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만들기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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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의 시작 '캐릭터 구축'
인간관계에선 선입견 만드는 길...본래의 모습 받아들이는 노력해야

ⓒ픽사베이
ⓒ픽사베이

[PD저널=허항 MBC PD] 예능 프로그램의 시작은 캐릭터 구축이다. 모든 소설이나 영화가 그렇듯 말이다. 특히 대본이 따로 없는 리얼 버라이어티나 관찰예능, 또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출연자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가 결정된다. 프로그램 초반에 ‘이 사람은 이런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잘 각인시켜야 시청자들도 해당 출연자에게 몰입을 하고, 그 행동패턴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PD들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출연자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촬영 현장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성이 드러날 것 같은 설정을 만들기도 하고, 편집 과정에서는 출연자의 행동이나 발언들을 신중히 취사선택해,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가진 인물로 다듬어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로소 예능 ‘캐릭터’가 탄생한다.   

경험상 특정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특정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계속 보고 싶은 것이 시청자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개념이 PD뿐 아니라 많은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도 익숙해진 지금, 한 가지 현상을 경험한다. 바로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캐릭터화하곤 하는 모습이다. 이 사람은 ‘다재다능한 인싸’, 저기는 ‘성실한 모범생’, ‘차가운 사이보그’, 또 저 사람은 ‘꽉 막힌 꼰대’.... 

그런데 캐릭터라는 개념은 허상에 가깝다. 실제 그 사람의 모습에서 특정 부분을 확대하고, 어떤 부분은 걸러내면서 다듬어진, 가상 아닌 가상의 존재인 것이다. 즉 그 사람의 모든 면을 담아내지는 못하는, 극도로 압축된 그 무엇이다. 80분~100분 사이에 기승전결을 담아야하는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은 등장인물들 역시 어느 정도의 일관적인 결을 가져야 스토리 전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 누구도 일관적일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실생활에서 누군가를 캐릭터화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해야할 사람’으로 미리 정해진 틀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꼰대’ 캐릭터로 규정된 사람에게서 의외의 개방적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인 사람에게서 따뜻한 배려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라서 한 사람을 한 줄의 캐릭터에 담는다는 건 무리다.

사람 만날 일이 전보다 많지 않은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직업적 습관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실제 인간관계에서 캐릭터 만들기의 함정에 빠져있는 건 않은지 돌아본다. 어떤 사람을 쉽게 규정해버린 후, 그 사람을 내가 만든 캐릭터 안에 가둬버리는 경우는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특히 누군가를 부정적인 캐릭터로 단정하고, 숨은 장점을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아 뜨끔해진다. 첫인상의 짧은 느낌을 캐릭터로 만들어버리거나, 제3자의 전언으로만 접한 캐릭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앞으로도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새롭고 매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자 고군분투하게 될 것이다. 캐릭터 하나가 프로그램 하나를 구원해내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예능PD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이상 더욱 매진해야하는 숙명 같은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램 안에서의 일이다. 방송은 24시간 찍은 원본을 80분 안에 압축해 넣어야 하지만, 사람은 함부로 압축할 존재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정리되지 않고 펼쳐진 원본의 느낌 그대로 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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