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용’ 쓴 박상규 기자 “월급에 묶인 기자들, 다양한 도전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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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용’ 쓴 박상규 기자 “월급에 묶인 기자들, 다양한 도전해봤으면”
재심사건 실화 토대로 한 SBS '날아라 개천용' 집필한 박상규 '셜록' 대표기자
"'기자사회를 왜 바보처럼 그렸냐'는 반응도 있지만...'선민의식' 꼬집고 싶었다"
"시간차 단독경쟁 벌이는 구조 벗어나 다양한 분야 조명 필요"
  • 안정호 기자
  • 승인 2020.11.13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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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SBS 금토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PD저널=안정호 기자] 지난달 30일 방송을 시작한 SBS <날아라 개천용>에 등장하는 생계형 기자 '박삼수'(배성우 분)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봐오던 기자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TV를 조립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발로 뛰는 인터넷매체의 기자가 된 '박삼수'는 직장마저 잃고 맨몸으로 세상에 맞서는 인물이다.  

'박삼수'는 <날아라 개천용>의 원작인 <지연된 정의> 공동저자로, 이번에 드라마의 대본까지 쓴 박상규 기자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다. <오마이뉴스>를 거쳐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대표로 있는 박상규 기자는 마지막으로 정주행한 드라마가 18년 전에 방영된 <네멋대로 해라>일 정도로 드라마에 문외한이었지만, <날아라 개천용>의 집필을 맡았다.  

<날아라 개천용>은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가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등의 재심 사건을 기록한 <지연된 정의>를 재구성한 작품. 경험담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박 기자의 대본은 재심 사건을 이끄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박상규 기자는 “대본을 쓸 때 태용과 삼수라는 캐릭터를 실제 저와 박준영 변호사와 비슷하게 그렸다"며 "태용은 천연덕스럽고 귀엽게 뻔뻔한 모습이, 삼수는 지저분하고 말도 거친 털털한 모습이 실제 모델과 비슷하다"고 했다. 

대검 부부장 검사인 장윤석(정웅인 분)이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이번 출입기자 중에는 서울대가 한 명도 없다'고 비아냥거리는 대사나 박삼수의 회사 대표가 신사옥을 짓기 위해 서울시장 '강철우'의 자서전을 쓰겠다고 나선 에피소드도 박 기자의 간접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극 중에서 박삼수가 폭력에 시달린 딸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으로 특종을 터트린 뒤 "집, 학교에 찾아간 기자가 아무도 없었다. 기자가 현장에 가서 당사자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써야지"라고 후배기자들에게 일갈하는 장면에선 '받아쓰기' 보도 행태를 꼬집기도 한다. 

언론 불신의 단면을 드러내는 이야기이지만, 기자 집단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불만도 있었다고. 박 기자는 "기자 사회를 바보처럼 그려놨냐는 얘기도 있고, 너만 잘났냐는 반응도 들었다"며 "자세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엄청 부답스러웠고, 지금도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언론인을 어떤 시선으로 그리고 싶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슈가 터지면 모두 똑같은 기사를 쓰고 시간차 '단독' 경쟁을 벌이는데 지나친 경쟁 과열이 실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면서 "기자들이 삼수처럼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보이지 않은 곳을 조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우린 기레기 아니잖아'라는 잘난 척, 선민의식을 꼬집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지금 쓰고 있는 20화 대본까지 탈고하면 본업인 언론인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어제보다 좋은 글을 쓰는 게 목표"라는 그는 "드라마를 써봤으니 이제 좀 더 좋은 기사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날아라 개천용>을 통해) 동료기자들에게 기자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11일 PD저널과 인터뷰 중인 박상규 작가 ⓒPD저널
지난 11일 PD저널과 인터뷰 중인 박상규 작가 ⓒPD저널

-어떻게 <날아라 개천용>을 집필하게 되었나.

“2018년 여름에 만난 곽정환 감독이 <지연된 정의>를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판권을 구입할 수 있겠냐고 물어봐서 당연히 고맙다고 했는데, 혹시 대본을 써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당시에 <셜록>이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해서 크게 망설이진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곽 감독이 소설도 한번 써봤으니 대본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디테일은 강할 것이고 설득했다. 드라마 작가하고 싶어 오랫동안 준비하는 지망생도 있는데, 거부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대본의 작법은 기사 작성과 다른데, 대본 집필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다. 

“막상 드라마를 써보니까 기사는 드라마보다 쓰기 편한 것이었다. 기사는 팩트나 구성요건에 맞춰 사실을 전달하면 되는데 드라마는 재미도 있어야 하고, 시청자를 50분 동안 자리에 앉혀놔야 한다." 

-대본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끊임없이 갈등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드라마는 갈등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겉돌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또  그 속에서 메시지도  전달해야 한다. 누군가 드라마 50분은 상업주의 전쟁터라고 하던데, PPL을 넣어야 할 때도 스스로 닭살이 돋고 힘들었다." 

-대본을 보고 집필을 처음 제안한 곽정환 PD이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처음 썼을 때는 단칼에 '까였다'. 곽정환 감독한테 ‘드라마란 무엇인가’ 강의를 듣다시피 했다. 내가 대본을 쓰면 ‘드라마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는 사건·사고보다 주인공이 중심이다’ 등등 드라마가 무엇인지 강의를 들었다. 마치 한글 모르는 아이 글 가르치 듯이 여기까지 왔다.”

