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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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여름밤’, 그해 여름 
할아버지 집에 온 남매의 일상 담은 성장 영화
현실적 갈등 통해 과거 돌아보게 만들어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 승인 2020.08.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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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사춘기에 접어든 옥주와 해맑은 철부지 동주. 아버지는 남매에게 짐을 싸라고 한다.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며 말이다.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으나 한 눈에 보아도 그냥 할아버지를 방문하러 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어딘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고 지친 기색이 깃든 아버지의 얼굴은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돌을 하나 얹어 놓는다. 어린 동주는 별 생각이 없지만 예민한 마음을 가진 나이인 옥주는 여러 가지가 불편하다.

그렇게 서먹한 마음으로 도착한 할아버지의 집은 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꽤 나이가 들어 보인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혼자 집안을 깔끔하게 정돈하며 살 수는 없었으리라. 어쨌거나 남매는 각자의 공간에 찾아들고 이 집에 얼마나 머물게 될지 알지 못한 채 조금씩 집과 친해진다.

무어라도 팔아볼 요량으로 아버지는 차를 끌고 나가고 그동안 별로 왕래가 없어 어색한 할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 있자니 어딘가 편치 않은데 마침 고모가 찾아 왔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고모는 금세 집안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고모가 차려준 저녁식사 덕분에 모두들 편안한 마음이 되고 어린 동주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에 모두들 깔깔대며 웃는다. 그렇게 가족들은 가족이 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나이가 많고 노환으로 살날이 많지 않다. 이혼을 하고 슬쩍 그 집에 들어온 고모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이들을 끌고 들어온 아버지는 슬슬 할아버지와 집에 대한 의논을 시작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옥주는 괜히 화가 난다. 이 집은 할아버지의 집인데 오히려 자신들이 주인인 양 집과 할아버지의 거취를 논의하고 이후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해 보인다. 옥주는 자신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더 화가 난다. 

철없는 동주는 연락을 해온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선물을 두 손 가득 받아온다. 옥주는 그것 또한 못마땅하다. 우리가 함께 사는 가족은 아빠인데. 아빠와 고모의 대화도 마음을 건드린다. 이 집은 할아버지의 집이고 여생을 살아온 터인데 그렇게 두 사람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지 마뜩치 않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남매의 여름밤>은 우리의 이웃 중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화면에 담은 것 같다. 제목 그대로 어느 해의 여름, 남매와 가족들의 일상의 단면이 느긋하게 화면을 채워가는 영화이다. 그렇게 지극히 일상적인 누군가들의 일상이 우리의 마음에 천천히 스민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서로의 접점을 만들고 그 접점들은 갈등을 가져오는 요소로 충분히 작용한다. 떠들썩한 소란과 충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은 현실 속 우리의 일상으로 치환되며 생성과 성장, 고조와 소멸을 반복하며 극의 리듬을 불어 넣으며 마음의 공명을 가져 온다. 섬세하고 부드럽게 잘 짜인 이야기인 것이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한 날, 동주는 모기장을 친 누나의 방에서 함께 자고 싶어 하지만 옥주는 동주의 청을 거절한다. 절대 누나의 공간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영화의 말미에 옥주는 동주를 자신의 공간에 들여 재운다. 비로소 동생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한 뼘 성장한 것이리라.

반면에 고모는 처음부터 모기장 안으로 기꺼이 들인다. 떨어져 있는 가족을 밀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고모는 어쩌면 옥주에게는 부재하는 엄마의 존재이기도 하겠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철없는 동생도 자신의 마음을 기대기에는 어딘가 부족할 터에 유쾌하고 외향적인 고모는 쉽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대상이었으리라. 

옥주에게 가장 먼 사람은 아마도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교류가 잦았던 것도 아닌 것 같고 늘 방이나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옥주가 쉽게 다가들기 어려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마냥 어리광을 부리며 가까이 하기에는 이미 커버린 옥주이고 더구나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는 생각이 막연한 불안감과 불편함으로 번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고모의 의논을 알게 되면서 할아버지에 대해 가장 연민을 느끼고 할아버지의 권리를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은 옥주였다. 역시 곁에 있는 가족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게 될 만큼 성장한 모습의 일면이 아닐까. 

영화는 등장인물들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두지만 관객이 옥주라는 구심점을 통해 보게 만든다. 옥주와 타자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이 극을 끌어가는 주된 서사가 되고 옥주와 타자 사이의 공간이 관계의 변화와 개체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몇 번의 여름이 있었다. 그 여름들은 비슷하게 지나갔겠지만 어느 여름을 유독 기억에 남고 뚜렷한 인상을 가지고 있으리라. 당신의 여름 중 옥주와 동주의 여름을 닮은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지나간 여름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여름, 서서히 흘러가는 시간을 가졌던 여름, 자신의 마음이 조금 성장했던 여름이 이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 담겨 있다. 마음껏 추억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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