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모던코리아’, 창고에서 탄생한 파격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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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8’ 이어 아카이브 아카이브 활용한 다큐멘터리 실험 
내레이션 없이 영상으로 촘촘하게 쌓은 한국현대사   

KBS가 지난달 31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모던코리아'의 1편 '우리의 소원은'
KBS가 지난달 31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모던코리아'의 1부 '우리의 소원은'

[PD저널=방연주 객원기자] KBS가 다큐멘터리 실험을 벌이고 있다. KBS는 지난달 31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다큐 인사이트-모던코리아>를 통해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모던 코리아>(연출 이태웅)는 KBS 창사 이래 수십 년간 쌓인 아카이브 영상을 이용한 다큐멘터리다.

KBS의 다큐멘터리 실험은 다변화된 매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의 역할과 의미를 환기한다. 지상파 위기론이 팽배한 가운데 공영방송의 누적된 자료들은 기억과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 재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방영 중인 <모던 코리아>는 1980년대를 무대로 삼은 수많은 영상물과 확연히 다르다. 이미 <천하장사 만만세>, <88/18>에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마니아층을 확보한 이태웅 PD의 신작이다.

<모던 코리아> 1부 ‘우리의 소원은’에서는 1989년 평양축전 참가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극적인 변화의 지점을 주목한다. 이를 포착한 KBS 아카이브 자료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시사 개그와 풍자가 두드러졌던 KBS 코미디쇼 <쇼 비디오자키-네로 25시>, <유머 1번지-탱자 가라사대>와 당시 방영된 뉴스 및 드라마 등의 이야기 재료들이 촘촘하게 배열돼 있다.

또 1985년 5·18에 대한 미국 측의 책임을 규탄하기 위해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사태를 벌인 삼민투위의 함운경, 홍성영 등을 비롯해 당시 미 대사관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캐슬린 스티븐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이야기하던 시대적 자료에서는 현재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오는 7일 방영을 앞둔 2부 ‘대망’에서는 한국사회의 경제사를 예고하고 있다. 

이태웅 PD는 지난해 9월에 방영된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88/18>에서도 아카이브를 활용한 다큐를 선보였다. <88/18>에서는 KBS가 보유하고 있는 각종 관련 자료를 교차 편집해 서울올림픽을 다각적으로 바라봤다.

이 PD의 인터뷰에 따르면 KBS 방송 아카이브에서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추려낸 서울올림픽 관련 영상자료는 용량만 15테라바이트(TB)에 달한다. 2시간짜리 테이프가 800개나 되는 분량이다. 방대한 자료의 정수를 뽑아 정리하고, 이를 다시 구성하는 작업을 거쳐 다큐멘터리로 완성했다.

<88/18>에서는 서울올림픽이 주요 소재이지만, 올림픽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서울올림픽을 구심점으로 삼아 한국사회의 여러 층위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한국사회가 ‘올림픽’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징표를 발견해내는 동시에 ‘땡전 뉴스’ 행태를 보이던 당시 KBS 보도 영상도 가감 없이 활용했다. 

이태웅 PD가 지난해 연출한 서울올림핌 30주년 다큐멘터리 '88/18'
이태웅 PD가 지난해 연출한 서울올림핌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88/18'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에 방영된 2부작 <천하장사 만만세>에서도 아카이브의 활용을 찾을 수 있다. <모던 코리아>가 광의적 주제를 다룬다면, <천하장사 만만세>에서는 1980년대의 씨름판에 주목한다. 민속씨름은 1983년 ‘프로’라는 이름을 단 씨름대회로 스포츠 영역에 편입됐다.

당시 씨름대회는 9시 뉴스를 연기할 정도로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씨름은 변화의 기운을 담아낸 축제였지만, 시대적 자화상이었다. 씨름의 인기는 소비문화의 확산, 컬러TV의 등장, X세대의 출현과도 맞물리는 동시에 스타 장사의 퇴장에 따른 양보씨름, 계체승 등 주먹구구식의 운영, IMF의 역풍으로 인한 씨름단 해체 등으로 이어진다.

최근 KBS에선 씨름의 부흥에 힘을 싣고 있다. 화려한 기술 씨름으로 실제 씨름대회가 화제가 되는 상황에 발맞춰 오는 28일부터 스포츠 예능 <씨름의 희열>을 선보인다. 씨름으로 관통하는 현대사를 맛보고 싶다면 예능뿐 아니라 <천하장사 만만세>를 찾아볼 만하다. 

KBS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태웅 PD의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소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두루두루 연결고리를 찾아내 서사를 만들어낸다. 넓은 시야는 인터뷰이 섭외가 한몫한다. 예컨대 <88/18>에서는 제5공화국의 핵심 참모로 잘 알려진 허화평을, <천하장사 만만세>에서는 씨름판을 휩쓸었던 이만기, 이준희뿐 아니라 씨름 캐스터, 최초 씨름만화를 그린 이우정 화백, 가수 김연자, 강헌 문화평론가 등 씨름을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인물을 섭외해 살아 있는 증언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어쩌면 KBS의 아카이브 실험은 시청자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다큐멘터리처럼 여겨질 수 있다. 빠른 호흡의 편집에서 많은 이야기 재료를 퍼즐처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색다른 다큐멘터리의 즐거움은 맛볼 수 있다. 어떤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보다 거리 두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또한 김기조 디자이너의 타이포그라피를 활용한 자막과 DJ 소울스케이프 등과의 음악 작업은 ‘뉴트로 열풍’과도 맞닿아 트렌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낡고, 오래된 것으로 치부된 아카이브가 과거와 현재를 재구성하면서 재탄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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