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보수의 심장', 언론·정당의 낙인찍기"
상태바
"대구='보수의 심장', 언론·정당의 낙인찍기"
대구MBC, 2부작 다큐멘터리 '보수의 섬' 통해 대구 상징 된 보수의 실체 추적
윤창준 PD "40년 동안 문제제기 못했던 지역언론의 반성문이자 자기고백"
  • 이미나 기자
  • 승인 2019.11.18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MBC '보수의 섬' 화면 갈무리 ⓒ 대구MBC
대구MBC '보수의 섬' 화면 갈무리.

[PD저널=이미나 기자] 대구·경북지역은 선거철만 되면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분류된다. 대구MBC는 지난 7일과 14일 2부작으로 방송한 <보수의 섬>을 통해 이 지역에 언제부터 보수색이 덧입혀졌는지, 지역민이 공유하는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지역 방송사의 자기성찰 의미가 담긴 <보수의 섬>에 반응은 뜨거웠다. 대구MBC의 유튜브 채널에도 올라온 1부 영상에는 18일 기준으로 12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구·경북지역 시청자들은 '갑갑한 현실을 제대로 드러냈다'는 감상평을 전했다. '이런 건 전국 방송돼야 한다'는 항의성(?) 댓글이 쇄도하자 2부는 아예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도 공개됐고, 본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담은 비하인드 영상도 순차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보수의 섬>을 만든 윤창준 대구MBC PD는 군 복무 기간을 빼고는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는 대구 '토박이'다. 21년차 PD인 그는 조금 더 나태해지기 전에, 체증처럼 얹혀 있었던 '대구의 보수성'을 끄집어내고 싶어 <보수의 섬>을 기획했다. 

베테랑 PD에게도 대구·경북지역의 뿌리 깊은 인식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판만으로 점철된 방송은 자칫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까 싶어 자기검열에 빠지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이 막막한 이야기를, 지역 언론사가 아니면 어디에서 꺼낼 수 있겠냐는 생각에 다큐멘터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2부 공개를 앞두고 윤창준 PD는 SNS에 올린 글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대구에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상식을 담고자 했다"며 "과거 40여 년 동안 정면으로 '지역주의' '지독한 편견' '보수의 가치'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던 지역언론의 반성문이자 자기 고백"이라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보수의 섬>을 통해 밑바닥 민심을 확인한 윤창준 PD는 지난 15일 통화에서 "대구·경북지역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엔 100% 보수 정당이었던, 간혹 가다 무소속이 한두 명 끼어 있었던" 대구시의회가 지난 지방선거 이후 양당 체제를 갖춘 것이 단적인 예다. 그가 만난 청년층 가운데 정당보단 정책과 인물을 보겠다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확인됐다. 다만 윤 PD는 "총선이나 대선과 같이 규모가 큰 선거에서 대구·경북의 민심이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여전히 물음표"라고 말했다.

다음은 윤창준 PD와의 일문일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대구MBC '보수의 섬'을 만든 윤창준 대구MBC PD와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권해효 ⓒ 윤창준 PD
대구MBC '보수의 섬'을 만든 윤창준 대구MBC PD와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권해효 ⓒ 윤창준 PD

방송에서도 언급되지만, 대구와 경북지역은 오랜 시간 보수의 텃밭처럼 여겨져 온 곳이다. 대구MBC에서 <보수의 섬>을 기획한 배경이 궁금하다. 

"'대구·경북 지역의 보수성'은 이야기하고는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던 해묵은 소재다. 늘 접하고 있지만, 너무 거대한 이야기라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올해 21년차가 됐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그리고 더 게을러지기 전에 이 문제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지역의 언론사가 대구·경북 지역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1편 영상이 올라온 유튜브 채널에 "스스로 힘듦과 어려움을 자처했다"고 적기도 했다. <보수의 섬>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문제에선 이상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점에서 대구·경북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현상을 합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또 수많은 인터뷰이를 만났는데,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을 오래 지지해 온 이들 가운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귀 기울일 만한 논리를 제시하는 인물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이른바 '보수'가 내세우는 건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자신들이 계속 지지해왔던 정당밖에 없다. 그 외에 뭘 또 내세울 수 있는지 정말 듣고 싶었지만 결국 수긍하거나 공감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유승민 의원을 중요한 인터뷰이로 생각했는데, 출연이 불발됐다. '배신자 프레임'의 영향이 크기 때문인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이다. 그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그가 표방하는 '보수'가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보수 안에서 경쟁을 통해 더 나은 보수가 나올 수도 있고. 여러 번 설득했지만 최종적으로 (출연을) 사양했다."

