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최선의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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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최선의 답일까
[비필독도서 3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0.06.16 16: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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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본소득제 입법을 희망하는 단체와 채이배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기본소득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월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본소득제 입법을 희망하는 단체와 채이배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기본소득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오학준 SBS PD]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현금의 ‘직수효과’는 굉장했다. 팬데믹으로 얼어붙었던 소비가 늘고, 집권 3년차 정부 지지율은 60%를 넘겼다. ‘매표’행위라며 비아냥대던 목소리도 어느새 사라졌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가 재난지원금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정치권 이곳저곳에선 기본소득을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팬데믹은 기본소득을 정치의 장으로 빠르게 끌어들였다. 2016년 청년배당을 이야기하던 때완 사뭇 다른 분위기다. 잔뼈가 굵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도 진의야 어떻든 기본소득을 언급했다.

지름길의 폐해일까, 전선은 흐릿하다. ‘기본소득’이라고 똑같이 말하지만 각자가 기대는 이론과 전망이 다르다. 기본소득 도입의 시기, 목적, 적용 범위도 사뭇 다르다. 어떤 정책은 기본소득인지 아닌지 혼란스럽다. 기본소득을 좌파의 공산주의식 배급제라 말하는 사람과 우파의 포퓰리즘 정책이라 말하는 이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무엇이 기본소득인지 제대로 알기 어려우니, 가치판단도 쉽지 않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는 말잔치를 걷어내고 진지하게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하는 이들이 참조해볼만한 책이다. 저자인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금민 소장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 한국사회당 후보로 나서 국민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이력이 있고, 2009년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창립했다. 이 책을 통해 기본소득 담론을 선구적으로 도입하고, 오랜 시간 기본소득 운동에 참여해 온 저자의 생각이 어떤지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기본소득의 이론적 토대로서 ‘공통부(共通富)’를 다룬 이론가들의 사유를 추적하며 책을 시작한다. 이어서 기술 혁신의 대가를 독차지하는 기업으로부터 부를 이전하는 기제로서 기본소득을 논한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로 기본소득이 지니는 함의를 짚고, 기존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이 공존할 수 있는지, 기본소득이 젠더 불평등 해소의 방안이 될 수 있는지를 짚어본다. 책 말미에는 기본소득 운동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판단도 덧붙인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고 있는 신청자들의 모습.ⓒ뉴시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고 있는 신청자들의 모습.ⓒ뉴시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고자 정치공동체가 사회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이다. 그간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고자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로 구성된 복지국가 시스템을 발달시켜왔지만, 변화하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시스템의 한계들이 드러나면서 기본소득이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주로 그 효과나 기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기본소득이 가져다 줄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삼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본소득이 더 근본적으로 분배 정의의 문제이며, 공통부에 대한 무조건적·보편적·개별적 배당으로서 기본소득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부조 받을 권리를 최초로 인정했지만 이는 정의의 영역이 아닌 자애의 영역에 속한다. 로크에게 자연은 부조 의무를 부과하는 규범으로만 작동한다. 이에 반해 토머스 페인은 공통부의 무조건적 배당을 정의의 영역으로 가져온다. 사적 소유를 사회적 지분급여와 노인 기본소득이라는 공통부 배당과 병치함으로써, 자연적 소유와 인공적 소유로 구성된 이중적 소유권 이론을 전개했다. 

기본소득의 핵심 아이디어는 여기에 있다. 자연이라는 인류 공통의 것으로부터 형성된 공통부에 우리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적 소유권’을 얻는다. 몇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 가치가 증가했을 때에도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인공적 소유권’을 덧붙여 인정해줄 뿐이다. 모든 것은 개인 노력의 결과만이 아니며, 따라서 기본소득은 일종의 ‘사회배당’적 성격을 가진다.

금민의 저서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금민의 저서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저자는 기본소득을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 아래에 둔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복지국가의 사각지대를 메꾸는 보완재나 복지국가의 일부분이 아니다. 복지국가가 암묵적인 완전고용의 전제 위에서 임금노동과 소득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려 한다면, 기본소득은 복지국가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에서 임금노동과 소득의 연관성을 약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저자는 두 제도가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비슷하고, 때로는 동시에 존재할 수는 있어도 각각 기대는 세계관이 다르다고 본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노동소득을 완전히 대체할까? 저자는 소득이 복합적으로 구성될 것이라 말한다. 경제적 기여에 따른 조건적 소득과 사회구성원으로서 얻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원들의 소득이 구성되면,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을 거부할 수 있게 되며, 작업장 내에서 더욱 강한 협상력을 얻게 될 것이다. 노동과 소득의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만드는 기본소득이 역설적으로 노동과 자본의 교착관계를 흔들게 된다. 이러한 전망 아래에서 기본소득은 노동으로부터 개인의 삶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한다.

노동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킴으로써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에 실질적인 기초를 제공한다.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아이를 양육하느라 정치적 참여의 기회가 박탈된 이들에게 보편적인 정치적 시민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정치적 시민권의 물질적 기초가 된다. 저자는 이를 보장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중요한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기본소득 운동이 마주해야 할 현실적 문제들이 있다. 초보적 복지국가에 머물러 있는 한국에 더 시급한 건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소득을 대체하는 급여 수준을 높이는 ‘달성 가능한’ 목표부터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원은 한정적이고, 증세는 저항에 직면할 때, 전 국민에게 약간의 소득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새겨볼만 하다. 다만 기본소득의 이론적, 규범적 정당화에 그 부정적 효과와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며 대응하는 게 온당한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기본소득만큼 보편적 복지국가 역시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기술 혁신이 기존의 일자리에서 사람들을 이중적으로 ‘해방’시키는 상황은 인클로저 운동으로 농노들이 토지로부터 ‘해방’되는 상황을 연상케 한다. 격변의 시대에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적절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를 보장받는 데 기본소득은 가장 최선의 대답이 될까.

앞으로 정치의 공간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이 지점을 어떻게 경유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될 것이다. 대중매체가 그 논의에 도움을 줄 수 있으려면, 종사자로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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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2020-06-16 16:51:00
너무 좋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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