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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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래길 걷기
[뽕짝이 내게로 온 날 50]
  •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 승인 2021.07.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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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오전 경남 남해군 설천면 인근 벚꽃길에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뉴시스
지난 3월 25일 오전 경남 남해군 설천면 인근 벚꽃길에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뉴시스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남편이 남해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되어 남해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남해는, 일단 이름이 좋았다. ‘내 고향 남쪽 바다’로 시작되는 가곡 가고파의 배경은 마산이지만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라는 가사는 투명한 쪽빛 바다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편안하다. 

1973년 개통된 남해대교는 70년대 한국 관광의 명소로 집집마다 동양 최대 현수교로 건립된 붉은색 남해대교 앞에서 찍은 인증샷 하나쯤 걸려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디딤돌에 신발을 벗어두고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필경 안방 출입구 문 위에 걸어 두었던 사진 모음이 있다. 바지런한 아버지는 가끔 유리로 덮인 사진을 내려서 수건으로 닦으셨을 테고 그렇지 못한 집도, 바랜 사진과 이런저런 사진이 섞여서 마치 콜라주처럼 작품이 되었던 역사의 기록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부터 엄마 아빠 어릴 때 사진이랑, 군대 간 오빠 증명사진도 끼워져 있고, 아 드디어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엄마 아빠는 그 빨간 현수교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겼으니 반드시 컬러사진이어야 했다. 그래야 붉은색이 돋보일 테니까. 

여기까지 얘기하면 열 명 중 아홉은 “우리 집에도 그런 사진이 있었는데, 아, 거기가 남해대교였어?”라고 반문한다. 맞다. 외갓집 대청마루에 걸려있던 그 사진, 추억의 장소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 남해대교를 다녀와서 기행문을 썼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은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 노량은 남해 북부와 사천 사이의 해협을 말한다.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적을 서남쪽에 있는 관음포까지 몰아가 궤멸시켰다. 이 장군이 순국한 장소는 관음포 부근이다. 노량바다를 건너는 일은 뭉클하다. 2018년 경상남도 남해와 하동군을 잇는 노량대교가 개통되면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거리도 크게 줄었다. 마음의 거리도 줄었다. 그렇게 남해와 다시 이어진 후 남해를 찾는 기회가 많아졌다. 

대학 후배와 남해에 머물던 4월 말, 남해 바래길 4코스 가운데 ‘고사리밭길’을 걸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남해 바래길은 남해군 10개 읍면을 모두 경유하는 231Km의 중장거리 걷기 여행길로 16개 본선 코스와 지선 코스 3개가 있다. 4코스 고사리밭 길은 14.6Km 구간인데 그중 동대만 간이역에서 세심사에 이르는 9km 구간은 3월부터 6월까지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고사리 최대 산지인 창선면 가인리 일대 구릉 지대를 걷는 코스로 이국적인 풍경이 일품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 구간 개인 사유지가 포함된 데다 3월에서 6월 고사리 채취 기간에는 사전 예약제를 통해 화, 목, 토, 일요일에만 해설사와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점심으로 돌미역 비빔밥도 예약 배달해준다고 해서 <남해 바래길> 앱을 찾아 신청했다. 

바래길은 “바래질 하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바다는 섬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아낌없이 선사했다. 해산물을 따는 물질도 여자의 몫이었을 터, 엄마는 물때에 맞춰 갯벌과 갯바위 등에서 해산물을 캐어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남해에서는 그 일을 “바래질하러 간다.”라고 했다. 바래길은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니 어원을 따지면 목젖이 따끔할 만큼 아픈 얘기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한인현 작사/ 이홍렬 작곡 <섬집 아기> 가사)

남해 바래길 4코스 섬 노래길.
남해 바래길 4코스 섬 노래길.

전날 비바람이 심상치 않아서 은근히 취소되기를 기대했으나 악천후에도 탐방은 계속된다고 했다. 10시 지정된 장소에 모이니, 전국에서 찾아온 탐방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19 상황에 따라 모임 인원이 가변적이었는데 우리가 신청했을 때는 선착순 11명까지만 접수 중이었다. 가볍게 나들이 삼아서 남해로 떠나왔던 우리 일행과는 달리, 바래길 일주를 작정하고 나선 듯 의상부터 장비까지 전문가 포스가 뿜어져 나왔다. 기선에 눌려 오늘 일정이 만만치 않겠구나, 슬쩍 걱정이 밀려왔다. 바래길 앱에서는 “고사리밭 길을 안내하는 해설사는 문화관광해설사로 배려를 부탁한다.”라며 빨리 걷지 말아 달라는 당부가 있어서 한편으론 위안이 되었다. 

