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준 PD, “‘부재의 기억’ 다음 작품 주제는 ‘국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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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PD, “‘부재의 기억’ 다음 작품 주제는 ‘국가 폭력’”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 수상한 이승준 PD, "세월호 유가족에게 작은 힘이 됐으면 다행"
"코로나19로 독립PD들 경제적 어려움 겪고 있어...상생 방안 모색해야"
  • 박수선 기자
  • 승인 2020.04.30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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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32회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PD상' 수상자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이승준PD. ⓒ김성헌
지난 28일 32회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PD상' 수상자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이승준PD. ⓒ김성헌

[PD저널=박수선 기자] “개인의 명예보다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립PD들이 자존감을 다시금 세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운 좋게 해외에서 성과를 보여 여기까지 왔지만, 많은 동료 선후배 독립PD들이 큰 역할을 해내고 있고,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부재의 기억>으로 제32회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을 받은 이승준 PD는 수상의 영광을 동료 독립PD들에게 돌렸다. 독립PD가 올해의 PD상을 안은 건 10년 만이다. 2010년 KBS <인간의 땅>을 연출한 강경란‧박봉남 독립PD가 '올해의 PD상' 수상자로 무대에 올랐었다.     

지난 23일 만난 이승준 PD와의 인터뷰는 세월호 참사로 시작해 방송계의 숙원 과제인 ‘불공정 관행’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인간의 고통에 천착한 이승준 PD는 방송계도 고통 분담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재의 기억>을 연출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세월호 참사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약속한 그는 지난 2월 '한국 다큐멘터리 최초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라는 낭보를 안고 돌아왔다.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을 위해 미국에 있을 때 페이스북을 통해 한 유가족이 장문의 글을 보내왔어요. 한 단원고 생존 학생은 ‘잊히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가족협의회를 통해 전했고요. 그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 먼저 공개된 <부재의 기억>은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아 MBC에서 47분 분량의 감독판으로 전파를 탔다. 해외 관객을 겨냥한 원래 버전과 다르게 감독판에는 유가족의 울분과 분노가 짙게 묻어난다. 세월호 참사 수색에 참여했다가 ‘뒷일을 부탁합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故 김관홍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담겼다. 
  
“<부재의 기억>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고통이 얼마나 깊고 넓게 퍼져있는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들여다보면 진실의 일부가 드러나기도 하지만요. 2014년으로 돌아가서 그동안 진행됐던 일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면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습니다. 이게 극단적으로 드러난 게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이었고요. 유가족과 생존자, 잠수사들의 마음에 난 상처가 김관홍 잠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응축됐다고 봤습니다.”      

영화 '부재의 기억' 스틸 사진 ⓒ416연대
영화 '부재의 기억' 스틸 사진 ⓒ416연대

그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2016년 세월호 참사 당시의 국가 부재를 다시 떠올렸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가 국가의 부재를 드러냈다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는 국가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6일 세월호 6주기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와 대책 속에는 세월호의 교훈이 담겨있다”는 메시지를 SNS에 남기기도 했다. 

“국가의 부재는 부끄럽지만, 직시가 필요해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이 큰 교훈을 주고 갔다는 생각도 합니다. 국가가 있다는 걸 느낄 때 비로소 국가를 신뢰하는데, 그 당시에는 없었던 거죠.”
    
<부재의 기억>에서 국가의 부재를 고발했던 그는 ‘국가 폭력’을 주제로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이승준 PD는 기획 초기 단계에다가 소재도 민감해 조심스럽다면서 ”국가 폭력으로 피해를 받았던 국민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전했다. “정권이 바뀌면 큰일”이라는 이 PD의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실제 국가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들은 크고 작은 수난을 겪었다.  
  
“<그림자꽃>도 그렇고 아내는 왜 자꾸 그런 것만 하냐고 하는데, 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제 결에도 맞지 않아요. 부조리한 시스템 때문에 죄 없고 평범한 사람들이 받는 고통에 관심이 있는 건데, 고통을 들여다보면 시스템이 있는 거죠.” 

그래도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타이틀을 얻은 뒤에 제작비 걱정은 덜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미국은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션됐다고 하면 다큐멘터리 감독의 몸값도 올라간다고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 준비 중인 프로젝트도 얼마 전 정부 제작지원 사업에 지원했는데, 1차에서 떨어졌고요. 제작비를 마련하는 게 어렵다는 정도는 아닌데,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쳐 아카데미 효과는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승준 감독이 지난 2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단편다큐멘터리 부문 노미네이트 '부재의 기억' 그 못다한 이야기 귀국 보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승준 감독이 지난 2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단편다큐멘터리 부문 노미네이트 '부재의 기억' 그 못다한 이야기 귀국 보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다음 작품 제작비 마련보다는 코로나19로 일감이 끊긴 등료 독립PD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커 보였다. 독립PD들은 코로나19로 해외 촬영 등 프로그램 제작이 전면 중단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독립PD들이 ‘약한 고리’라는 게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드러나고 있잖아요. 코로나19로 독립PD가 10, 방송사가 2의 피해를 보고 있다면 피해의 격차를 8대 4정도로 줄이는 게 상생이죠. 고통을 똑같은 무게로 짊어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완충장치가 있고, 누군가 마음을 써주는구나 느낄 수 있다면 많은 게 달라질 겁니다.”

청주방송에서 14년 동안 일하다 숨진 故 이재학 PD는 비정규직 PD의 열악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알렸다. 이승준 PD는 상생의 정신으로 해묵은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PD들의 요구가 단순히 인권 보장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니예요. 방송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청산해야 할 적폐도 있고, 새로운 시장이나 판을 만들기도 해야하는데, 독립PD들이 여기에서 할 역할이 많다고 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편을 가르거나 밥그릇 싸움으로 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모색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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