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내고향’ 30주년, 코끝 찡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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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내고향’ 30주년, 코끝 찡한 뒷이야기
첫방송 주인공 찾아나선 30주년 특집 방송
문 닫은 강당에 모인 30년 전 홍천 광원분교 학생들의 사연
  • 이은미 KBS PD
  • 승인 2021.05.31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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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30주년을 맞은 KBS '6시 내고향' 타이틀 화면.
지난 20일 30주년을 맞은 KBS '6시 내고향' 타이틀 화면.

[PD저널=이은미 KBS PD]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한 노인의 자화상 옆에 30대 젊은이의 자화상이 걸려있다. 바로 30대와 70대의 램브란트다. 그림이 걸린 벽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 두 자화상을 한 눈에 담아 보면, 30년 시간의 간극이 주는 쓸쓸함, 허무함, 여유로움 같은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6시 내고향>을 연출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2주전에 경험했다. 지난 20일은 KBS <아침마당>과 <6시 내고향>이 태어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두 팀 사무실은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웃하고 있는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아침에 태어난 <아침마당>이 형이고 저녁에 태어난 <6시 내고향>은 동생이라고 한다. 그런 쌍둥이 프로그램이 어느덧 30대 청년이 되었다. 

특히 <6시 내고향>은 지금까지 거쳐 간 리포터만 천여 명이 넘고, 지구 202바퀴를 돌고도 남을 거리를 다녔다. 요즘도 주5일 지역국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총14개의 VCR 코너를 제작하는데, SNS 단체대화방에는 70여명 제작진이 있다. 필자는 지난 2월에 이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가까이서 본 <6시 내고향>은 그 규모가 커서 작은 중소기업처럼 느껴졌다. 

매일 찾아오는 생방송에 모든 걸 쏟아 붓고, 방송쟁이들이 말하는 ‘털었다!’ 감흥이 가시기도 전에 내일 촬영과 아이템을 고민해야 한다. ‘지치지도 않나’ 싶지만, 창작자로서 작품을 만들다기보다는 하루살이 인생 같아 서글플 때도 있다. 

 ‘30주년 특집’ 제작은 그간 많은 이들이 쏟아 부은 노고와 시간의 기록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특집 방송 중에서도 30년 전 <6시 내고향>을 론칭하고 첫 촬영을 했던 PD가 다시 그 촬영한 마을을 찾아가는 컨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 코너는 우연히 발견된 종이 큐시트 덕분이었다. 한참 전에 퇴직한 PD선배가 재직 기간 동안의 방송 큐시트를 모아 일일이 제본해서 개인 보관 하다가 제작진에게 기증했다. 그 기증품을 통해 <6시 내고향> 첫회부터 초창기 방송 내용을 알 수 있었다.

30년 전 만해도 오디오 비디오를 따로 녹화하는 시스템이라, KBS 아카이브 중에는 소리 없이 영상만 보관되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고, 아날로그 테이프에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확신할 수 없는 데이터들이 있었는데, 그 큐시트 덕분에 초창기 <6시 내고향>의 방송일과 장소, 출연한 주인공, VCR별 담당 PD를 알 수 있었다. 

영상 자료를 파악한 이후로는 첫 출연자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30년 전 전교생이 31명이던 시골 학교 어린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도 그 마을에 살고 있을까.    

몇 년 전 퇴직한 함형진 선배가 30년 전 그 코너를 연출했는데, 그의 기억을 따라가기로 했다. 33세 신입PD가 첫 촬영을 갔던 홍천의 광원분교. 마을의 60대 주민은 30년 전 KBS에서 촬영을 왔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제작진이 준비해간 방송 영상을 보고, 개울에서 노는 아이가 누구인지 교실에서 손들고 발표하는 아이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냈다.

주민의 도움으로 수소문해서 찾은 당시 주인공들. 성인이 된 후 도시로 흩어져 살던 꼬마 주인공들이 방송사에서 당시 주인공들을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고향을 다시 찾았다. 당시 1학년이었던 꼬마는 38세 학부모가 됐고, 당시 유일한 구멍가게는 주택으로 개조됐다. 영상 속에서 가장 발표도 많이 하고 방송 분량이 많았던 소년은 안타깝게도 마을 어귀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19세에 세상을 떠났다.

30년 전 KBS '6시 내고향' 첫방송 주인공 홍천광원분교 학생들을 찾아간 지난 19일 방송 화면.
30년 전 KBS '6시 내고향' 첫방송 주인공 홍천광원분교 학생들을 찾아간 지난 19일 방송 화면.

흩어졌던 마을 사람들이 30년 전 <6시 내고향> 영상을 보러 폐교한 학교 강당에 모였다. 빔 프로젝트로 개울가에서 물고기 잡는 모습, 교실에서 공부하고 발표하는 모습,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체조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배민수 PD가 가편한 영상을 여섯번도 넘게 봤는데 생방송 연출하는 순간까지도 마음이 울컥했다. 생방송 중에 시간 체크 때문에 부조 뒤로 고개를 돌리니 작가들도 운다. 순간 부조 공기가 숙연해진 것을 알아챘다. 모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나보다. 

방송 이후에도 이 코너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램브란트는 30년 세월동안 여러 자화상을 그렸지만, PD는 타인들의 기록을 남긴다. 유쾌한 톤의 짧은 영상인데도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고 하니 함형진 선배가 ’너도 이제 나이 들었구나 허허‘하며 웃는다. 한편으로 선배가 부럽다. 퇴직한 후에도 론칭한 프로그램이 30년 국민 프로그램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면 PD로서 영광이 아닌가. 

비록 필자는 그 역사 중 ‘점’에 불과한 시간을 채웠지만, <6시 내고향>의 30년을 채워온 그 동안의 출연자, 제작진, 스태프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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