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브이로그 올리는 MBC PD "'내돈내산' 폐가로 세컨하우스 꿈 이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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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브이로그 올리는 MBC PD "'내돈내산' 폐가로 세컨하우스 꿈 이뤘죠"
브이로그 채널 '오느른onulun' 운영하는 최별 PD...MBC 업무로 인정
퇴사 대신 4500만원짜리 폐가 구입해 '김제 라이프' 시작
"코로나 이후 주거 형태 다양해질 것...귀촌 꿈꾸는 이들에게 위안됐으면"
  • 김윤정 기자
  • 승인 2020.08.29 13: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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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PD저널=김윤정 기자] 누군가 말했다. 퇴사 욕구를 누르는 데는 장기 할부로 무언가 지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준비했던 아이템이 엎어지고 퇴사 욕구가 간절했던 최별 MBC PD도 그랬다. 그런데 스케일이 남다르다. 전라북도 김제에 4500만 원 짜리 폐가를 덜컥 사버렸다.

조금씩 치우고 고쳐 나만의 휴식 공간으로 삼으려 했건만, 수리 도중 드러난 집의 정체는 115년 된 초가집. 예산을 한참 웃돈 집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최 PD는 회사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던 서울 상암동 전셋집을 내놓았다.

최 PD는 이런 과정들을 유튜브 브이로그 채널 ‘오느른onulun’에 기록하고 있다. "늙으면 아프기나 하고 쓸모가 없다"며 한탄하는 95살 동네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꽃차를 건네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쑥개떡을 만들어 나눠 먹는 일상. 망가진 집이 조금씩 달라지고, 이웃들과 가까워지는 모습은 귀촌의 로망을 키우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대리만족과 위안을 전해주고 있다.

MBC는 이런 최 PD의 브이로그를 업무로 인정하기로 했다. 폐가 하나 샀을 뿐인데, MBC 시사교양 PD에서 첫 MBC 소속 유튜버가 된 최별 PD. 덕분에 힐링의 공간은 이제 업무의 공간이 되어 버렸지만, 바쁜 업무 중 내다본 창밖 샛초록 김제평야의 모습은 여전히 마음의 안정감과 행복을 준다고. 지난 26일 전화 인터뷰로 김제에 머물고 있는 최 PD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 누구나 세컨하우스를 꿈꾸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김제 폐가를 구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올 초에 MBC 디지털 크리에이티브센터 내 ‘M드로메다 스튜디오팀’에 오게 됐다. 개인적으로 시골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강화도 쪽에 집을 사기 위해 계속 알아보고 있었다. 이런 나의 로망을 연예인이 등장하는 콘텐츠로 실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진행이 무산된 거다. 회사에서는 아예 새로운 아이템을 기획해보라고 했다. 너무 억울했다. 나는 너무 잘 될 것 같은데 다른 걸 하라니.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쌓여 퇴사 욕구가 턱까지 쌓였을 때, 퇴사 대신 택한 게 폐가 구매였다.”

- ‘MBC가 산 집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정말 내 돈 주고 산 내 집이다. MBC가 사준 집이면 참 좋을 텐데. 하하하. 처음에 내가 집을 사고 고치는 과정을 브이로그로 담겠다고 했을 때 반대가 심했다. 회사 프로그램을 하는데 네가 왜 집을 사냐는 거였다. 하지만 그땐 이미 회사와 상관없이 김제집을 사겠다는 마음을 굳힌 상황이었다. 마지막에 센터장이 못 이긴 척 ‘우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봐’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게 ‘오느른’이다. 몇 회만 해볼까, 한 달만 더 해볼까, 이렇게 하루살이처럼 연장되다가 최근 연말까지는 운영해보기로 결정이 났다. 그래서 김제로 이주도 했고.