-재심 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룬 드라마인데, 편성은 쉽게 된 편인가. 

"<날아라 개천용>은 아이돌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도 아니고, 살인누명과 재심을 다룬 무거운 소재의 드라마다.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신인 작가가 쓴 작품이고. 보통 대본 1, 2화와 시놉시스를 방송사에 넘기는데 처음엔 다 안한다고 했다. 그때 사실 멘붕이 왔었다. 몇 개월 간 대본 진도도 안 나갔다. 다시 한번 시놉시스를 돌렸는데, 그때 SBS가 하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재밌었나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서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평가가 많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대사가 살아있다, 생동감 있는 언어를 구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자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쌓여왔던 말들이 도움이 됐다. 예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수많은 언론사가 건물 하나 올리려고 시장에게 잘 보이려고 했고, 실제 이명박 시장 인터뷰가 많이 나왔었다. 극 중 장윤석처럼 검사들이 출입기자들과 술을 마실 때 출입기자들이 어느 대학 나왔고 무슨 기사를 썼고 나이가 몇 살이고 이런 것들이 적혀있는 파일을 들고 온다는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에 대사로 쓴 '이번 출입기자 중엔 왜 서울대가 없어'란 말도 동료들이 실제 들은 이야기다. (박삼수처럼) 기자 중에 달려들어 싸웠던 일도 사실이고.”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대본을 집필하는 입장에서 본 드라마는 어떤가. 일반 시청자와는 다를 것 같은데. 

“사람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3화에서 시청률이 떨어질 때 한 걸음 떨어져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니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엔딩을 좀 더 극적으로 갔어야했나 싶기도 하고, 클라이막스를 좀 더 후반에 배치하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건 시청자들은 조금만 재미없으면 채널 돌린다는 거다. 예전엔 드라마를 잘 안봤는데 다른 드라마도 많이 봐야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정주행해서 본게 18년 전에 방영된 <네 멋대로 해라>다.”

-<날아라 개천용> 역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재심이 큰 줄기다. 재심 사건의 전개 과정이 드라마와 얼마나 비슷한지 궁금하다.  

“드라마 상에서는 누명 쓴 사람들이 먼저 도와달라고 찾아오는데 실제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면서 산다. 삼례 사건을 취재할 때 오히려 누명을 쓴 사람들이 우리를 피했다. 자신을 괴롭히러 온 사람들인 줄 알고. 권력자들이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을 골라서 누명을 씌운 것이다. 약한 사람들은 그 억울함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게 슬픈 거다.”

-그동안 기자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현직 기자가 기자사회를 드라마에 담은 건 처음 아닌가. 언론계 내부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직 기자로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동료들을 욕하는 거 같아 부담이 컸다. (대본을 처음 쓸 때도)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지금도 그렇다. 기자사회를 왜 이렇게 바보처럼 그려놨냐는 얘기도 있고, 너만 잘났냐는 반응도 들었다."

-“그러니 기레기 소리 듣지” "현장을 찾아간 기자가 아무도 없었다" 등의 대사에는 언론에 대한 사회적인 불신과 자조가 섞여있다. 드라마에서 언론인을 어떻게 어떤 시선으로 그리려고 했나.

“대한민국에는 기자가 참 많다. 많은 기자들이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곳을 조명했으면 했다. 요즘은 이슈 하나에 너무나 많은 경쟁을 한다. 똑같은 기사를 쓰면서 시간차 단독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되는 보도도 나오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기자는 직업으로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도하느냐에 따라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삼수가 사대문 안의 언론사를 나와서도 보도하는 모습을 통해 월급에 묶이지 말고 뛰쳐나와서 도전해보란 메시지도 주고 싶었다. 또 ‘우린 기레기 아니잖아’, ‘우린 괜찮잖아’라고 생각하는 잘난 척, 선민의식 등을 꼬집고 싶기도 했다.”

SBS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박상규 작가 ⓒPD저널
SBS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박상규 작가 ⓒPD저널

-무거운 소재를 경쾌하게 그려가고 있지만, 결국은 위법한 공권력을 고발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이야기다. <날아라 개천용>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세상을 지켜나가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었다. 불의를 목도했을 때 차마 외면하지 못해 뒤돌아서 돕는 마음이 세상을 지킨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통해 사회에 필요한 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무심하게 던지는 연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드라마 속 삼수와 태용을 통해 그 진정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정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날아라 개천용>으로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시청률은 처음에 20%를 예상했는데 지난 주에 5%대가 나와 충격을 받았다.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드라마가 후반으로 갈수록 큰 울림을 준다. 아주 소박한 목표로 10%는 넘지 않을까 싶다.(웃음) 또 하나는 동료기자들에게 기자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좋겠다. 나도 했으니가 너도 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날아라 개천용> 이후에도 드라마 작가로 활동할 생각이 있나.

"드라마 두 편을 집필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개인적으로 우리 엄마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산업화 시기에 희생했던 엄마 세대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당신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20부까지 탈고하면 본업으로 돌아가는데, 기자 박상규의 계획은.

"어제보다 좋은 글을 쓰는 게 내 목표다. 드라마를 써봤으니 이제 좀 더 좋은 기사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영화화, 드라마화가 가능한 오리저널 콘텐츠를 취재를 통해 찾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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