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대 입학 포기한 트랜스젠더, 언론 책임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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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어김없이 갈등 부추기고 혐오 장사한 언론...갈등 조정과 대안 제시는 언제쯤

ⓒ 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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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미나 기자] 어쩌면 갈등은 언론의 중요한 자양분이다. 의견의 대립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은 언론이 포착하기 딱 좋은 '그림'이다.

'XX 대 OO', 'OO Vs. XX'와 같은 구도가 기사 제목에서부터 구성에 이르기까지 즐겨 사용되는 건 그래서다. 게다가 193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아직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한국 언론계에서는 '객관성'을 명분으로 이쪽 편과 저쪽 편의 주장을 '반반' '균형감 있게' 담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숙명여대에 합격했으나 입학을 포기한 A씨를 둘러싼 언론 보도를 보면서 내내 찜찜했던 건 전형적인 갈등 보도의 양상이 이번 사건에도 되풀이됐다는 데 있었다.

지난달 말 <뉴시스>를 통해 A씨의 합격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 편에선 그의 입학을 반대한다는 이른바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와 단체의 입장이 기사화됐고, 또 한 편에선 그의 입학을 지지한다는 입장이 맞서 언론에 실렸다. '대학가 공방' '대자보 전쟁' '두 쪽난 여대' 등 갈등을 부각하는 수사도 뒤따랐다. 언론은 A씨를 향한 혐오표현도 실어날랐다. 

혐오와 편견의 시선을 받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가 충돌하는 듯한 보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긴했지만, 언론이 갈등 조정과 공론장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엔 부족하다. 지금의 현실은 2018년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한겨레> 칼럼에서 "거칠게 말하자면, 논란과 갈등을 키워 팔아먹는 '논란 저널리즘' 또는 '갈등 저널리즘'의 수렁에 빠진 것"이라고 진단한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숙대 트랜스젠더 합격생을 둘러싼 갈등을 부각하면서 숙명여대 안에, 혹은 대학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담아낸 언론이 얼마나 있었나. '침묵한 다수'의 의견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면 언론을 통해 수용자가 접해야 했던 것은 의견이 나뉘었다는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이 어떤 사회적 맥락과 의미를 지니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A씨가 입학을 포기한 이후이긴 하지만, 트랜스젠더 혐오 문제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응 모색하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혐오를 실어 나르는 언론의 태도를 지적하고 진지하게 논의의 장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반갑다.

국제기자협회가 2000년 만든 갈등보도 가이드라인에서도 이 같은 원칙이 잘 드러난다.

국제기자협회는 갈등 상황에서 각기 다른 관점을 설정하고 이를 정확하고 균형 있게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대립되는 두 가지 관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또 갈등의 역사를 파헤치고, 개별적인 행위나 결과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보다 광범위한 측면을 조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도 제안한다.

'우리는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계층·종교·성·집단 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9조다.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원론을 외는 것이 불필요하고 비현실적일 수 있겠다.

그러나 생산적이지 않은 갈등을 전하는 일에 '이제 그만'을 외쳐야 할 때다. 혐오표현에 '의견' 혹은 '주장'이라는 이름을 달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일에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언론계 안팎에서 외치는 '언론개혁'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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