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품은 방송, 기적 뒤에 남은 '잊힐 권리'‧저작권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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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품은 방송, 기적 뒤에 남은 '잊힐 권리'‧저작권 숙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김광석 소환...MBC, 김용균 주인공으로 VR 저널리즘 시도
방송계 고인 음성‧영상 활용한 기술 확대 전망
"'인간성' 어떻게 지킬 것인지 사회적 논의 필요"
  • 이재형 기자
  • 승인 2021.01.12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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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예고편 갈무리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예고편 갈무리

[PD저널=이재형 기자] 사회 각 분야에 녹아든 인공지능(AI) 기술이 방송가에도 성큼 들어왔다. 기억 속에 있던 스타의 목소리를 AI 기술로 되살리고, 추모의 대상이었던 고인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프로그램들이 지난해부터 속속 선보이고 있다.   

오는 29일 방송 예정인 SBS 파일럿 프로그램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은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다. 김범수의 명곡 ‘보고싶다’가 '영원한 가객' 故 김광석의 목소리로 들리는 예고편을 보고 김광석 팬뿐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놀라움과 기대감을 보내고 있다. 1996년 세상을 떠난 김광석이 2002년에 발매된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가창하는 '기적'은 AI 기술 덕분에 가능해졌다.    

앞서 지난해 Mnet <다시 한 번>에선 터틀맨과 김현식이, ‘빅히트 레이블즈’ 합동 콘서트에선 신해철이 홀로그램으로 대중과 만났다. 특히 2008년 숨진 터틀맨이 12년 만에 멤버 지이, 금비와 한 무대에서 열창하는 영상에는 '감동적이다'는 감상평이 줄을 이었다.  

지난해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모녀의 재회를 그렸던 MBC는 올해 영역을 확장했다. 오는 21일부터 3주간 방영되는 MBC VR 다큐멘터리는 사별한 아내를 VR로 재회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너를 만났다 : 로망스>(2부작)와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를 회고하는 <용균이를 만났다>로 구성됐다. 

특히 국내에선 생소한 VR 저널리즘에 도전하는 3부는 김용균씨가 처했던 노동환경 등을 VR 스튜디오에 구현해 현실감을 높일 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김종우 PD는 “해외에서는 시리아 난민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식의 VR저널리즘이 시도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김용균 편에선 시민들이 VR스튜디오에서 직접 체험을 해보는 실험도 담았다”고 말했다. 

21일 방송되는 MBC 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 스틸컷
21일 방송되는 MBC 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 스틸컷

방송분야의 AI 활용은 고인의 음성과 모습을 재현하는 수준에서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시 한 번> 제작에 참여한 IT 스타트업 ‘수퍼톤’은 현재 감정 연기까지 가능한 기술을 개발 중이다. 성우가 연기한 음성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연기톤을 추출한 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씌우는 방식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한국어 더빙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인공지능 콘텐츠 혁명>의 저자인 고찬수 KBS PD는 “지금은 AI, VR 등 4차 산업 기술의 비용이 높고 잘 알려지지 않아 이를 활용한 기획이 어렵지만, 전례가 생기고 방송사의 관심이 늘면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도 많아질 것”이라며 “제작 경험이 누적된 수년 뒤에는 이 같은 기술이 방송에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은 양면이 존재한다. '혐오 논란' 끝에 20일 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AI 챗봇 '이루다' 사례로 당장 AI 윤리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최병호 고려대 Human-inspired AI 연구소 교수는 “현재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 윤리 기준을 가진 기업은 거의 없다. 국가나 사회가 제도를 수립해야 되는데 관련 피해 사건이 터져야만 변화가 생긴다"며 "기술이 제도보다 앞서나가면서 악용 소지가 발생하는 것으로, 인공지능 윤리기준은 현재 선언적 수준에 그쳐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방송 영역에서 활용된 AI 기술은 유족의 동의를 받은 범위에서 이뤄져 알고리즘 설계나 중립성 논란이 불거질 여지는 적지만, 고인의 인격권과 창작물 권리 문제는 쟁점으로 지목된다. 상업성에 치우쳐 우후죽순 고인을 소환하다보면 고인의 인격권과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AI를 활용한 한 프로그램 제작에 협조한 음반사 관계자는 "노래에는 가수의 혼이 서린 것이라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되는데,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제작에 앞서 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를 거쳤다는 김종우 PD는 "제작 과정에서 가족의 동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지금은 볼 수 없는 가족을 보면서 당사자가 발견하는 심리 치유 효과가 있다"며 "해외에서는 이런 효과를 '클로저'라고 부르는데 방송사의 의도를 내세우기 보다는 가족의 기억 단편을 (제한적으로) 재창조하는 방식으로 연출했다"라고 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인간성’을 최고 가치로 삼은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발표했지만, 각 영역별로 적용할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문정욱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지능정보사회정책센터장은 “망자 입장에서는 소환되는 것을 원치 않을 수 있는데, 본인에 대한 의사 확인 없이 소환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인간성을 위한 AI를 위해 ‘잊힐 권리’를 어떻게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지 등의 사회적 합의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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