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획안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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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쓸 때는 몰랐던 좋은 기획안의 핵심 요소, 명확성과 지속성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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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재철 CBS PD] 좋은 기획안이란 어떤 걸까. 봄 개편을 앞두고 쌓여있는 여러 기획안들을 살펴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기준을 갖고 읽진 않았지만 읽으면서 차츰 기준들이 또렷해진다. ·

기획안 검토는 요즘 후배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기회다. 동시에, 기획안 자체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해보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쓰는 입장이 아닌 읽는 입장에서 보니, 눈에 띄는 기획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은 명확성이다. 기획안은 건축가의 설계도를 닮았다. 집이 어떻게 구현될지 알려면 설계도를 봐야 한다. 설계도를 통해 공간 구성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설계도는 앞으로 세워질 집의 시각화인 셈이다. 좋은 설계도가 그러하듯, 읽는 와중에 제안하는 프로그램이 명료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면 일단 합격점이다.  기획에 고민이 깊어지면서 추상성을 걷어내고 구체성을 얻었기 때문일 테다. 

두 번째로는 지속성이다. 집은 하루 이틀 머무는 호텔 같은 숙박공간이 아니다. 매일 사는 집은 화려하기보다 단순하고 편리하며 실용적인 장소여야 한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안정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포맷과 구성이어야 한다. 소재나 게스트의 고갈이 눈에 보이거나 잦은 녹음 스케줄이 예견되는 진행자를 중심에 놓고 쓴 기획안은 손을 떠나기 쉽다. 데일리 기획을 특집처럼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다음으로는 무차별성이다. 집은 입주하는 이를 제한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채식주의자나 BTS 팬, 육아 주부만을 목적으로 집을 설계하지는 않는다. 이사가 다반사인 주거용 주택에서 입주자의 취향과 상황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와 지상파가 갈리는 지점이다. 한마디로 청취자는 다다익선이다. 기획부터 청취층의 범주를 제한해서 들어가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타깃 청취층을 염두에 두는 것과 청취층을 타깃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앞의 것은 주요 청취층과 함께 다른 청취층도 고려하지만, 청취층을 타깃화하면 다른 청취층을 결과적으로 배제하게 된다. 지상파는 말 그대로 broadcasting이다. 그물을 넓게 던지는 것이 필수일 텐데 스스로를 narrowcasting으로 규정하는 기획안은 현실적으로 론칭이 어렵다.
 
마지막으로는 창의성이다. 설계도와 마찬가지로 기획서 안에서 오리지널리티의 중요성을 짚는 일은 사실 식상하기까지 한 일이다. 천장이 높다거나 비밀 공간이 있다거나 혹은 창문 문양이 독특하거나 채광이 뛰어나다거나 아니면 냉난방 전력소모에 비교우위가 있거나 등등 집의 본질적 요소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건축가의 개성과 특징이 살짝 얹어진 설계도가 좋다. 기획안에서도 차별성을 부여하는 일은 프로듀서의 본업에 속하는 일이 아닐까. 

사실 이 순서는 내가 설정한 가치의 서열이기도 하다. 대체로 기획안을 쓸 때는 창의성이나 실험성을 머리에 놓고 구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읽거나 평가할 때는 그 순서가 역전이 된다. 프로그램 구현 가능성이 어느 순간 제일 중요한 덕목이 된다. 구체적이야 하고 지속가능하게 보다 많은 청취자에 어필할 수 있는 기획안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떡국의 고명처럼 창의적인 측면이 얹어질 때 식욕이 동해 숟가락을 들 듯 기획안 쓴 이를 찾게 된다. 

올해도 예외 없다. 반영도 안 되는 기획안을 왜 매번 머리를 싸매고 써야 하냐는 후배들의 ‘기획안 무용론’. 나름 이런 답을 준비해본다. 여러 기획안을 써보는 일은 투수가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을 만드는 일 아니겠냐고. 스트라이크 존은 한두 번의 시구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그 존 밖으로 향하는 무수한 공들이 있기에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한번 만들면 그 다음부터는 매번 제구력과 정확도 높은 볼을 던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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