 앞에 서있네 아무런 미련없이 
그대 행복 위해 돌아설까나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송골매 노래 / <모두 다 사랑하리> 가사 일부)

요즘도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들여다본다. 여전히 많은 시간을 서핑해도 내가 기다리는 ‘그분’이 쉽게 오시지는 않는다. 활자의 습격 속에서 좋은 글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서 개인의 인문학적 소양과 성품의 차이가 드러날 수 있겠지만 요즘은 인터넷 서핑보다 ‘뒤적이는’ 일을 하고 싶어진다.

필요하면 메마른 손끝에 침을 발라가며 읽다가 필요한 문장은 색연필로 줄을 긋기도 하고 좋은 자료는 아예 가위로 오려서 풀칠을 해서 큰 공책에 붙이는, 1차원적이고 아날로그 적인 일을 다시 해보고 싶어진다. 퇴화된 시력이지만 글자와 글자 사이에 눈을 맞추고 행간의 의미를 더듬으면서 작가와 교감하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어진다. 정말 좋은 글은 베껴 쓰기도 하면서, 한 자 한 자 적어가는 그 감흥과 심장의 떨림을 체감하고 싶다. 뭔가를 자꾸 ‘뒤적이고’ 싶은 계절이다. 

하얀 눈이 내려 오직 너만을 난 기다려
골목길에 목도리 두른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네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노래여 잠에서 깨라 노래여 잠에서 깨라
봄이 오는 소리 오직 너만을 난 기다려
땅 위로 싹이 필 때마다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네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노래여 잠에서 깨라 노래여 잠에서 깨라
나비야 훨훨 노래여 날아라
외로운 그대 언덕에 노래여 퍼져라
나비야 훨훨 노래여 날아라
외로운 그대 언덕에 노래여 퍼져라
네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네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들국화 노래/ <노래여 잠에서 깨라>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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