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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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미디어 공약 수수방관한 정부...‘언론 개입 우려’는 핑계 
언론의 자정 노력, 정치권의 이해관계 탈피 필요
사회적 논의 기구 ‘미디어개혁위원회’ 통해 논의 시작해야  
  • 오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 승인 2020.06.03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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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임기 시작 후 첫 출근일을 맞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21대 국회 임기 시작 후 첫 출근일을 맞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PD저널=오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국민의 것은 국민에게 돌려주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던 2017년 3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0차 범국민행동의 날에 발언자로 나선 이용마 MBC 기자가 한 말이다.

인상적이었던 그의 주장은 명료했다. (공영)언론과 검찰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줘라. 대통령도 국민이 뽑는데 왜 공영언론사 사장을 국민이 못 뽑는가? 촛불집회와 같은 이벤트에서만 국민을 주인이라고 할 게 아니라 일상 곳곳에 국민이 들어와야 한다. 국민이 아래로부터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마 기자는 복막암으로 지난해 8월 세상을 떠났다.

광화문의 촛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과연 언론 개혁은 시작되었는가. 

공영언론을 진정한 주인인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고 정치로부터 분리하자는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간다. 식물국회였던 20대 국회는 관련 법안을 상정조차 못 했고, 제출된 법안들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거래의 대상이 되어 누더기가 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휴지조각이 됐다.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의 언론 정책 역시 지난 3년간 실종됐다. 최근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인 뉴스톱과 사단법인 코드가 만든 대통령 공약체크 사이트 ‘문재인미터’의 평가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집권 3년 차를 맞이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송‧통신‧언론분야 공약 22개 가운데 이행된 공약은 단 1개에 불과하다. 심지어 2년 차에는 이행한 게 아무것도 없다.

물론 언론 독립을 위한 2017년 공영방송 노동조합의 총파업으로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확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억울하게 해직‧징계된 언론인들의 복직‧언론탄압 진상규명 등의 공약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이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종편 특혜 철폐, 신문진흥정책 마련, 지역언론 활성화, 지역신문발전지원법의 일반법화 등의 공약 사항들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2017년 8월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언론개혁 쟁취를 위한 언론노조 총력투쟁 선포식'에서 전국언론노조 소속 언론인들과 참석자들이 '세상을 밝히자'라고 적힌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8월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언론개혁 쟁취를 위한 언론노조 총력투쟁 선포식'에서 전국언론노조 소속 언론인들과 참석자들이 '세상을 밝히자'라고 적힌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집권 3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한마디로 ‘수수방관’이었다. 지난 10여년간 혁명적으로 변화한 미디어 콘텐츠 생산과 소비 방식에 걸맞은 규제 진흥책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책화하고 관련 부처를 움직였어야 함에도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정부가 언론 정책을 주도할 경우 ‘언론 개입’으로 비치거나 야당이 ‘언론 장악 시도’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는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정부와 국회의 무능력만 탓할 수 없다. 언론계 내부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는지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총파업을 거쳐 언론 정상화의 길을 걸었던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은 올바르게 평가받아야 하지만 진영논리에 갇히고, 오랜 관행을 타파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성 언론이 과거 독점하다시피 한 정보와 이른바 ‘의제 설정’ 기능은 무너졌다. 더욱이 최근 2년간 기성 언론은 광고시장에서도 힘을 잃고 코로나19가 덮친 경영난에 살길을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업 언론인들은 저널리즘과 언론 신뢰도의 회복을 위해 언론사 내부의 민주주의적 소통 구조와 편집권 오남용을 막을 내부 견제 장치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받아쓰기’, ‘따옴표’ 기사로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무를 방기하는 태도를 고쳐나가야 한다. 수십 년간 계속된 출입처 의존 기사 생산 방식을 바꿔나갈 방안 또한 마련해야 한다.

출입처 제도를 보완하려면 기자단과 같은 폐쇄 구조를 혁신하려는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건강한 소통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 역시 강화하고 오보에 대한 인정과 재발을 방지할 의지, 그리고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대내외에 공표해야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대표 회의실에서 접견하고 있다.ⓒ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대표 회의실에서 접견하고 있다.ⓒ뉴시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정책 협약을 맺었다. 그 자리에서 문 후보는 사자성어 '줄탁동시(啐啄同時)'를 인용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안팎에서 쪼아야 한다는 말이다. 언론 개혁은 언론인 내부의 자정 노력과 국민들의 조응이 필요한 작업이란 뜻이다. 현재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  

언론 신뢰도 추락의 큰 책임을 져야 할 수구 족벌언론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미디어 환경 변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면 자멸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 개혁은 국민의 품으로 언론을 돌린다는 원칙에서부터 출발한다. 민간 자본이 소유한 언론이든 공적 구조의 언론이든 사회적 공기로서 책무를 인정한다면 국민의 시각에서 공공성을 실현하고 권력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언론 개혁의 과제는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2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미디어 관련법과 정책을 사회적 논의 기구인 대통령직속 ‘미디어개혁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국민이 사회적 타협을 통해 법과 제도의 개선을 제안하고 국회가 이를 받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권에서 미디어개혁위원회의 설치를 지난 총선 공약으로 내놓았다는 점이다.

이제 21대 국회가 개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종편 특혜 철폐, 신문진흥책과 신문법 개정, 지역언론 활성화, 지역신문발전지원법의 일반법화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로 나뉜 방송정책을 하나로 관장할 통합부서의 설치 등도 빠르게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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