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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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혼밥
[뽕짝이 내게로 온 날 47]
  •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 승인 2020.12.31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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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동구청 농구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 지어 서 있다.ⓒ뉴시스
2020년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동구청 농구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 지어 서 있다.ⓒ뉴시스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2020년은 시작과 끝이 코로나19로 점철됐다. 하루빨리 종식되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대의 희망이었는데, 이즈음 일상의 개념이 바뀌어서 코로나가 일상인 듯하다. 나 혼자 조심한다고 극복되는 전염병이 아니어서 일 년 내내 가슴 졸이고 불안해하며 몸을 사렸다. 대부분 모임과 활동을 줄이고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이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과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그 시기의 향방은 일관되게 회사와 집, 또는 집 또는 회사로 흘러갔다. 아침 7시 30분 집에서 나와 회사에서 업무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도 대충 오후 7시 30분. 시계는 이렇게 12시간 단위로 움직였다. 

지금 지금 우리는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닌 것
분명 네가 알고 있는 만큼 나도 알아
단지 지금 우리는 달라졌다고 먼저 말할 자신이 없을 뿐
아 저만치 와 있는 이별이 정녕코 무섭지는 않아
두 마음에 빛바램이 쓸쓸해 보일 뿐이지
(조영남 노래 <지금> 가사 일부)

2020년 하반기 즈음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던 전주와 익산 완주 부근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코로나 19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방송사 직원의 부인이 확진자와 접촉해 직원도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했었고, 방송사 직원의 딸이 다니는 학교의 급식교사가 확진을 받아 전 직원이 긴장을 했다. 다행히 음성으로 판명되었지만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몸과 마음이 괴롭기만 했다.

대입 수능 즈음에 남편도 새로운 인연을 찾아 면접을 준비 중이던 시기였다. 남편이 오랫동안 준비했고 고심해서 결정한 일이라서 면접 날까지 모든 가족이 각별히 몸조심을 하며 D데이를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또다시 익산지역 확진자가 늘어서 스스로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들은 친구들과 두 달 여 만나지 못한데다 아빠의 면접 즈음에는 컵 밥을 다량으로 주문해서 연구실에서 혼자 해결했고 나 역시 혼밥을 했다. 남편의 합격 여부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만, 혹시라도 아들과 내가 외부로부터 코로나에 감염되어 남편이 면접을 치르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봐 극도로 긴장했던 것이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락으로 찰밥을 싸 보자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처음 지어본 찰밥은 물 양을 조절하지 못해 매우 질었다. 질척이는 밥을 김에다 싸 먹으면서 ‘그래도 먹을 만하다’고 감격했다. 때마침 김장철이어서 여기저기서 맛있는 김치를 보내주신 덕에 김치 몇 조각과 작은 조미 김 한 봉지면 거뜬하게 넘겼다. 

두 번째는 찹쌀을 오래 불리고 물을 조금만 넣으라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찰기는 조절이 되었지만 조금 싱거웠다. 그래도 도시락에 차곡차곡 담아서 냉동실에 담으면서 스스로 대견했다. 인터넷으로 도시락 통을 주문해서 시래기 국도 담았다. 점점 성찬이 되어갔다. 세 번째는 조금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쌀을 7컵이나 불리고 소금도 조절해서 찰밥을 했다. 며칠 먹을 분량을 냉장고에 넣고 찰밥 좋아하는 후배들과 조금 나누었다. 나눌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어서 기분이 좋았다. 김장김치만 있으면 며칠은 거뜬했다. 직원들이 식사하러 나간 사이 후다닥 먹고 환기시키니 크게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남편의 면접을 앞둔 마지막 금요일에 도시락을 가지고 출근했더니 그날따라 사무실과 스튜디오 방역을 한다고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사무실을 비우라는 것이었다. 모처럼 주어진 두 시간의 점심시간에 조금 사치를 부리기로 했는데 난관에 봉착했다. 스타벅스 드라이브 쓰루에서 카페라테를 한잔 사려고 들어갔다가 20분이나 기다렸다. 그날따라 기계 한 대가 고장 났다는데, DT 특성상 되돌아올 수도 없어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라테 한잔 사는데 20분이나 소요되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지만 어렵게 받은 커피 한잔을 싣고 냄새를 조금씩 음미하며 마음을 돌려서 익산 웅포 곰개나루로 향했다. 포구 모양새가 곰이 금강물을 마시는 형국이라는데, 웅포 곰개나루의 석양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정작 석양을 만날 시간은 아니지만 코로나 시대 조금 한적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다. 잘 조성된 캠핑장 건너로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겨울 금강은, 한 겨울 우물가에서 세수할 때처럼 첫 물은 가슴이 아리지만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 나면 추위가 가시는 것처럼 이내 개운하고 맑다. 그 강물에 마음을 담가 상념을 씻어 본다. 

