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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평가자 입장에서 본 라디오 PD의 자질

취업준비생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열린 '2019 강남구 스타트업 채용 페스티벌'에서 현장면접을 보고 있다.(사진=강남구 제공) ⓒ뉴시스
취업준비생들이 '강남구 스타트업 채용 페스티벌'에서 현장면접을 보고 있는 모습.(사진=강남구 제공) ⓒ뉴시스

[PD저널=박재철 CBS PD] 살다 보면 높고 낮은 허들을 만난다. 거기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복병 같은 허들은 단단한 부동자세다.
 
"어, 왔어?" 목소리는 날카롭고 태도는 거만하다. 으슥한 골목길 모퉁이에서 어둠 밖으로 머리를 스윽 내미는 불량배랄까. "어디, 날 한번 넘어봐!"라고 위압적으로 서 있는데, 때론 '애걔...' 할 정도로 거뜬히 넘겨버릴 대수롭지 않은 부류가 있고, 때론 '어쭈...' 할 정도로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만만찮은 것들도 있다.
 
전진을 방해하는 삶의 이런저런 가로막들, 그중 압도적인 높이로 그 앞에서 숨을 가다듬게 하는 허들은 역시 ‘입시(入試)’와 ‘입사(入社)’다. 시간이 갈수록 한 번에 뛰어넘기가 어렵다. 허들 앞에 섰을 때의 불안함과 그것을 뛰어넘어 허들을 내 뒤에 둘 때의 안도감, 그 둘의 격차가 이보다 큰 경우가 있을까? 마음의 근수를 재는 저울이 있다면 그 둘은 측정 불가다. 하나는 너무 큰 눈금에 가 있고, 다른 하나는 너무 작은 눈금에 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신입사원 채용평가에 참여하면서 허들 앞에선 이들의 심정을 새삼 헤아려보게 된다. 절실한 자기소개서와 분초를 다투며 쓴 논술과 작문, 떨리는 손을 더 떨리는 무릎에 올려놓고 치르는 면접, 그 과정에서 편안한 평가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수험자였던 내 모습이 자연스레 겹친다.

입시든 입사든 어떤 집단에 성원권(成員權)을 얻는 과정일 텐데, 점점 극심해지는 병목현상을 떠올려볼 때 지금의 나라면 그 권리취득이 가능할까 싶어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만, 수험자에서 평가자로 위치가 바뀌면서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된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말과 글에서 적어도 담겼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어찌 보면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우선은 지원 직종에 대한 이해다. 프로듀서에 대한 명료한 자기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기 이해다. 교과서적인 서술 외에 자기식의 스토리텔링이 핵심이다. 이를테면 기자에 빗대서 이야기해보자. 기자는 팩트 파인더(Fact Finder)라고 한다. 사실 사이의 관계들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짚어주는 사람이다. 이해충돌로 왜곡과 은폐가 잦아, 사실관계는 현실에서 좀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촘촘한 취재 그물망을 짜, 의견(Opinion)은 걸러내고 사실(Fact)만을 그물 위에 남겨 전달하는 이가 기자다. 

라디오 부스 ⓒ픽사베이
라디오 부스 ⓒ픽사베이

그렇다면 PD는? PD는 퍼스팩티브 파인더(Perspective Finder)라 칭해보면 어떨까. 관점을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새로운 이야기는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다. 사람과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PD의 능력은 다름 아닌 차이를 만드는 능력이다.

기존의 것, 같은 것에 대한 병적인 거부감이 어느 정도 습관화했으면 한다. 수많은 자기소개서, 작문, 논술을 읽으면서 평가자로서 발견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관점이다. 글을 안정적으로 쓰는 것은 사실 기본에 가깝다. 책이나 칼럼, 드라마나 영화, 공연을 볼 때도 새로운 시도와 관점으로 접근한 사례를 많이 기억해 뒀으면 한다. 그걸 통해 내 관점을 확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PD의 본업은 기획이다. 기획은 새로운 관점을 구축해서 세상에 신선한 이야기를 내보내는 일이다. 자신이 그런 일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 그 일이 바로 방송사의 수험과정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두 번째로는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에 대한 이해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잘난 사람보다는 필요한 사람을 뽑고자 한다. 결핍돼 확충하고 싶은 부분을 이 사람이라면 가능하겠다 싶은 사람이 결국에는 뽑힌다.

예컨대, 라디오의 경우는 현재 미디어로서 활로 모색이 시급하다. 청취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고 젊은이들은 라디오를 멀리한다. 라디오를 대체할 만한 매체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위 레거시 미디어로서 라디오는 한마디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라디오가 기존의 역할과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뉴미디어와 어떻게 접목 가능한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거칠게나마 여기에 대한 고민이 쌓여야 한다.

또한, 방송사에는 음악 프로그램을 하겠다는 PD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은 희귀하다. 그렇다면 내가 시사나 교양에 어떤 강점이 있고, 그걸 갖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채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한마디로 자리를 보고 다리는 뻗는 전략일 텐데, 이게 달리 말해 자기 객관화다. 
 
자기소개서를 보면 주어가 ‘나는’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는 어떤 일들을 경험했고’, ‘나는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다’ 등등. 그런데 그것이 정작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에 필요한 것들인지는 미지수다.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꼼꼼히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어의 자리에 ‘내가’ 아닌 ‘회사’를 놓고 고민한 흔적들이 말과 글에 보다 짙게 배어 있었으면 한다.

허들을 넘는 데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없다. 결국은 탄탄한 기본 체력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시도해보는 의지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다종다기한 허들 앞에 설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힘껏 도움닫기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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