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최루탄마저 그리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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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 정통 중년멜로에 담아낸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 스틸컷.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 스틸컷.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80~90년대 대학생활을 했던 중년들에게 학생운동은 처절한 현실이면서도, 한참 시간이 흘러 그리움의 대상이 된 순수했던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다. 그것은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눈앞에서 학생운동을 목격하고,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마음속으로나마 그 시대의 공기에 공감했던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 살풍경한 현실에 슬퍼했고 때론 절망하기도 했을 테니 말이다.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는 그렇게 치열했던 학생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던 청춘의 재현(박진영)과 지수(전소니)가 중년이 되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최루탄의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곳곳에 깨진 병과 돌조각들이 떨어져 있는 광장에서 피아노를 치는 지수에게 재현이 다가오는 이 드라마의 첫 시퀀스는 앞으로 <화양연화>가 어떤 세계를 그려나갈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처절한 현실의 이야기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워지는 따뜻했던 사랑의 시간들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며 사람을 변화시킨다. 지수도 재현도 나이 들면서 변했다. 청춘시절 재현은 학생운동을 선봉에서 이끌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치던 청년이었지만, 중년의 재현은 형성그룹 회장의 사위가 됐다. 피도 눈물도 없이 정리해고를 해 심지어 ‘가위손’이라 불리는 속물이다. 반면 청춘시절 지수는 학생운동 따위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재현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랑을 꿈꾸던 소녀였지만, 중년의 지수는 이혼해 아들과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정리해고를 일삼는 기업과 싸우기 위해 거리로 나가 투쟁을 외치는 지친 중년이 되었다. 

너무나 다른 현재를 살게 된 그들이지만, 둘은 만만찮은 삶의 무게를 느낀다. 윤지수는 부당함과 싸워나가려는 이상을 여전히 지키려 하지만 번번이 가진 자들 앞에서 무릎 꿇려지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래서 거리 투쟁에 나서면서도 생계를 위해 가면을 쓰고 호텔 로비에서 피아노를 친다. 재현은 회장 딸과 결혼해 부와 지위를 가졌지만 그것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 대신 감옥살이까지 하고 돌아온 그에게 회장은 사냥개가 토끼를 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아내는 늘 그랬듯 젊은 남자들과 외도를 한다. 재현은 자신의 삶이 너무나 멀리 와 있다는 걸 실감하지만, 무수히 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계를 꺾어 놓은 게 그의 삶이라는 아내 장서경(박시연)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 스틸컷.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 스틸컷.

각자의 앞에 놓인 삶은 둘의 재회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눈 내리는 밤 아들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은 끊긴 막차로 인해 아주 오래 전 청춘시절 함께 걸었던 눈길을 다시금 걷는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그들이 순수하게 만나고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반추하는 것. 그런데 그 반추는 그저 추억이 아니다.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가를 돌아보면서 현재를 바꾸게 하는 돌아봄이다. 

복고는 현재의 어려움이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찾아가려는 욕망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그 행복했던 시절이 그저 달달한 지점이 아니라 이상과 순수를 지키며 앞으로 나가던 지점이라는 사실은 <화양연화>가 정통 멜로 속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그래서 이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당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에게 멜로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낸다.

하루하루가 힘겹고 그 힘겨운 이유가 순수했던 자신으로부터 한참을 멀리 떠나와 치열한 현실에서 버텨내고 있기 때문인 우리 시대의 많은 중년들에게 <화양연화>는 각별한 울림을 주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 치열했던 학생운동 시절의 매캐했던 최루탄마저 그리워지는 냉정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을 중년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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