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랑방 미장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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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 내게로 온 날 48]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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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가까운 친구가 “정말 좋은 미장원을 찾았다”며 소개해 준 ‘장 헤어’를 단골 미용실 삼아 다닌 지 햇수로 3년쯤 지났다. 친구가 사뭇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목소리에 생기를 가득 품고 기밀이라도 공개하는 양 이야기를 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생색낼 만큼 중요한 정보였다.

‘좋은 미장원’의 기준은 가격이었고, ‘찾았다’는 것은 공간적 개념이다. 아줌마 입장에서 파마가 1만 5천원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혹할만하다. 염색도 1만 5천 원이다. 심지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면 5천 원을 할인해준단다. 파마와 염색을 한꺼번에 하면 2만 5천 원인 셈이다.

이렇게 싼 이유는 우선 미장원이 골목 외진 곳에 있어서 집값이 싸고 직원을 두지 않고 원장 혼자서 운영하기 때문에 별도의 인건비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오후 5시까지만 영업을 하기 때문에 세시 이전에 방문해야 하며 원장님 혼자서 작업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 수 있다고 거듭 조언해주었다. 

집안 일로 휴가를 내게 된 날 업무를 처리하고, 남은 시간에 미장원 예약을 했다. 큰길 뒤편에 있는 골목 안 미장원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훤칠한 키에 서구적인 미모의 원장님이 “어서 오세요~” 하이 소프라노로 맞이해주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 정갈하게 갖추고 관리하는 공간이었다. '00 소개로 왔다'고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원장님이 빠른 속도로 머리를 말면서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혼자서 일하기로 작심한 터라 가겟세가 싼 곳을 찾아 이곳까지 왔고, 구순 시어머니가 주간보호 노인센터에 계시다가 저녁 무렵 집에 오기 때문에 5시까지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맞이해야 한다는 것. 월세가 싸고 혼자 일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도 했다. 어차피 큰돈을 벌고 싶은 욕심은 없으며 시어머니가 “나이 먹으면 봉사하고 살아라” 당부하신 터에 그런 심정으로 미장원을 열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굣길 어린 소녀가 미용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물 좀 마실게요.”라고 한다. 원장님은 예의 밝은 목소리로 “응~ 천천히 맛있게 먹어.”라고 맞이해주었다. 원장님은 활짝 웃으며 “어린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서야 한다잖아요? 여긴 작은 동네라서요, 애들이 오다가다 목도 마르고 화장실도 가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언제든지 아이들이 와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쓰라고 그래요. 전에 원장님은 컵으로 먹고 씻고 가라고 했대요. 그러면 애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종이컵 가져다 놨어요.” 나는 “그렇군요. 그러기도 하겠네요.” 수긍하며 또 고개를 끄덕인다.

평일 오후에 아이를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아이가 골목으로 뛰어나가고 그 아이가 머문 자리에 생기가 감돈다. 그래 숨바꼭질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고 말뚝박기도 하다가 목마르면 물 마시러 오는 사랑방 같은 미장원……, 예상치 못한 미장원 풍경이 참 좋다고 생각되어 미소를 짓는다.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 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동요 <옹달샘 > 가사 일부)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즈음, 둘째 이모와 셋째 이모는 남원 정화 극장 앞 큰길에서 미용실을 했다. 연탄불에 고데기를 덥혀서 머리를 말던 기억이 난다. 가끔 신부 화장도 해주었는데, 두어 시간 미용실에 딸린 방에서 단장을 마친 신부가 하얀 면사포를 쓰고 사뿐히 걸어 나 올 때는 정말 눈부시게 예뻤다. 둘째 이모는 손재주가 유난히 좋아서 오징어 같은 걸로 봉황을 유려하게 오려 내거나 곶감을 말아서 장식을 하는 걸 보았다. 엄청 맛있게 보였으나 내 차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예식에 쓰이는 폐백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매일 낮 12시에 소방서에서 큰 소리로 경보음을 울렸는데 이 소리가 들리면 어른들은 오포午砲 울렸다며 점심상을 차렸다. 라디오에서는 남진의 <님과 함께>가 흘러나왔고 나는 읍내 <무진 라사>에서 엄마가 맞춰주신 나팔바지를 입고 그 노래를 남진 흉내 내며 불렀다. 이모와 손님들은 깔깔거리며 잘한다고 손뼉을 쳤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따라 사는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남진 노래 <님과 함께> 가사 일부 

당시 빌딩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기에 가사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흥겨운 리듬과 유치원생의 귀여운 춤은 어른들의 즐거움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그들도 어린아이에게서 생기와 생동감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있는 미장원 풍경은 새롭다. 

