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 못잡은 '박원순 보도', 방송사 내부서도 자성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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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추모에 무게 뒀던 방송 뉴스, 뒤늦게 '진상 규명 전환'
KBS, 성평등센터 자문 받아 '박원순 고소인, '피해자'로 용어 통일"

지난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이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이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는 모습. ⓒ뉴시스

[PD저널=김윤정 기자] 한국 사회가 큰 혼란에 빠져든 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서 언론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가해자 중심의 보도 관행을 여실히 보여줬다. 초기 성추행 의혹에 소극적인 보도를 했던 방송사 내부에서는 유명인 사망과 성폭력 사건이 겹친 초유의 사태를 보도하면서 원칙과 기준이 없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9일 박 시장 실종부터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보도를 보면 피해자 보호는 안중에도 없었다. 추측성 보도와 오보가 쏟아졌고, 사망 사실이 확인된 뒤에는 추모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는 발언들이 무분별하게 기사화됐다.

박 시장의 죽음을 추모하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메시지와 첫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진 성대한 장례 절차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된다는 의견과 사회적 공적이 뚜렷한 인물의 죽음을 온전히 추모할 시간은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후레자식’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 예다.

이 같은 혼돈 속에서,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의 보도는 장례 기간 동안 ‘추모’에 집중됐다. 박 시장의 영결식과 고소인 측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 13일 TV조선과 채널A를 제외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메인뉴스는 영결식을 첫번째 리포트로 올렸다. 14일 조간신문들이 1면 톱기사로 '피해자 기자회견'을 다룬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방송 뉴스는 성추행 피해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구조적인 문제를 짚기보다는 정치권의 공방을 중계하는 데 비중을 뒀다. 

지난 15일 서울시가 고 박원순 시장 사망 일주일 만에 민관합동조사단 구성 등을 요지로 공식입장을 밝혔다. ⓒ뉴시스
지난 15일 서울시가 고 박원순 시장 사망 일주일 만에 민관합동조사단 구성 등을 요지로 공식입장을 밝혔다. ⓒ뉴시스

박원순 시장 사망과 피소를 어떻게 바라볼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 방송사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다보니 보수적·관행적 보도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준홍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간사는 “내부에서도 통상의 성범죄를 다루는 방식과 박원순 서울시장이라는 인물의 특수성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면서 “장례 기간에는 추모 분위기에 무게를 두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추모의 시간이 끝난 만큼, 진실 규명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있다. 피해자의 구체적 진술이 나온 만큼, 서울시의 조사나 은폐 정황 등에 대해 제대로 감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광호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실장은 “KBS는 다른 방송사에 비해 이번 사안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면서 "'유명인의 자살 사건은 과장해서 보도하면 안 된다'는 자살보도준칙에 의거한 판단과 '이번 사건을 다룸에 있어 원칙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도 엇갈렸다"고 말했다.

안팎의 비판에 '피해자 우선' 보도 원칙을 세우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KBS <뉴스9>는 지난 15일 서울시의 '민관합동조사단' 구성 소식에 앞서 "KBS는 KBS 성평등센터의 자문을 근거로 '피해자'로 용어를 통일한다"며 "법률적 정의를 떠나 피해가 존재한다는 폭넓은 합의가 현재 공동체에 있다고 볼 수 있고, 과거 여러 사례 등을 봤을 때 피해자라는 호칭을 써야한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원장은 "정치인의 발언을 일방적으로 ‘따옴표’를 달아 전달할 게 아니라 사실에 기반을 둔 균형 있는 보도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하는 시간에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책임한 의혹제기 인지를 언론이 차분한 눈으로 다루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지난 14일 낸 성명에서 “자살보도 권고기준도, 성폭력·성희롱 보도 기준도 경쟁 앞에서 무의미했다”고 '박원순 사망' 보도를 평가한 뒤 “언론은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을 높이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찾고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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