한 겨울 매운 바람 강물은 얼어붙어
무심한 겨울새만 날개 짓 흥겨운가
세월을 건지려는 늙은이의 찬 그림자
철다리 기둥 밑에 조그맣게 놓여있네
겨울바람 하얀 눈이 얼음지붕 덮어주어
뭇사람들 착한 눈엔 아름답게 보이지만
기다려 지켜 보라 깃털 빌린 까마귀를
날이 가고 봄이 오면 검은 강물 떠오른다
(이장순 노래 <겨울 강변> 가사)

전북 익산시 웅포면 금강곰개나루에서 해가 넘어가는 모습. (사진=익산시청 제공)ⓒ뉴시스
전북 익산시 웅포면 금강곰개나루에서 해가 넘어가는 모습. (사진=익산시청 제공)ⓒ뉴시스

혼자 식사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자동차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작정했다. 다행히 햇살은 따스했고 주차장 풍경도 나쁘지 않아서 멀리 금강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열었다. 회사 탕비실에서 쟁반을 준비해 온 덕에 조수석에 쟁반을 놓고 반찬을 가지런히 놓았다. 찰밥, 김, 김치, 멸치조림, 오징어채 조림을 나란히 펼치고 시금치 된장국을 담은 보온 도시락을 열었다. 코로나 때문에 혼자 먹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된장국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적시고 찰밥에 김을 말았다. 오물오물 씹으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캠핑을 마친 가족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난로까지 이삿짐만 한 분량이었다. 부모는 그 많은 짐을 실어 나르기에 바빴고 아이들은 깔깔대며 쏘다니기에 바빴다. 코로나 시대 모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다시 찰밥 한 숟가락에 김치를 얹어서 먹고 목메지 않게 된장국도 들이킨다. 또 주위를 돌아본다. 중년 여성 두 분이 산책을 한다. 코로나와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온통 가린 채 눈만 빼꼼하다. 그 모습도 재미있다. 반찬을 골고루 먹어보았다. 유난히 맛있었다. 햇볕이 따뜻해서 참 좋다는 생각도 한다.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러고 보니 행복이라는 단어를 쓴 지가 꽤 오래전 일 같다. 그동안 행복을 잊고 살았구나, 뭉클하다. 

It's gonna be another day
with a sunshine
햇살은 나의 창을 밝게 비추고
반쯤 눈을 떴을 때
그대 미소가 나를 반겨요
 
When we can get together I
feel paradise
이보다 더 행복할수는 없겠죠
아마 그럴거예요
지금 내 곁에 그대가 있잖아요
(중략)
지금 이순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겠죠
(장나라 노래 <Sweet Dream> 가사 일부)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데, 고작 찰밥에 김치 도시락을 먹으면서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워도 되는지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고 카페 라테 한잔을 들이켰더니 시름이 다 내려간다.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혹은 남편의 면접만 아니었어도 내가 웅포 곰개나루까지 와서 찰밥을 먹을 일이 있었을까? 돈만 있으면 밥 한 끼 먹을 줄 알았는데, 이젠 돈이 있어도 맘 편하게 밥 먹을 곳이 마땅찮다. 몇 년째 김치 냉장고에서 잠들어있던 찹쌀을 소진하고 새 찹쌀을 사면서 찰밥 맛있는 줄 뒤늦게 알았다. 20분 동안 넋 놓고 자동차에서 기다려서 커피 한잔 받아 들고 그 커피 맛있는 줄 새삼 알았다. 가스레인지 위에 무심히 놓였던 시금치 된장국이 웅포에서 새 맛을 내는 줄 그제사 알았다. 엄마랑 이모가 해주신 밑반찬이 얼마나 맛있는지 다시 느낀다. 

세상 참 맛있다 아픔있어도 눈물 있어도 니가 있어서 
오늘도 웃는다 살 맛이 난다 함께하기에 세상 참 맛있어요
때론 힘에 겹고 슬픔에 눈물 흘리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기도 하고
때론 사랑에 미쳐 과분한 욕심에 지쳐
거참 되는 일 하나도 내겐 없지만
한걸음 물러서 세상을 바라봐
좋은 일도 많고 친구도 있잖아
세상 참 맛있다 아픔있어도 눈물 있어도
니가 있어서 오늘도 웃는다 살 맛이 난다
함께하기에 세상 참 맛있어요
(컬투 노래< 세상 참 맛있다> 가사 일부)

다행히 남편은 높은 경쟁률에서도 면접을 무사히 치르고 최종 합격자로 이름을 올렸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대입 수능 못지않게 남편의 큰 시험을 통과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합격의 기쁨을 안기까지 본인의 실력이 우선이겠거니와 아빠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가족들의 공도 작지 않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감히 도시락 투혼이라고 거창하게 붙인 이유도 그 처절한 몸부림이 어느 것과 비유할 바 아니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햇볕 한 줌 머무는 공간에서 도시락 챙겨 먹을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그래! 그 또한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올해는 나의 조그만 공간에서 나와서 좀 더 넓고 밝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도시락 투혼’이 아닌, 도시락 파티를 즐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솜씨가 부족하지만 그들이 괜찮다면 찰밥과 김치를 푸짐히 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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