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노동자 3명 중 1명, 언어 폭력·모욕 등 직장내 폭력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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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 주52시간제 이후에도 응답자 35% '근무시간 6일~7일'
"현장 특성에 맞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해야"

20일 열린 '방송현장 노동안전실태조사 결과 보고 및 안전한 방송 현장을 위한 방향 모색 토론회’ 생중계 화면 갈무리.
20일 열린 '방송현장 노동안전실태조사 결과 보고 및 안전한 방송 현장을 위한 방향 모색 토론회’ 생중계 화면 갈무리.

[PD저널=안정호 기자]  방송 노동자 3명 중 1명은 방송 제작 현장에서 언어 폭력과 위협 등 직장내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3주년을 맞아 개최한 토론회에서 공개된 방송 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는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방송 노동자들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지난해 9월 8일부터 10월 7일까지 연출‧작가‧촬영 등 방송 노동자 218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30% 가량은 1개월 내 직장내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지난 1개월 동안 업무 수행 중 언어폭력, 원하지 않는 성적 관심, 위협, 모욕적 행동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이 20.2%(44명)로 가장 많았고, ‘모욕적 행동’(17.4%), 원하지 않는 성적 관심(7.8%), ‘위협’(2.3%)이 뒤를 이었다. 폭력을 행사한 주체로는 대부분 상사를 지목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언어폭력’(22%), ‘성적 관심’(14.4%)을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주52시간 시행된 뒤에도 주당 근무일수가 6일이나 7일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5%에 달했고, 특히 기술·촬영 직군의 비율이 높았다. 지난 1년 간 업무 중 사고로 부상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6.9%가 부상 경험이 있다고 답해, 근로환경조사의 1.3%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고용노동부가 2020년 비영리단체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방송 노동 영역의 확장적 산업 안전 정책 연구' 를 위해 이뤄진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박기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방송현장에서 일상화된 폭력과 인권침해, 이를 재생산하는 위계적 조직문화는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일터의 변화를 억압한다”며 방송현장에서 △현행법상 안전보건 의무 이행과 △안전보건 실태조사를 통한 자율적 안전보건체계 수립 △프로젝트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 변호사는 “방송 노동자들의 계약관계가 일원적인 고용관계로 구성되지 않고 다층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며 “법적 지위 및 권리 의무 관계의 구성 등 법적 규율이 불분명한 측면이 있고, 그러한 점이 노동안전문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장시간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는 드라마의 경우 “사업 기준으로 해당 드라마만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보건관리체제를 구성해야 한다”며 “정기적으로 대규모 방송노동자 안전보건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방송산업 전반의 노사가 함께 만드는 안전보건가이드라인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이상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현장에 들어가면 (제작사 등이) 고용계약을 통해 법·제도적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함에도 노무관리 인원을 따로 뽑진 않는다”며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 때 노동관련 노무관리, 산업안전 담당자를 따로 뽑지 단계까지 미치지 못한다면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주52시간제로 하루 24시간 일하던 것이 14시간 노동으로 줄었다고 하지만 기준이 바뀐 것일 뿐”이라며 “과거 집결지에서 촬영 현장 출발시간부터 집결지 도착시간까지 노동시간으로 체크했던 것을 현재는 촬영현장 노동시간만 산정하는 것으로 마치 노동시간이 짧아졌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폭언·폭력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방송 노동환경 내 권력의 문제로 스태프 개개인이 힘이 없다보니 상급자 말 한마디에 짤릴 수 있다”며 “안전보건도 마찬가지로 모든 권력과 권리는 방송사에게 있는데 책임은 하부 스태프에게 떠 넘기고 방송사 손해만 없으면 노동자 한 두명이 죽거나 다치던 아무 관계가 없다는 식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은 노동 환경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김우석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방송정책과장은 “지난해 말 진행된 지상파 재허가 심사에서 청주방송 이재학 PD 문제, 대전MBC 이지은 아나운서 문제 등이 거론됐다”며 “방송사 내부의 괴롭힘, 성폭력에 대한 문제들이 다른 영역에 비해 적지 않고 관련법의 제정과 사회적 변화로 방송 노동현장 내 안전 문제와 함께 지속적으로 논의된다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훈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 사무관은 “50인 미만 방송업의 경우 특수성을 고려해 자율적 협의를 통해 현장 특성에 맞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이뤄져야 한다”며 “해당 부처도 (방송 노동자들의) 자율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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