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재학 PD는 도처에 있다"...방송계 비정규직 52.4% '임금체불' 경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 노동환경 실태조사...응답자 62.8% "불이익 받을까봐 문제제기 못해"
"모두가 알면서 외면하고 있었던 일...국회, 정부 나서야"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 회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임금체불, 장시간노동, 직장 괴롭힘의 심각성을 알리는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 회원들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임금체불, 장시간노동, 직장 괴롭힘의 심각성을 알리는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윤정 기자]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임금체불과 모욕 등의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은 주 68시간 이상 일하고 있으며, 1주 100시간 이상 일한다고 응답한 이들도 적지 않아 많은 방송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는 것도 확인됐다.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는 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프리랜서(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청주방송에서 14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다 해고된 이재학 PD의 사망 이후 꾸려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 위원회’는 지난 3월 11일부터 19일까지 프리랜서 방송계 종사자 1,1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4.3%가 근로계약도 체결하지 않고 일하고 있으며, 4대보험·연차휴가·시간외수당·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에서 규정된 노동자의 권리를 적용받고 있다는 대답은 모두 10%에 채 미치지 못했다.

임금 체불을 경험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응답자의 52.4%에 달해 방송 노동 현장의 임금 체불이 상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 중 62.8%는 임금 체불에 대응하지 못했고, 그 이유로는 ‘불이익이 우려돼 문제 삼지 않음’(32.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응답도 30.22%에 달했다. 이들이 받은 불이익으로는 무급휴직(무급휴가)가 가장 많은 35%를 기록했고, 보호 장비 미지급과 재택근무 거부(22.9%), 보수 삭감(17.3%), 해고(13.25%) 순으로 답했다.

장시간 노동, 밤샘 노동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로는(복수 응답 가능)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업계 분위기'(53.11%)를 가장 많이 골랐고, '빠듯한 제작 일정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51.89%), '제작비 부족으로 인한 인력 부족'(35.2%),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고용 형태'(32.03%) 등도 지목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영기 한국방송스태프협회 사무국장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면서 “지금도 제2, 제3의 이재학이 있다. 안전장치가 풀어진 시한폭탄과 같은 지금 상황에선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박환성 김광일 PD 사망 이후 정부의 크고 작은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제도와 정책의 구속력이 없어 여전히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며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휴짓조각이 됐다. 21대 국회가 또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면, 국회는 직무유기를 넘어 이 문제의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간곡한 호소를 꼭 들어달라”고 덧붙였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역시 조사 결과에 대해 “모두 알고 있던 내용이다.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알면서 외면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여전히 방송사들은 제작비 절감이 화두라며 앓는 소리만 하고 있다. 방송사 스스로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현장 노동자의 삶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진주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지만 방송가에서는 이제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고 있다”고 꼬집으며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은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있다. 이재학 PD는 본인만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그의 외로웠을 싸움을 기억하고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오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계약서조차 없이 일하고 사회 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방송계 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재학 PD는 2018년 함께 일하던 스태프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 뒤 해고됐으며, 약 1년 6개월간의 법적 다툼을 이어오던 중 ‘억울하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언론시민단체가 모인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는 청주방송 사측, 유족 등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