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플', 망각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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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플', 망각의 그림자
원인 모를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알리스
지워진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 승인 2021.05.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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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플’
영화 ‘애플’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기억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나타나는 노후의 징후나 건망증이 아니다. 갑자기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다. 전염성을 띤 질병으로 기억상실증이 생긴 것이다.  

남자는 그 날 그 시간 아내의 묘를 찾아 가려 했다. 꽃을 사들고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렇게 그는 기억을 잃어 버렸다. 그의 이름은 알리스. 병원을 찾은 그에게 담당자는 이렇게 기억을 잃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그가 누구인지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아무 것도 없으니 지정된 곳에서 생활해야 할 거라고, 그리고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라고 말이다. 

남자는 순순히 자신에게 지정된 곳, 지정된 침대에 눕는다. 곁에 있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남자는 의사의 회진 때 문득 머리가 아프다고 말한다. 의사는 기억상실증에 감염된 사람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곧 사라질 거라 이야기한다. 

남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으로 들어간다. 간소한 가구와 한 사람이 기거할 정도의 공간에는 녹음기가 놓여있다. 남자는 매일 녹음기에 꽂힌 테이프를 재생하며 의료진의 지시사항을 듣고는 하나씩 자신의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만들어 간다. 

사실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지시 혹은 권유 사항은 별 게 없다. 자전거 타기,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등  이미 그 (또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다른 사람들)의 지난 시간 속에 분명히 존재했을법한 경험들을 다시 해보면서 경험을 채워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남자는 그 목소리에 따라 어린 아이의 자전거를 빌려 타기도 하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그렇게 매일을 새로운 시간으로 쌓아가면서 그는, 안나를 만난다. 

영화를 보고 나와 극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걸 보니 그녀 또한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듯하다. 배경이 나오게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 두 사람은 교대로 사진을 찍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

하지만 안나가 그에게 제안하는 무언가가 자신에게도 주어진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된 알리스는 더 이상 안나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그 ‘새로운 시간’에도 새로운 것이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어느 날 그 남자 알리스는 그 곳을 떠난다. 꽃을 사들고 아내의 묘를 찾았다가 돌아간 곳은 바로 그의 집. 알리스는 기억을 잃은 적이 없었구나! 의구심 한 조각이 조금 더 단단한 실체가 되어 떠오른다. 하긴 영화는 이미 ‘사과’와 ‘이웃의 개’를 통해 넌지시 알려준 바 있다.
 

영화 '애플'
영화 '애플'

기억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특정하지 않는다. 2021년의 지금일수도 있고 과거의 어느 시공간일수도 있고 근미래의 시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건물이나 의상 기타 오브제들로 어느 시기, 어느 장소를 특정할 수 없게끔 영화는 경계를 없앴다. 이런 콘셉트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듯하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영화의 질감과 분위기는 딱 그런 느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이유 없이 인류를 덮친 이상한 질병. 그 질병에 전염된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지지만, 곧 새로운 질서와 권력이 생겨나며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인간의 기억은 단순히 지난 시간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기억은 누군가의 정체성을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기억은 축적된 시간과 경험의 총체이며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은 뇌와 몸속에 간직되어 누군가를 규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기억상실이라는 질병에 감염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리셋’하는 순간을 맞는다. 비록 자신의 의지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리셋’은 이전의 정체성이 부인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 질병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까뮈의 <페스트>에서 페스트라는 엄청난 질병이 지속되는 동안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고자 했던 인물을 떠올려 보면 알리스의 행동이 의아하면서도 아릿하게 다가온다. 그는 이 질병의 시기에 무엇을 바꾸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가 베문 사과 한 입과 그의 집에 쌓여 있던 사과들 그리고 꽃을 사들고 아내의 묘를 찾던 도입부와 결말이 말해 주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크리스토프 니코우 감독은 <페스트>와 <눈먼 자들의 도시>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 영화 <애플>과 더불어 챙겨보면 더 깊은 층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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