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 몰랐던 가족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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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다’, 몰랐던 가족의 얼굴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판타지 벗은 '가족드라마'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06.23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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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현장포토. ⓒtvN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현장포토. ⓒtvN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언제부턴가 가족드라마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가족으로 모여 살기보다는 혼자 사는 가구가 많아지면서 가족 대신 개인이 삶의 중심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이제 KBS 주말드라마 정도가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드라마에서 가족은 너무 뻔해서 다뤄질 게 없는 소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이런 생각이 선입견이자 편견이라는 걸 드러내는 작품이다. 김상식(정진영)과 이진숙(원미경) 가족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가족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에 있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 꺼풀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는 가족 구성원들의 진심과 진실. 타인에게 더 진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는 현실에서 가족은 내 몸에 붙어 있어 오히려 무관심했던 손과 발 같은 존재들이다. 아파야 비로소 거기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들여다보게 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야간산행을 나섰다 사고를 당해(혹은 자살을 하려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이 22살로 되돌아간 김상식은 평소의 고압적인 가부장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사랑꾼이 되어버린다.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입만 열면 고함을 지르던 상식이 사근사근하게 “진숙씨”하고 부르며 애틋한 눈빛을 보내는 것에 진숙은 당혹감을 느낀다. 사고 전 ‘졸혼’까지 선언했던 진숙이었다.

그런데 본래 22살의 사랑꾼 같은 인물이었다 여겼던 상식에게 진숙은 폭탄발언을 한다. 딴 살림을 차려 제 가정과 자식들을 등한시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그저 사랑꾼으로만 생각했던 상식은 그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럼 파렴치한 인간이었다고 자신을 생각하며 진숙이 원하는 ‘졸혼’을 서두른다. 

진숙을 포함한 가족들도 상식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상식의 꿈이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이었으나 대학갈 형편이 안돼 접었다는 사실에 자식들은 숙연해지고, 과거 상식의 도시락에 살가운 메모까지 적어 보내곤 했던 진숙은 상식이 그 문구를 줄줄 외우는 통에 드디어 기억해낸다. 그들도 상식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tvN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tvN

이처럼 <가족입니다>는 가까이 지내며 알고 있다 여긴 인물들에 대해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드러낸다. 첫째 딸 은주(추자현)는 결혼해 함께 살았던 남편 태형(김태훈)이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둘째 딸 은희(한예리)는 자신보다 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잘 아는 찬혁(김지석)을 오랜 친구로만 생각해왔던 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가족입니다>가 상식과 진숙의 가족을 낯선 존재들로 그려내는 방식은 독특한 시점에서 비롯한다. 즉 가족 구성원을 하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지만 저마다의 입장이 다른 개인으로 들여다본다는 것. 그래서 그 개인들이 저마다 숨기고 있는 비밀이나 속내들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해서 끄집어내지는 과정을 담는다. 그런데 이런 숨겨진 진실은 의외로 충격적이다. 너무 잘 알고 있다 여겼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가족입니다>는 그간 가족드라마들이 상투적이고 표피적으로 그려왔던 가족애 판타지 대신에 가족을 개별적인 존재로 서로 마주하게 만든다. 막연히 ‘단란한 가족’이라고 애써 주장하기보다는 우리는 사실 타인이라는 걸 보여주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진짜 우리 시대의 가족이 가능하다는 걸 말한다.

다행스러운 건 이 드라마의 제목의 가로 속에 들어간 ‘아는 건 별로 없지만’이 앞쪽에 수식어로 들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이다. 가족이지만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충격적으로 전하고 나서는,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고 애써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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