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에 도착한 코로나19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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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 전한 자영업자...'수제 마스크' 300장 보낸 청취자도

'코로나19 달라진 일상'으로 꾸민 월간 여성시대 4월호.
'코로나19 달라진 일상'으로 꾸민 월간 여성시대 4월호.

[PD저널=하정민 MBC PD] 무력함에 발만 종종거렸던 봄도 어느덧 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도배된 일상을, 라디오는 어떻게 담아냈어야 했을까. 몇 달 간 정말 종종걸음으로 방송하듯 했다. 

코로나19가 우한에서 시작된 독감 정도로 일컬어지던 초기부터 불안감은 시작됐다. 주식하는 사람들이 증시로 세상을 읽어내듯 우리는 매일 도착하는 청취자분들의 편지로 세상의 온도를 읽곤 하는데,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직까지 코로나19가 바로 옆집의 이야기가 아닐 때라 좀 막연하긴 해도, 치료제가 없다는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인 이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마음을 다독여야 할지를 고민했다. 적이 모호한 만큼, 대처는 구체적이어야 했다. 전문가를 모셔 상황을 전해 듣거나, 청취자 선물로 남아있던 협찬사의 마스크 세트를 매일 선물로 나눴다.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협찬사는 감사하게도 금방 배송해주셨고, 받은 마스크 한 박스를 가족, 친척, 이웃 등과 두루 잘 나눴다는 후기도 다행스러웠다. 시중에서 마스크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이 협찬도 곧 끊겼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이즈음 우한 현지 교민들을 전세기로 모셔와 격리시설에 수용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쪽에선 감염을 우려해 반대하는 지역의 목소리도 들렸다. 걱정이 됐다. 이때 바로 그 지역에 사시는 여러 청취자분들이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앞으로 우한에서 돌아와 격리된 동포들을 응원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따뜻한 문구를 적고 찍은 인증사진이 참 뭉클했다. 

이때만 해도 전염병 우려로 인한 ‘격리’라는 말이 생소하고 무섭게 들렸다. 격리 시설 안에서 얼마나 마음이 복잡하실까 걱정이 되어 이 문자와 의견들을 격리된 분들에게 꼭 전했으면 했다. 당국의 협조를 구해 <여성시대>의 두 진행자 양희은, 서경석 님의 목소리로 이 분들을 위로하는 목소리와 음악을 격리 시설 내 스피커로 소개할 수 있었다. 

쉬고 계신 시간에 방송이 방해가 된 건 아닐까 우려되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 방송을 듣고 시설에 계신 한 분이 편지를 주셨다. <여성시대>에는 10여 년 만에 편지를 써본다 하시면서. 아들 군 입대 배웅 때문에 사업차 지내는 우한에서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격리된 아버지의 사연이었다. 결국 아들의 군 입대에는 가보시질 못했고, 전화 연결을 통해 방송으로 눈물의 음성편지를 남기셨다. 

국내 확진자가 늘고, 지역 감염이 시작되면서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동생과 조카가 확진됐는데, 특정 종교인이라고 매도되며 사진과 신상이 인터넷 상에 돌고 있어 이중고를 겪는다는 사연도 왔다. 동생이 완치되고 나면 직접 농사지은 호박으로 동생이 좋아하던 호박죽을 끓여줄 것이라던 언니의 마음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난달 25일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된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달 25일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된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방송 화면 갈무리.

확진자와 접촉해 격리에 들어갔다는 사연도 많았다. 본인 걱정에 앞서 자신이 확진되면 일터나 가족에게 미안한 건 물론이고 최근 손님이 줄어 표정이 어두웠던 단골 카페나 식당 사장님께도 폐를 끼칠까하는 걱정도 많으셨다. 경제가 얼어붙기 시작해 곤궁함을 겪는 일용직, 택시기사님들. 출근하는데 막내딸이 "용돈 천원만 주고가면 안돼요?”하는 말에 주머니가 비어 주지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가게에 나가야했던 자영업자 청취자분의 사연도 자꾸 생각이 난다. 

불안한 만큼, 마스크와 관련된 사연도 쏟아졌다. 공적 마스크 시행 초기, 판매를 맡았던 우체국 근무자께서 현장에서의 어수선한 풍경을 보내오시기도 했다. 병원에 갔다가 마스크가 없어 쫓겨나다시피 해 울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곤 자신에게도 귀했을 여분의 마스크를 나눠드리며 함께 눈물 흘렸다는 편지도 있었다. 

이렇게 모여든 편지들을 정성스레 읽고 잘 전달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여성시대>에서 방송된 편지들이 2020년의 일상 풍경을 기록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월 방송된 편지 사연을 모아 책으로 묶어내는 ‘월간 여성시대’ 4월호를 이례적으로 ‘코로나19, 달라진 일상’이라는 제목을 달아 특집 기획호로 꾸미기도 했다. 

계속해서 라디오는 뭘 할 수 있을지, 역할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마스크를 나눠드리기도 어렵고, ‘특집’을 달고 요란스레 방송을 진행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공개방송도 할 수 없다. 만나기 어려운 시대, 음성으로 매일 만날 수 있고 청취자 분들과의 정서적 거리도 가까운 라디오. 이런 때일수록 라디오에는 강력한 힘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할지, 종일 마음이 수선스럽다. 정성껏 사연을 나누는 것 외에 우리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며칠 전에는 익명으로 손수 바느질한 마스크 300장이 도착했다. 경북 포항의 직장인 여성이라며 이름과 연락처는 남기지 않으셨다. 적은 양이라 송구스럽다며,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곳곳에서 따뜻한 마음을 보태고 있는데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어, 매일 퇴근 후 직접 재단했다는 내용의 손편지가 함께 왔다. 방송을 통해 신청을 받아 확진자가 나온 병원 인근 어린이집, 지역의 환경미화원 등을 선정해 나눠드리기로 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가, 청취자분들이 이런 식으로 가르침을 주시면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가... 그렇게 종종거리며 이 봄을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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