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3일’ 촬영하다 흠뻑 빠진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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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 3일’ 촬영하다 흠뻑 빠진 하회마을 
15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안동 하회마을의 모습
푸근함과 그 속에 있는 부조화의 매력 돋보여
  • 이은미 KBS PD
  • 승인 2020.07.27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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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화면 갈무리.
지난 19일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 화면 갈무리.

[PD저널=이은미 KBS <다큐멘터리 3일> PD] 인생은 길섶에 행운을 숨겨놓은 것이라 한다. 한 달 전 안동 하회마을에 촬영을 갔을 때, 생각지도 못한 수묵화 한 점을 발견했다. 몇 번을 들락거린 하회마을 보존회 사무실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림이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하회마을 풍경이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 옆에 있는 64m 높이의 절벽,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부용대에 올라가 마을 전경을 찍고, 드론으로 촬영을 했는데 그 앵글과 수묵화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드론 촬영과 수묵화의 앵글. 21세기와 15세기가 공존하는 모습을 방송쟁이는 제일 먼저 촬영하는 프레임과 앵글로 받아들인다. 

누가 이렇게 하회마을에 애정을 쏟았을까. 찾아보니 조선시대 이의성 화가의 10폭 병풍 중 하나이다. 낙동강 일대를 그린 9폭의 그림과 글은 국립박물관으로 이관했지만 하회마을을 그린 그림만은 마을에 남았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조감법으로 표현한 수묵화이다. 영상으로 치자면 부감샷. 이거야 말로 ‘고금(古今)’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의 건축 모습이 남아 있으면서, 휴대폰과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하회마을 사람들의 일상과도 비슷했다. 

 하회마을 편 제작을 하면서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이런 부조화였다. 장죽대(곰방대는 짧은 담배이고, 긴 담배는 장죽대라고 탕건을 쓰신 어르신이 두 번 세 번 강조하셨다)를 물고 회령(한옥 마루의 천장에 달아놓은 줄. 마을 어르신들은 ‘안부사’라고 부른다.

마루를 오르내릴 때 줄을 잡으면 균형잡기 편하다)을 보여주는 영감님이 더워서 옆에 서큘레이터를 틀어 놓은 모습. 600년 된 초가집 안에 에어컨과 평면 텔레비전. 와이파이가 자꾸 끊긴다는 주민의 불평. 탕건을 쓴 할아버지 옆으로 지나가는 소방차과 셀카봉을 든 젊은 관광객. 이런 부조화를 한 프레임에 더 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촬영한 앵글도 방송 시간 내에 다 담지 못해 싹둑 잘려나간 B컷이 되어버렸다. 
  

지난 19일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3일' 안동 하회마을 편 화면 갈무리.
지난 19일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3일' 안동 하회마을 편 화면 갈무리.

겉모습만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어르신들은 새벽 0시에 제사 지내는 풍습을 지켜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관광객은 걸어다녀야 진짜 역사 공부라고 하며, 마을길에 다니는 전기차를 보며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40대 마을 젊은이들은 여행 온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약간의 변형과 개발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으로 결정하기엔 쉽지 않다. 

 마을에 온 손님들에게  ‘만약에 당신이 이 가문의 장손이라면? 당신이 이 마을에 살아야 한다면?’ 하고 물었더니 다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진진하게 고민하는 모습들이 재밌었다. 불편해 보이고 요즘 감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답변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관광객의 말은 ‘지키고 싶다. 뚝심있게 사는 것이 대단해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이런 시대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곧, 살아남는 힘이 된 세상. ‘이런 세상 속에서 예측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미래 계획을 세워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욱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지키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그게 단순히 한옥과 제례, 세시 풍속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그게 무엇일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또 생겼다. 

 2년 전에 1박 2일로 겉핥기 가족 여행을 온 적이 있는데, 이번 일주일간의 출장에서 하회마을의 푸근함과 그 속에 있는 부조화에 더 매력을 느꼈다. 한 주민이 이렇게 말했다. 매력을 느꼈다면 아직 하회마을을 백퍼센트 알지 못 한 거라고. 와서 살아보라고.

관광객에게 던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나라면 여기 살 수 있을까? 나는 이곳을 즐기는 유형일까, 금세 답답해하는 유형일까’ 찬찬히 음미해보면 답변이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정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마을, 그래서 더 자세히 음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하회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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