리모델링 예산이 많이 초과됐는데, 회삿돈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전세금으로도 부족한 건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고, 최후에는 아빠 찬스도 생각하고 있다.(웃음) 유튜브는 처음 해보지만 유튜브 구독자는 충성도가 높은 대신 신뢰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직장인이 폐가를 샀다’가 우리 콘텐츠의 출발인데, 회삿돈이 들어가는 건 진정성을 해치는 일이라고 봤다.“

- 김제에서의 업무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아침 5~6시면 보통 일어난다. 농촌은 하루가 빨리 시작되더라. 대신 저녁 9시면 잔다. (웃음)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해 먹고, 여유 있으면 강아지와 산책을 한다. 유튜브 외에도 오느른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 관리도 직접 하고 있어서 댓글 보고, 반응 모니터하고 영상 편집하고 하는 게 주요 일상이다. 촬영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 서울에서 감독님이 내려오신다. 금요일이 업로드라서 수요일과 목요일은 종일 집에서 편집하고 서울과 커뮤니케이션한다. 홍보가 중요한 기간이라 기고 글도 쓰고 있고, 이런저런 일이 많다. 업무와 휴식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기분에 따라 어떨 땐 일을 하고 있어도 쉬는 것 같고, 어떨 땐 휴일도 없이 일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 방송사가 소속 직원의 브이로그를 업무로 인정한 첫 사례다. 유튜브가 대세 플랫폼이라곤 해도, 지상파 시사교양 PD가 만드는 콘텐츠인데 남들과 똑같은 브이로그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맞다. 브이로그가 개인 유튜버에게는 흔한 장르이지만, 방송사가 한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것도 미니 다큐라고 생각한다. 시사교양 PD이다 보니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교양물 싫어해’, ‘다큐 아무도 안 봐’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관심 있는 콘텐츠라면, 그들에게 익숙한 문법이라면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브이로그가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익숙한 형식이라면 이런 틀을 활용한 시사교양 장르로의 확장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본다. ‘오느른’도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고, 언제라도 TV판으로 편집할 수 있도록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 ‘오느른’이 시사교양 장르로 확장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브이로그이지만 나는 일종의 주거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직장인이 꿈꾸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경험해 보여드리는 일이기도 하고, 시골에 버려진 폐가가 많은데 호화로운 별장이 아니더라도 그런 곳을 활용해 나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다. 리모델링한 폐가를 플랫폼화한다면, 완전한 귀촌은 아니더라도 귀촌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국내 관광지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나. 전국 각지에 이런 공간들이 존재한다면 관광객도 분산되고, 우리 농촌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 여러 지자체에서 폐가를 청년 창업·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기존 빈집 활용 프로젝트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어린 친구들이 삶의 터전을 갑자기 농촌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힘들고 답답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더라.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고, 청년들이 떠난 집이 다시 흉물스럽게 남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이곳의 생활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은 서울 생활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한 거라면, 당장 농사를 지어야 할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데 어떻게 하겠나. 갑작스러운 이주보다는 농촌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고,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 유튜브 채널 ‘오느른onulun’

-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은 기존 주민들과의 갈등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

“이 동네는 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서울에서는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지만 여기서는 완전 어린 나이이다 보니 다들 이것저것 잘 챙겨주시고 도와주신다. ‘오느른’에 등장하시는 것도 추억 쌓인다고 너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PD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대부분 아이템이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 이런 부분에 대해 늘 아쉬웠고, 인연을 맺고 끊음에 있어 고민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이웃이고, 최소한 연말까지는 여기서 함께 살며 가는 거니까 너무 좋더라. 매일 무언가 새롭게 계획하지 않아도 이웃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음식 나눠 먹고 하는 것들이 휴식이 되고 있다. 마을 분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복 받은 것 같다.”

- 연말까지는 ‘오느른’에 집중할 수 있게 됐지만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평화로운 김제 라이프를 이어가기 위한 목표가 있을까.

“구독자나 조회 수야 높으면 높을수록 좋겠지만 딱히 비교 대상이 없어 목표치를 잡기도 애매하더라. 맨 처음 기획안 낼 때는 20만, 100만 이야기했는데 정말 뭘 몰라서 한 얘기였다.(웃음) 일단은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가 화두인데, 재택근무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되면 삶의 형태, 주거의 형태도 다양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신축 오피스텔에 살 때 너무 힘들었다. 약간 불편해도 옥탑방, 구옥을 찾아다녔다. 유튜브 댓글을 보면서 생각보다 나와 같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먹고 살기 위해 서울에 살지만 농촌을 갈망하는 분들에게 ‘오느른’이 위안이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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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2020-09-10 22:05:20
멋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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