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김정은 수술 후 중태" 보도에 韓 언론 '부화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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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권위 부여한 외신 '받아쓰기' 몰두..."북한 관련 보도 생태계부터 이해해야" 지적도

21일 CNN의 '김정은 건강이상설' 보도를 '속보'로 받아 쓴 언론은 약 70여 개였다. ⓒ 네이버 검색화면 캡쳐
21일 CNN의 '김정은 건강이상설' 보도를 '속보'로 받아 쓴 언론은 약 70여 개였다. ⓒ 네이버 검색화면 캡쳐

[PD저널=이미나 기자] 21일 나라를 들썩이게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의 발표와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라 나오면서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북한의 폐쇄적인 구조상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해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번 '김정은 건강이상설' 논란으로 무비판적인 '외신 받아쓰기' 관행과 아니면 말고식의 북한 관련 보도 행태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이번 논란은 지난 15일 김정은 위원장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108회 생일에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17일에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이 언론에 "김 위원장 건강이나 신변에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자료를 냈고 이를 인용한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큰 파괴력을 갖지는 못했다.

국내외 정세가 들썩인 건 CNN이 21일 오전(한국 기준)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에 중대한 이상이 있다는 첩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익명의 미국 관료의 발언을 보도하면서다.

이날 CNN 보도를 인용해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긴급히 타전한 속보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 약 70건에 달했다. 속보가 쏟아지면서 국내 금융시장도 크게 출렁였다. 정부는 이날 늦게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북한 내 특이한 움직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22일까지도 김정은의 유고시 후계 구도 등 관련 보도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김정은 건강이상설'이 확산된 배경엔 CNN과 같은 외신의 보도를 실시간으로 받아쓰는 국내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가 자리한다. 국내 언론이 '외신'에 과도한 신뢰와 권위를 부여하고 검증 노력은 상대적으로 덜 기울인다는 지적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번 CNN 보도의 경우 20일 국내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가 '김 위원장이 평안북도 묘향산지구에서 심혈관계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는 사실을 주요하게 인용했다. 결과적으로 보도 당시엔 큰 반향이 없었던 국내매체의 기사가 CNN의 공신력을 등에 업고 '역수입'되면서 혼란을 초래한 셈이 됐다.

CNN의 최초 보도에도 미흡함이 있었다. 왕선택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는 21일 자사 뉴스 프로그램에서 "제목은 미국의 정보당국이 김정은 위원장의 위독설과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는데, 내용은 '그런 정보가 있는데 관찰을 하고 있다'는 거였고 그 정보란 데일리NK 보도 같은 것이었다"며 "제목과 내용이 다른 그런 부작용, 오류가 혼란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언론의 정보 취사선택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CNN은 이날 오후 추가 보도를 통해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는 국제관계 전문가 등의 말을 전했으나, 이 또한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 관련 보도는 제한적 취재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다 사실확인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복잡한 국제 정세가 얽혀 있는 탓에 때로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오염된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기도 한다. 이를 방패 삼아 '아니면 말고' 식 보도를 일삼거나, 최소한의 교차 검증 없이 '해외 언론이 보도했다'는 이유로 받아쓰고 보는 보도는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2일 통화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북한 관련 보도가 생산되는 매커니즘을 고려했을 때 특정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면서도 "정보의 사실 가능성을 가늠하고 왜 이런 보도가 나오는지 맥락을 짚어 줘야 할 언론이 더 호들갑을 떠니, 사람들이 더 당황스러워하고 정부의 발표도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해 교수는 "이번엔 '김정은 건강이상설'이었지만, '소요사태설'이라든지 '미사일 발사설'과 같은 것들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를 무분별하게 보도했다 정말 불상사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 것인가"라며 언론에 "북한 관련 보도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판가름해줄 수 있는 전문가 풀을 갖추는 등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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