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사고가 사건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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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사고가 사건이 되는 순간
막을 수 있었던 비극, '인재'는 왜 반복되는가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11.2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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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한 달 뒤의 남자와 한 달 전의 여자.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미래와 과거의 시간을 중첩시킨다. 한 달 뒤를 살아가는 김서진(신성록)과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이세영)는 매일 밤 10시33분. 단 1분 간 핸드폰으로 연결된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시간 판타지의 룰이지만, 이 1분을 공유하는 이들의 절박한 상황들로 인해 드라마틱하고 다양한 이야기들로 변주된다. 

그 절박함은 자신과 가족이 겪는 비극에서 비롯된다. 김서진은 어느 날 어린 딸이 유괴되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내 강현채(남규리)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절망에 빠진다. 그래서 자신의 핸드폰이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와 하루 한 번씩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과거를 바꿔 비극을 막으려 한다. 한편 한애리는 갑자기 실종된 엄마를 찾는 일을 김서진과 공조하고, 점점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김서진은 자신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모종의 사건에 뛰어든 한애리가 그 현장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에게 현장에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가까스로 현장을 피한 한애리가 살아남게 되자 한 달 후를 살아가는 김서진은 그 사건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걸 알게 되고,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는 데 희망을 갖게 된다. 자신과 가족에게 벌어졌던 비극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이렇게 일어날 일들을 미연에 막고 미래를 바꿔나가는 이야기로 흘러가면서 드라마는 점점 김서진이 일하고 있는 유중건설에 의해 벌어졌던 사고들이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김서진의 딸을 유괴했다고 자수한 김진호(고규필)는 유중건설이 불량자재를 쓴 건물에 불이 나 딸을 잃었고, 과거 유중건설이 참여했던 태정타운 붕괴사고로 한애리의 아버지가 사망했으며, 붕괴현장에 있었던 김서진은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강현채와 딸이 살아있고, 김서진을 보좌하던 서도균(안보현)과 강현채가 이전부터 내연관계였다는 반전도 드러난다. 유괴와 살인사건을 계획한 이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유중건설이라는 회사, 사고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

사실 시간을 되돌린다는 타임리프 장르들이 항상 추구하는 이야기는 과거에 벌어진 어떤 후회스런 일들을 바꾸고픈 욕망에 대한 것들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판타지에 기대서라도 되돌리고픈 욕망이 타임리프라는 장르에 투영되어 있다.

<카이로스>가 유중건설로 인해 벌어진 붕괴사고와 화재사고를 밑그림으로 그려 넣은 건 우연이 아닌 듯싶다. 마치 개발시대의 후유증처럼 수십 년 간 지속적으로 벌어졌던 무수한 참사들의 비극은 우리에게 저마다의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붕괴되고, 대교가 무너지며, 지하철 화재로 무수한 인명이 사망하고,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비극을 맞았다. 빠른 속도와 결과만을 추구하던 시대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미래에 벌어질 위험으로 남아있는 상황이 아닌가.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는 <카이로스>의 설정은 그 자체로 과거와 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나타난 사고는 그래서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그것은 과거에 누군가 했던 어떤 선택으로 미래에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소 복잡한 사건들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겹쳐져 벌어지지만, 그럼에도 <카이로스>를 몰입해서 보게 되는 건 그것이 우리 안에 이렇게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우연히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인과에 의한 사건이었다. 과거에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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