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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시작한 프로그램, 갈수록 외면한 시청자들
낮은 시청률보다 날카로운 평가가 더 상처
간절한 마음과 고된 노동 담긴 콘텐츠, 함부로 평가 못하게 돼

ⓒ픽사베이
ⓒ픽사베이

[PD저널=허항 MBC PD] 나는 MBC 예능 최저시청률 보유자 중 한 명이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마음과 달리 내 프로그램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왜 이 재미있는 걸 아무도 안 볼까’ 자문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했던 기억이다. 

그 당시 느꼈던 것은, 시청률이란 나의 노력만큼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체험하며 더 아프게 느낀 진리(?)였다. 물론 ‘조금 더 노력했다면...’이라는 미련이 남긴 하지만, 시청률은 함수처럼 정확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낮은 시청률보다 더 괴로운 것은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하는 주변의 날카로운 목소리들이었다. 프로그램이 잘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백 명이 백 가지의 분석을 내놓았다. 이 사람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방황하다가 또 헛발질을 하고, 다시 시청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아무튼 그런 실패를 계기로 어떤 콘텐츠라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리 남보기에 부족해보이는 콘텐츠라도, 그 제작과정에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과 고된 노동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했던 진리를 이런 극적인 경험을 통해서야 얻었다니, 경험은 바보의 학교라는 말이 맞긴 맞나보다. 

요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느낌이다. 각 방송사는 물론이고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도 계속 새로운 영화·드라마·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콘텐츠들의 ‘결과’ 역시 천차만별이다. 한 시즌을 풍미할 만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 그리고 콘텐츠마다 시청률은 물론 시청자들의 댓글이나 평론가들의 평론글 등의 형태로 적나라한 평가가 내려진다.

하지만 나는 그 평가 대열에 감히 합류하지 못하겠다. 그 제작 과정의 고단함을 온 몸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 너무 차가운 혹평을 써내려간 평론가들에 대해서는 괜히 화가 치밀기도 한다. 프로그램 만들기가, 그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하는 것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을 거라 일갈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가감 없는 평가를 받는 것은 콘텐츠 제작자들의 숙명이다. 늘 좋은 말만 들을 수도 없고, 늘 높은 시청률이 담보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영혼까지 그러모아 최대한 부끄럽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려 아등바등하는 것 역시 이들의 숙명이다. 막연한 기대만으로 무거운 돌을 반복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과한 센티멘털일까. 오늘도, 결과는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돌을 끌어올리고 있는 숙명을 가진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나 자신을 포함해 말이다. 

갑자기 안 꺼내도 될 굴욕담을 꺼내게 한 주범은, 문득 느낀 3월의 따사로운 햇살이다.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첫 방송을 냈던 것이 딱 작년 이맘 때 쯤이다. 그 때의 날씨, 냄새, 바람소리가 다시 돌아와 그때 그 마음을 불러일으켜 준다. 

다시는 기억하기도 싫을 줄 알았는데,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은 알지 못한 채 자신만만하게 기획안을 쓰고 첫 촬영을 하고 한 땀 한 땀 편집을 하던 시간들이 생각보다 아프지 않게 떠오른다. 제발 시청률이 얼마 이하로 떨어지지만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나일론 신자의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나기도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참 뻔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만한 묘약은 없나보다. 어느 새 너무 부끄럽고 아팠던 기억은 무뎌지고, 상처가 아문 자리에는 조금 성숙해진 새살이 만져진다. 또다시 뭔가 시작해봐도 될 것 같은 용기가 빼꼼히 생기는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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