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웹툰 작가’ 주호민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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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라디오 '허지웅쇼'에 출연해 리코더 연주를 보여준 주호민 작가
요즘 차기작 안풀린다고 했지만, 성숙한 삶의 태도 인상적

지난 15일 SBS '허지웅쇼'에 출연한 주호민 작가.
지난 15일 SBS '허지웅쇼'에 출연한 주호민 작가.

[PD저널=김훈종 SBS PD]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만화대상 대통령상 수상자,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비롯해 천만 영화 두 편의 원작자, <무한도전>‧<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인기 예능 출연은 물론이요, 아예 자기 이름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론칭한 스타 웹툰 작가, 한남동에 빌딩이 있고 더 이상의 연재 없이도 철마다 ‘벚꽃 연금’마냥 입금이 된다는 세상 부러운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 남자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생방송 스튜디오로 세상 소탈하고, 선하고, 웃음기 가득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사내가 들어왔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과 닮아가나 봅니다. 지난 15일 SBS<허지웅쇼> ‘이 맛에 산다’코너를 찾아준 주호민 작가는 <신과 함께>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스타 웹툰 작가가 되어 부와 명예를 긁어모았지만, 그의 모습에는 과잉된 자의식을 초월해버린 겸양과 따뜻함이 가득 배어있었습니다.  

<한밤의 TV연예>로 PD 생활을 시작해 20년간 하늘의 별보다 많은 창작자들을 만나, 인터뷰해봤습니다. 영화배우, 감독, 가수, 작곡가, 애니메이터, 모델, 포토그래퍼, 기자, 평론가, 댄서, 연주자 등 대한민국에 활동하는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을 신물 나게 접해봤지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나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주성치도 인터뷰해봤으니 해외의 창작자들도 꽤 만나 봤네요.       

수많은 창작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예술가들은 확실히 보통 사람들과 다르구나!’였습니다. 대체로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었습니다. 성취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비례해 과잉된 자의식을 아우라처럼 뿜어댔습니다. 뜨니까 건방져졌다, 라고 흔히들 표현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깁니다. 예술가에게는 자의식에 뿌리를 두고 자라난 치기(稚氣) 혹은 무모함이 필요합니다.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구나!’ 황희 정승 같은 마음으로는 예술혼이 불탈 수 없지요. 비록 먼 훗날 돌이켜보건대 자신의 오해를 사과하거나 후회할지언정, 어떤 사안에 대한 분노나 흥분이 있어야 합니다. 

신파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대표적인 작품이죠. 흔히 신파라고 하면 최루성 통속극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파新派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물결, 뉴웨이브를 의미합니다. 원래 신파극은 일본에서 구파인 가부키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된 용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910년부터 40년대까지 유행했습니다. 이 시절 동양극장에서 가장 크게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입니다. 벌써 제목부터 신파의 정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막장 드라마라고 욕을 하면서도 열심히 보는 시청자들이 많은 것처럼, 신파에는 ‘MSG의 힘’이 가득합니다. 김중배나 심순애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지만, 신파극에서는 오직 이수일의 순정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재밌는 거지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아시죠? 우리 모두 알고는 있지만, 읽어본 이는 가물에 콩 나듯 드문 소설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엔 전면적 진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안드레이의 입장도, 피에르의 입장도, 심지어 나타샤의 입장까지 알뜰살뜰히 챙기는 <전쟁과 평화>는 지루하고 무미건조해 보일 수밖에요. 하지만 톨스토이는 전면적 진실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명작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주호민 작가는 요즘 작품이 잘 안 풀린다며,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다음 작품이요? 구상하고 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는데, 요즘은 없어요. 어떤 사안에 대해 좀처럼 화가 나지 않아요. 이 사람 얘기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얘기 들으면 또 그게 맞는 것 같고, 그러네요.”

하지만 주호민 작가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바로크 시대부터 내려온 악기라면서 리코더를 경쾌하게 연주하는 그에게서, 엄청난 부를 일궈냈지만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송사까지 찾아온 그에게서, 편집자를 배려하기 위해 언제나 일주일 전 마감 원고를 보낸다는 그에게서, 톨스토이의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과잉된 자의식을 바탕으로 흥분, 분노, 치기를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면, 앞으로 나올 작품은 한 층 더 깊어진 향기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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