제작 과정에서 자기검열을 한 적도 많았다고 했는데.

"비판만으로 지역의 뿌리 깊은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봤다. 오히려 반감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센 비판은 (방송에 넣지 않는) 자기검열을 했던 것 같다. 수위를 조절해 너무 센 비판은 덜어내고, 그럼에도 한 번쯤은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구·경북을 이렇게 보는구나' 하는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전문가 인터뷰도 풍부하게 담았지만 대학가의 청년들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했던 게 눈에 띄었다. 이들을 만나며 무엇을 느꼈나.

"특히 이 지역 젊은 세대들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안이 별로 없다. 유튜브에 올린 비하인드 영상에도 나오는데 '(보수 정당 후보와) 대적할 만한 대항마를 내놓아야 한다' '꾸준하게 문을 두드려 봐야 한다'는 것인데, 시도가 많지 않다. (18대 총선 당시 대구에서 출사표를 던진) 유시민 전 장관도 '계속 도전하겠다'고 해놓고, 한 번만 나오고 갔지 않나. 그런 데서 오는 허탈감이 있는 것 같았다."

대구MBC '보수의 섬' 화면 갈무리 ⓒ 대구MBC
대구MBC '보수의 섬' 화면 갈무리 ⓒ 대구MBC

대구·경북지역을 지칭하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단어가 3년여 전부터 갑자기 등장했고, 언론이 선거 기간 자주 사용했다는 분석도 내놨다.

"누가, 어떤 이유로 대구·경북지역을 '보수의 심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 등장했고, 언론사를 중심으로 계속 쓰이고 있다. 특히 선거 기간에 이 용어가 사용됐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개인적으로 이 표현에 동의하지 않고, 쓰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각 언론사, 혹은 정당의 정파적 이익에 따라 일종의 낙인을 찍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대구·경북지역은 '보수의 텃밭' '보수의 성지'라는 인식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게 됐다."

<보수의 섬>은 특정 정당에 편향된 지역의 현실이 결과적으로 다양성을 저해하며 지역의 발전도 늦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PD로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나.

"방송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지만, 대구·경북 사람들은 외부의 평가를 너무 모른다. 대구만 떠나 이야기해보면 (다른 지역 사람들은) 대구·경북을 걱정하고 있는데, (한 지역에서) 이동도 없이 같은 그룹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1부 영상에 800개(15일 기준)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이 뜨겁다. 전국 방송에 대한 요구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당황했다.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는 후배가 알려줬는데, 감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해 댓글도 썼다. 대구MBC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국의 시청자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대구MBC의 역사를 보면 최초로 2·28 민주화운동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유시민 당시 18대 총선 후보자의 인터뷰도 하는 등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대구·경북 지역의 보수성이라는) 거대 담론을 다룰 수 있는 건, 과거 그런 부분들을 처음으로 다뤘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 분들에게도 대구MBC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왔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전국에서도 방송되면 좋을 것 같다. 방송을 통해 (대구·경북지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지역에서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제작하면서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도 염두에 뒀을 것 같은데.

"총선이 끝나면 또 (투표) 결과만 남지 않겠나. 그 결과만 전하기보단 총선 이전에 나온 문제제기와 결과, 이후 남은 숙제 등 모든 과정을 (보도국과 연계해) 2년짜리 기획으로 담고 싶었다. 지역방송이 정면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보도국과 논의 결과) 성사되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로 대구·경북 지역은 변화할 수 있을까.

"실제 변화하고 있다. 촛불(혁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동안 시의회·구의회에선 전혀 볼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예전의 시의회는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이 100%였고, 간혹 한두 명 무소속 의원이 뽑히는 정도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양당 체제가 됐다. 구의회에서도 다양한 정당 소속의 의원들이 생겼다. 다만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물음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