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와 롤링스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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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가수'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강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이번 추석 연휴에 방송된 특집 프로그램 중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화면 갈무리.
이번 추석 연휴에 방송된 특집 프로그램 중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화면 갈무리.

[PD저널=허항 MBC PD] 올 추석을 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아무래도 나훈아님인 것 같다. 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나훈아’라는 이름은 참 핫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 없이 녹화된 콘서트인데도, 무대를 사로잡는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귀에 익은 히트곡들보다 더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다. 바로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였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나오는 멘트와 가만히 서있는 모습도 어떤 강한 에너지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연세가 어느 덧 70대 중반이신데, 어쩐지 ‘노인’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원로 가수’라는 수식어도, 무대를 채우는 그 강한 에너지 앞에서는 뭔가 힘없는 표현인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아우라’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한 명의 사람이 국민의 30%를 TV 앞에 끌어 모을 수 있을까. 방송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저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비슷한 생각을 몇 년 전에도 했던 것 같다. 바로 2016년 롤링스톤즈 아바나 공연 영상을 보면서다. 야외경기장을 꽉 채운 아바나 시민들을 쥐락펴락하며, 스키니한 몸매와 날렵한 무대매너를 뽐내던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의 마력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롤링스톤즈 멤버들 역시 이제는 팔순을 바라보는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더 에너제틱했다. 아니, 젊은 가수들도 따라갈 수 없는 어떤 강력한 마력이 그들에게 있었다. 

2016년 롤링스톤즈의 아바나 공연 실황 화면 갈무리.
2016년 롤링스톤즈의 쿠바 아바나 공연 실황 화면 갈무리.

‘무엇을 좇으며 살았느냐’가 결국 그 사람의 외면에 나타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평생 지식을 좇은 학자의 말과 눈빛에는 그 지식이 묻어있다. 평생을 인권운동에 바친 원로 운동가의 눈빛, 평생 성실하게 장사한 상인의 눈빛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평생 아름다움을 좇은 배우나 화가의 모습도 뭔가 남다르다. 휠체어에 앉아 색종이를 오리는 마티스의 노년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고, 평생 순수한 색채를 좇아온 사람의 순수한 아우라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평생 선한 영향력을 도모한 오드리 헵번의 노년시절 얼굴은, 스틸 사진 한 장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평생 음악을 좇아온 사람들인 나훈아와 롤링스톤즈. 부와 명예도 거머쥐었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던 인생사. 그 부침 위에서도 오롯이 음악의 길을 걸은 시간들이 얼굴과 몸짓에 담겨 그런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살아온 70여년의 인생만이 만들 수 있는 독보적인 아우라는, 혈기왕성한 천재 뮤지션도 아직은 가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요즘,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내 안에는 어떤 것이 쌓여가고 있을까. 물론 이번 생에서 갑자기 나훈아나 믹재거 같은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가진 할머니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저 할머니는 왠지 괜찮게 살아온 분인 것 같아’라는 느낌을 주는 노인이 된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는 무엇을 좇으며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과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하루하루의 시간과 순간순간의 생각들이 쌓여 미래의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허투루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나는 나훈아나 믹 재거 같은 비범한 사람이 아니기에 더욱, 내 안에 쌓여가는 것들에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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