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껴안고 잘 살아갈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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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껴안고 잘 살아갈 수 있는 권리
[비필독도서 42]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1.04.0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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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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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오학준 SBS PD] 어느 날 찾아온 고통에 천직이라 생각했던 일을 잠시 내려놔야 했을 때, 나는 나를 책망하기 바빴다. 심신이 지쳐서 예민해진 탓이니, 좀 쉬면 나아질 거란 위로는 따뜻했지만 한편으론 참담했다. 이 비일비재한 일을 견뎌내지 못한 무른 성격이 문제의 원인이 된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긴 유랑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나를 ‘치료’의 과정 속에 두고 본다. 불편한 시선들의 무게는 조금씩 망가진 우리들로 하여금 ‘멀쩡함’을 연기하게 만든다.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펼쳐 들었다가 끝내 내려놓지 못하고 다 읽게 되었던 건, 그런 연기에 이제 어느 정도 신물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문제적 상태인가?

30대 중반, 열정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던 저자는 갑자기 찾아온 이름 모를 고통 앞에서 무너졌다. 질병을 개인화하고 아픔을 무능력이나 비도덕의 증표로 삼는 데 익숙한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잔인함을 온 몸으로 겪어야 했던 경험은 그가 제대로 잘 아플 권리로서 ‘질병권’을 이야기하는 계기가 됐다.

건강이 최고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덕담으로 주고받는 사이, 손쉽게 치료받을 수 없는 질병과 함께 아픈 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지워진다. 건강하기 위해 뭘 먹으면 좋고, 뭘 하면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알려주며 뿌듯해하는 사이,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은 게으르단 낙인이 찍힌다. 삶의 상당 기간을 차지하는 ‘아픈 시간’은 없는 시간처럼 여겨진다.

질병권은 우리가 어딘가 조금씩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도 시민으로서 온전한 자격을 가질 수 있음을 역설하는 개념이자, 나 스스로 아픔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게끔 만드는 개념이다. 삶은 질병을 얻는 순간 끝나는 게 아니기에 이를 껴안고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조한진희 저자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조한진희 저자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질병이 단순한 함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TV 프로그램에서 말하듯이 특정한 음식이나 습관만으로 모두가 건강해 지진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수단이 한정되어 있다. 자본과 시간은 평등하지 않고,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도 많다. 오히려 건강은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속하는지를 드러내는 지표에 가깝다. 

이를 도외시하고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태도는 냉소적이다. 자기 자신의 건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화는 질병에 대한 공포를 배가시킨다. 자신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이기도 하며, 노동 조건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이 공포는 ‘정상적’ 신체에 대한 집착을 만든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도전하기보다는, 그 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비명을 지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대체 그 달성해야 하는 정상적인 건강 상태라는 건 뭘까? 20대의 혈기 왕성한 상태를 말하는 걸까? 누구나 그 표준적인 상태에 다다를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어딘가 조금씩 아프지만, 끊임없이 괜찮은 것처럼 표백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수납 창구 앞에서 F코드를 남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듯이.

질병은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동시에 정치적 영역에 속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질병인지 여부는 과학적으로 규명되지만, 아픈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포섭되는 방식은 정치적이다. 인간의 몸은 질병과의 전쟁터인 동시에 정치의 최전선이다. 저자도 그러했듯, 고통은 자신의 몸에 전선이 가로놓여 있음을 깨닫는 중대한 사건이다.

고통을 안겨주었던 시스템은 달라진 것이 없고, 사람들은 지뢰밭을 피해가는 영리한 스텝에만 환호를 보낸다. 밤샘의 대가로 얻은 고통은 핑계가 되고, 쓰러진 사람들은 나약하다는 낙인이 찍혔다. 사람을 아프게 하면서 만들어 낸 것들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술’이란 이름은 많은 의문들을 침묵시킨다.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위해 만들고 있는 것일까. 내던져진 사람들의 잔해들 속에서 소리 없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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