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주의 프로파간다의 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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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주의 프로파간다의 트릭 
[비필독도서 34] '신극우주의의 양상'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0.09.07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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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으면 순교하겠다”고 말했다. “파시즘적 선동의 구조와 그 선동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심리학적 기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한국에서도 필요해 보인다. ⓒ뉴시스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으면 순교하겠다”고 말했다. “파시즘적 선동의 구조와 그 선동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심리학적 기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한국에서도 필요해 보인다. ⓒ뉴시스

[PD저널=오학준 SBS PD] 반세기 전의 강연이 지금 출간된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거나, 달라진 오늘을 충실히 예측했거나. 1967년 4월 6일, 오스트리아 사회주의학생연합의 초청을 받은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빈 대학에서 진행한 <신극우주의의 양상>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강연처럼 보인다.

1967년은 위기의 해였다. 독일의 국민총생산은 독일연방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1964년 창당한 극우주의 정당 독일민족민주당은 브레멘을 포함해 주 의회 다섯 곳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아도르노는 경제적 파국과 민주주의의 위기가 맞물린 정세를 설명해야 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전후 20여 년이 지난 1967년에도, 겉보기와 달리 극우주의의 불씨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경제‧심리‧역사 영역에 숨어 있는 이 극우주의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이 불씨를 진압해야 할 의무가 동료 시민에게 있음을 간결한 언어로 설명한다.

아도르노는 1950년 자신이 발표한 <권위주의적 인격>을 여러 차례 인용한다. 연구에 따르면, 파시즘과 나치즘에 쉽게 이끌리는 사회적 인격의 형태로서 ‘권위주의적 인격’을 소유한 이들은 소속 집단의 권위에 쉽게 복종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며, 소수에게 공격적인 성격을 보인다. 그가 보기에 이들은 극우주의의 주요 은신처다.

동시에 권위주의적인 주체를 형성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진단한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은 변하지 않았다. 심화되는 빈부격차는 노동자, 소상공인, 농민의 생존을 위협한다. 자동화 기술의 발달과 자본의 집적 경향은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노동 판매를 불가능하게 한다. 계층 하락의 공포는 변혁보다 사회적 파국의 자양분이 되기 쉽다.

게다가 세계가 소수의 거대한 블록으로 쪼개지고 개별 국가는 블록 내에서 부차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던 냉전 상황은, 독일의 ‘주권’이 외세로부터 간섭받고 있다는 박해망상에 연료를 공급했다. 박해망상은 만약 미국이나 소련의 간섭만 없다면 독일은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나르시시즘의 이면이기도 했다.

아도르노는 독일의 역사적 맥락을 덧붙인다. 민족국가의 성립이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늦었다는 사실은, 민족 정체성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콤플렉스처럼 작동했다. 단결이 중요하며, 정당정치의 기초인 “정치적 타협이 그 자체로 이미 타락의 형식”이라는 생각이 편재해 있다. 공포와 사회적 파국의 감정이 독일에서 확산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신극우주의의 양상'
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신극우주의의 양상'

극우주의가 이론이 없고 정신적 수준이 낮기에 실패하리라는 전망은 순진하다. 오히려 “극우주의 운동들에서 프로파간다는 그 자체가 정치의 실체”다. 비합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리적 수단을 사용하는 문명의 경향을 지적했던 아도르노는, 프로파간다를 위한 정교한 메시지들을 개발하는 극우주의 운동이 이 경향에 부합한다고 본다.

잃어버린 적 없는 낙원에 대한 향수, 거짓된 상실에 근거한 세계 몰락의 판타지는 이 정교한 메시지들에 힘입어 강력한 정치적 운동으로 발현된다. 이들의 행하는 민주주의의 파괴는 계산된 결과다. 그는 세상엔 ‘영영 교화될 수 없는’ 부류가 있고, 아무리 애써도 제거할 수 없다고 내버려두거나 쉬쉬하는 건 부르주아의 체념 어린 자기 위안이라 비판한다.

아도르노는 대신 극우주의 프로파간다의 몇 가지 반복되는 트릭들을 적극적으로 파헤친다. 여기엔 반박할 수 없는 거짓된 숫자들을 동원하거나, 숫자 하나에 집착하여 주장 전체를 파기하거나, 공식적인 무언가로 사칭하거나, 극우주의도 단지 이념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프로파간다의 방식들이 포함되어 있다.

트릭들을 해체하면서 아도르노는 극우주의가 “거대한 심리적 협잡의 기술”이자 “거대한 심리적 사기”로 귀결됨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편견에 가득한 이들도, 극우주의 선동의 이면에 숨겨진 명백한 이해관계를 밝혀내고, 극우주의가 그 추종자들까지 계산된 재앙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면 다르게 반응할 것이라 생각했다.

2010년대 초반의 남유럽 경제 위기와 EU에 대한 회의감은 극우주의 정당의 발흥에 영향을 미쳤다. 2013년 창당한 극우주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성공과, AfD와 연정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던 메르켈 총리의 모습은, 독일이 여전히 나치즘과 파시즘의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폴커 바이스가 해제에서 요구하는 “파시즘적 선동의 구조와 그 선동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심리학적 기반”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한국에서도 필요해 보인다. 박해망상, 가해자임에도 자신을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는 심리적 전도, SNS를 통해 정교한 가짜 뉴스를 적극적으로 배포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기법은 동일하다. “미래를 향해 띄워 보낸 병 편지”를 읽을 때다.

몇몇 광신도를 제거하거나, 희화화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극우주의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귀속되지 않는다. 운동의 지지자들 역시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이들을 건강한 민주주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제도의 실패를 짚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이 절박함이 출간의 이유일 테다.

명쾌한 진단이지만, 궁금증도 인다. 그는 “이성의 단호한 돌파력으로, 정말로 비(非)이데올로기적인 진실로써 극우주의에 맞서 싸워야”한다고 절박하게 외치지만, ‘탈진실’의 시대에 진실이나 이성은 예전 같은 신뢰가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시대에, 거짓을 폭로하고 진실을 말하는 일이 반감만 부추길지도 모른다. 권위주의적 인격 연구의 기초를 이루는 정신분석학은 ‘진실’인지도 물어야 한다. 대답은 남아있는 우리 동료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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