‘장 헤어’ 첫인상은 파마 값이 저렴한 것은 물론, 다른 이유로 맘에 들었다. 남자도 같은 가격이라고 하여 남편에게 권했더니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인다. 중년 이후 머리숱이 줄어드는 아픔을 겪는 남자들에게 파마는 좋은 대안이다. 젊은이들도 파마를 하는 게 유행이어서 둘째 아들에게 권했더니 아들도 관심을 보이기에 아들과 남편에게 파마를 시켰다. 두 사람이 함께 파마를 하고도 다른 미장원의 파마 값 보다 싸다. 파마 결과에도 만족했다. 

선배언니에게 정보를 전했더니 “정말 싸다”며 형부가 파마를 하러 다녀가시고 남동생도 단골이 되었다. 어느 날은 매형과 처남이 미장원에서 만나 가족 상봉이 이뤄지기도 했단다. 선배 언니는 요즘 남편은 물론 친정어머니까지 모시고 와서 머리를 하고 간다.

원장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또 전해주었다. 어느 날 초로의 멋진 신사분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동안 이용원만 다니다가 여자 친구가 이곳을 꼭 가보라고 해서 왔다”며 이발을 했단다. ‘여자 친구’가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사연인즉, 내가 손 위 시누이에게도 ‘이러한 괜찮은 미용실이 있다’고 소개를 했고 시누이는 아들과 몇 번 미용실을 이용했단다. 그리고 아주버님에게 ‘이발소만 가지 말고 미용실도 이용해 보시라’고 권했는데, 아주버님이 아내가 소개했다는 말 대신 ‘여자 친구’라고 호칭하여 잘 넘어갈 뻔하다가 처남을 만나게 되어 가족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한바탕 웃음이 오가고 그날 비용은 매형이 내고 갔다는 후일담도 들려주었다.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다시는 못 만나나 생각했죠
어쩐일일까 궁금했는데
다시 만나 보아 반가워요
(장미희 노래 <안녕하세요> 가사 일부)

장 헤어는 이발비도 다른 데 보다 몇 천 원 저렴한 데다, 가만히 보니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는 5천 원도 받고, 어느 날은 거저 손질해주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아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며느리한테 용돈 받아 쓰는데 얼마나 아쉽겠어요. 이발비라도 좀 보태드려야지요.” 장 원장의 설명이 군더더기 없이 경쾌하다. 그러면서 꼭 뒤에 “시어머니가 그러라고 하셨어요”라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주중 하루는 시간을 비워서 미용 봉사를 다닌다고도 했다. “대신 하루 종일 커트를 할 수는 없으니 인원수를 정해서 한다”라고 묻지 않는 말까지 덧붙인다. 지나치게 솔직하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소통의 방식도 다양하지만 진정성은 ‘갑’이다. 그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미용실을 찾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미장원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근처 병원에서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아버지와 세 딸, 아버지는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돌아가셨다고 한다. 90대의 노모를 모시고 온 아들, 자매, 회사 동료들…….

저마다 사연은 다양하지만 그래도 배울 점은 있었다. 가령 효성심이나 우애, 우정 같은 인간의 따뜻한 감성이 함께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 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남의 험담인데, 이 곳에는 그런 나쁜 정서는 없다. 명랑하고 좋은 기운이다. 

요즘은 코로나 19로 철저하게 인원을 제한해서 운영하고 있다. 예전처럼 아이들은 학원 가다가 혹은 골목에서 놀다가 물먹으러 오고, 야쿠르트 아줌마가 화장실을 자유롭게 다녀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마음으로 열린 공간임에 틀림없다. 얼른 바이러스의 재액이 사라져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기를 기대하거니와 무엇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 마시러 미장원을 찾는 아이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보기를 기대하고 있다. 새 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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