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0주년, 반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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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주년, 반성은 없었다
5일 창간 100주년에 "꺼지지 않는 등불 되겠다" '자화자찬'으로 채워
'조선일보' 해직기자들 "독재에 부역하고 민주주의 부정한 역사"
  • 이미나 기자
  • 승인 2020.03.05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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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5일 서울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 창간 100년, 청산해야 할 치욕의 100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5일 서울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 창간 100년, 청산해야 할 치욕의 100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PD저널=이미나 기자] 5일로 창간 10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가 자화자찬으로 100년 역사를 기념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특집기사와 기업 광고로 지면을 빼곡하게 채웠지만, '반민족' 반민주' 역사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사설에서 "폐간까지 겪었던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저항'했던 일화를 거쳐 '민주화' 이후에도 정권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보도에 세무조사로 보복하고 시민단체로 위장한 외곽 단체를 동원해 불매운동, 광고 탄압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양극화된 진영 논리의 무한 충돌만 반복되고 타협의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 상황에서 사실을 찾아 할 말을 하는 언론의 사명은 더욱 중요해졌다"며 "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조선일보는 100년 전 그 춥고 바람 불던 날처럼, 작아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겠다고 다짐한다"고 밝혔다.

또 이날 금광 사업으로 큰돈을 번 뒤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 전 사장의 업적을 전하며 그가 "부호의 의무를 다할 줄 아는 인격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추어올리기도 했다. 애독자들의 축하 기고글과 해외 저널리즘 전문가들의 제언도 실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 같은 '자화자찬' 뒤에는 드러내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은 역사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5일 열린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하 조선·동아 청산 시민행동) 기자회견에서 성완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조선투위) 위원장은 "예상대로 창간 10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는 자기자랑을 늘어놨다"며 "100년이면 적어도 신문을 3만 번은 만들었을 텐데, 그 중 몇 십번의 자랑거리가 왜 없겠나. 그러나 그 나머지, 치욕의 지면들을 만들어 온 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몇 가지 사실로 절대 덮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5일 서울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가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매년 신정에 실었던 일왕 부부의 사진이 담긴 휴지를 전시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5일 서울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가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매년 신정에 실었던 일왕 부부의 사진이 담긴 휴지를 전시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선일보>는 "크고 작은 오보도 있었다"고 뒤늦게 인정했지만, 과오를 씻기에는 한참 모자라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1938년부터 1940년 폐간될 때까지 매년 1월 1일이면 일왕 부부의 사진과 함께 일본 왕실을 찬양하는 기사를 써 왔다. 1937년부터는 일왕의 생일마다 지면을 털어 대대적인 축하 인사를 했는데, 특히 1939년 일왕의 생일을 맞아 쓴 사설은 일왕을 '지존'으로 칭하고, '충성'을 넘어 '극충극성'(충심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을 맹세하기도 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흉행"이라 칭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이날 신문에서 기린 방응모 전 사장 역시 <조선일보>가 1940년 폐간된 뒤 발간한 잡지 <조광>에서 일제 침략에 동조하는 논설 등을 실은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이승만‧박정희 정부에 맞서 저항했다는 <조선일보>의 주장과 달리, 해방 이후 '반민주적' 보도도 도마에 올랐다.

<조선일보>는 4·19 혁명의 시발점이었던 마산 시민들의 시위를 '마산에 일대 소요사건'으로 보도하며 시위대를 폭력집단으로 묘사했고, 이듬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5월 19일자 신문에서 이를 지지하는 사설을 내기도 했다. 1972년 박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 선포를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라 찬양한 것도 빠지지 않는다.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조선일보>는 신군부의 편에 섰다.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달 실은 '전두환 장군 특집' 기사에선 학살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리를 보면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을 가졌으며, “나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5일자 '조선일보'는 방응모 전 사장의 업적을 기리는 기사를 실었다. ⓒ 조선일보
4일자 '조선일보'는 '김일성 사망 보도' '현송월 총살설 보도'가 오보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기사를 실었다. ⓒ 조선일보

조선·동아 청산 시민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일제시대 이래 그들(<조선일보>)이 끊임없이 추구해온 것은 '특권'이며 '권력'이었다"며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느냐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을, 사실과 진실을 비틀어 여론을 오도해 왔다"고 비판했다.

오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도 "1987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운동을 <조선일보>가 어떻게 왜곡했는지,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 국면에서 <조선일보>가 재벌의 편에 서 이를 어떻게 폄하했는지 잘 봐왔다. 2019년에도 <조선일보>의 왜곡된 기사가 일본의 극우 언론에 재생‧반복된 역사가 있다"며 "그럼에도 아직도 자신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몇 가지 오보를 냈다고 '반성 코스프레'를 하는 비극적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지난해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문제로 한일 갈등이 격화되던 때, <조선일보>가 일본어판 신문에서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라는 기사를 싣는 등 여전히 왜곡된 보도를 이어오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선일보>는 '빨리 포기하라'고 했다. 일제 식민지 통치 하에 그들이 벌였던 친일행각을 지금도 계속한 것"이라며 "<조선일보>가 그대로 이 나라의 주류 언론으로 행세하겠다면 일제 강점기 친일에 부역한 것과 (건국 이후) 독재정권에 부역한 것 정도는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된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둬두려는 <조선일보>의 시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75년 독재 정권에 맞서다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조선투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조선투위는 <조선일보>가 어떤 언론사인지를 말해 주는 살아있는 '증인'"이라며 "언론의 생명인 '언론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대량 해직시켜 언론 현장에서 추방했던 언론사가, 독재에 부역하면서 민주주의를 부정했던 언론사가 한 마디의 사죄도 없이 감히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형태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지금이라도 조선투위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일보> 기자들이 스스로 <조선일보>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완표 위원장 역시 "치욕의 100년 역사를 청산하자는 우리들의 외침이 <조선일보> 내부에도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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