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더', 평화로운 말년에 찾아온 불청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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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걸맞은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

영화 '더 파더' 스틸컷.
영화 '더 파더'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이상하다. 여기 어디 두었는데 어디 갔을까. 손에 쥔 채 무언가를 찾아 본 경험, 우리 모두 해 보지 않았는가. 그리곤 한숨을 쉰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렇게 되는구나. 그렇다면 다행이다. 안소니의 경우처럼 기묘하고 불안한 정도의 경험은 아니니 말이다.

안소니. 나름 평온한 삶을 살아 왔다. 자주 찾아오는 딸 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고 혼자 움직이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 런던에 괜찮은 집이 있고 신경을 긁는 일도 없이 그는 노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딸이 안소니를 보며 약간 미안한 듯 불안한 듯 이야기를 꺼낸다. 남자친구와 파리로 가서 살게 되었다고. 새 간병인을 구했으니 제발 이번에는 구박하지 말고 까다롭게 굴지 말라고.    

안소니는 슬쩍 심술이 난다. 내가 언제 누굴 괴롭혔다고. 간병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제대로 일을 못하기 때문인데 말이다. 이번에 새로 온 간병인은 마음에 든다. 로라라는 이름의 어린 아가씨인데 밝고 맑은 분위기가 좋다. 막내딸과 닮았다. 기분이 좋아진 안소니는 로라와 딸 앞에서 탭댄스도 추어보고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니, 잠깐. 손목시계가 어디로 갔지? 앤에게 말하니 조금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디선가 찾아다 준다. 왜 시계가 거기 있었던 걸까. 그건 그렇고 여기 걸려 있던 그림은 또 어디 갔을까. 안소니의 마음이 조금은 혼란해 진다. 

그 날, 안소니는 너무나 놀라고 만다. 방 문을 열고 거실로 가니 낯선 남자가 앉아 있다. 묘한 표정으로 안소니를 쳐다보며 이 집은 안소니의 집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며 자신은 안소니의 딸 앤의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럴 리가. 앤은 남자친구와 파리로 갔는데. 그리고 여기는 나의 집인데. 

낯선 얼굴의 여자가 집 안에 있다. 여자는 자신이 앤이라고 말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소니를 살핀다. 이럴 수가 없다. 내 딸 앤의 얼굴이 아닌데 자신이 앤이라고 말하는 이 여자. 게다가 이 남자는 또 누구인가. 또 다른 남자가 불쑥 찾아와서는 앤과 사귀는 남자라고 말한다. 안소니의 생각과 마음은 푹 꺼져 버린다. 혼란 속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절망 속으로 침잠해 간다. 

영화 '더 파더' 스틸컷.
영화 '더 파더' 스틸컷.

영화 <아이리스>나 <스틸 앨리스>를 보면서 무너지는 마음을 가졌다. 빛나는 지성을 가진 주인공들이었기에 그 파장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남편과 함께 최고의 지성인으로 꼽히던 철학교수 아이리스 머독. 노년기에 접어든 아이리스는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고 남편 존의 보살핌을 받지만 두 사람 다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 아이리스는 특수시설로 보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떠나가는 아이리스의 혼란과 슬픔 가득한 얼굴과 아내를 떠나보내는 존의 절망과 비애 가득한 얼굴이 오래도록 마음을 아프게 했던 영화 <아이리스>이다. 

<스틸 앨리스> 또한 그랬다. 앨리스는 완벽에 가깝게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꾸려온 사람이다. 언어학 교수로 세 아이의 엄마로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하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워 온 사람이다. 그런 앨리스가 어느 날 강의를 하던 도중 단어 하나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 앨리스는, 말했다시피 언어학자이다. 사소한 일이었겠지만 그건 사소하지 않았다. 앨리스의 내면을 갉아 먹는 질병의 발현의 시작이었다. 이후 앨리스가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은 보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참,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영화 <더 파더>는 이런 슬픔을 다른 시점으로 보게 한다. 안소니의 시점에서 안소니의 마음으로 영화는 전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는 일종의 스릴러 같기도 하고 추리물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안소니의 시선과 마음에 익숙해질 무렵 관객들은 안소니를 바라보며 큰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혼란스러움과 불편함과 불안함을 누가 어떻게 위로하고 납득시킬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안소니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가 왜 2021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응축된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과하지 않게, 누구나 공감이 되도록 터뜨리는 데 그만 그의 마음을 부여잡고 함께 울게 되는 것이다. 

영화 <더 파더>는 디멘시아를 앓고 있는 노인 안소니의 이야기이다. 연극이 원작인 이 작품을 영화로 옮기면서 시각적인 장치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연극을 영화로 만들 때는 (이전의 다수 작품에서 보여지듯) 연극적인 냄새를 완전히 없애기 어렵다. 영화 <더 파더>는 그 부분에도 신경을 쓴 듯 보인다. 

아파트라는 공간, 방과 거실, 주방 등으로 나뉜 공간에 소품과 색을 달리 이용하면서 안소니의 내면적 혼란을 표현하고 안소니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살아 온 삶이 어땠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했다. 그리고 영화의 전반부, 안소니의 상황에 따라, 안소니와 함께 있는상대에 따라 공간의 배치를 달리 하면서 안소니의 시각과 상태를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 나갈 수 있었으며 한정된 공간에 쌓이는 서사가 응축되어 한 번에 폭발할 수 있게 했다. 훌륭한 연기, 성공한 각색, 잘 만든 영화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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