공기는 청량하고 알싸하다. 큰비가 휘젓고 간 바닷속은 오히려 투명하다. 만조滿潮의 바닷물이 발밑에서 찰랑거린다. 동대만 둑길을 걷는 것은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것처럼 신비로웠다. 왼쪽은 창선, 삼천포 대교가 보이는 바다, 오른편은 갈대밭이 무성하다. 마스크를 쓰고도 향기가 코를 찌른다. 하얀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평생 볼 찔레를 여기에서 다 본 것 같다. <찔레꽃> 노래가 흘러나온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우리에게는 나훈아, 장사익이 부른 찔레꽃보다는 이연실 찔레꽃이 더 자연스럽다.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햐얀 발목 아프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박태준 곡, 이연실 노래 <찔레꽃>가사 일부)

2Km 남짓, 그렇게 바다와 몸을 섞으며 찔레꽃 향기를 따라 걷다가 개인 소유의 집 뜰을 조심히 건너간다. 개인 주거공간을 흔쾌히 내어준 집주인이 참 고맙다. 그로부터 이어지는 오솔길을 지나 다시 바닷길을 조금 걸으니 도로가 나온다. 아뿔싸! 껑충한 오르막이 떡 하니 가로막고 있다. 바닷길은 기분 고양을 위한 전주곡이었던가. 오르막길에서의 생각은 한결같다. “아, 살 빼야지.” “아 진짜, 운동해야지.” “기필코 살 빼고 운동해야지!” 입을 앙다물고 주문처럼 외다가 죽을 것처럼 힘들어질 때, 기적처럼 나무 한 그루 쉼터가 있다. 십 년 만에 처음 운동하는 듯, 한 뼘 그늘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다 보면 저 멀리서 일행이 땡볕 아래 기다리고 있다. 민폐다 싶어서 얼른 발길을 옮긴다. 

산행의 법칙이랄까, 이른 자는 이르고 늦된 자는 언제나 늦다. 발이 빠른 사람은 앞서고 느린 사람은 뒤쫒기에 바쁘다. 체력과 경험의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현상은 뒤처진 자의 감상感想을 방해한다. 나처럼 뒤처진 사람은 늘 감상의 시간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고사리 밭길은 고통의 순간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한다. 식포마을을 지나니 그랬다. 다시금 이어지는 산길, 다시 오르막의 향연이다. 어떤 클라이맥스가 준비되어 있기에 이다지 가파르고 고달플까. 

Z자 모양의 45도 각도로 깎아지른 듯 또 오르막. 저 멀리 앞서간 일행이 화성에 착륙한 듯 낯설다. 안간힘을 써서 한발 한발 내딛다 보니 드디어 평지가 보인다. 이제 고행은 끝인가? 평평한 땅을 딛는 순간 작은 성취감 같은 것이 작게 솟아날 무렵, 발밑을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난해 채취하지 않고 그대로 산에 남겨져 한해를 넘긴 고사리가 검붉게 물든 산, 그 사이로 뭔가 연두색 새순이 깜찍하게 솟아있다. 아! 2021년생 고사리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신선하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여기저기 툭툭 제 마음대로 솟아난 생명의 신비, 일제히 기적을 찬양하는 합창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고사리의 새순은 아이가 주먹 쥔 것처럼 힘차고 당당하다. 높은음자리처럼 꼬부라지고 16분 쉼표처럼 하늘거린다. 아, 고사리밭 전체가 악보였구나. 수많은 생명체가 노래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고사리(Pteridium aquilinum var. latiusculum, Bracken)의 꽃말은 ‘신비, 기적, 사랑스러움, 성실’이라고 한다지. 고사리는 새순이 용수철처럼 구부러져 있으므로 곡사리曲絲里라 부르다가 'ㄱ'이 탈락하여 고사리로 굳어졌다는 말도 있다.

 남해 창선도에서 고사리를 본격적으로 재배한 것은 1980년대, 식포마을 주민이 손이 많이 가는 감나무를 포기하고 고사리를 재배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후 주민들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일제히 고사리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고사리가 창선도 주민의 주요 소득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창선도 고사리는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그렇게 식포 마을 쪽에서 고사리밭 길을 따라 산봉우리를 하나 넘자 새로운 풍광이 펼쳐졌다. 완만하게 솟은 고사리밭 건너 다도해가 펼쳐진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기분이란, 그동안의 힘든 과정을 위로해주는 남해의 선물이지 싶다. 숲속에서 찔레꽃은 물론이거니와, 조팝나무, 진달래, 산딸나무, 인동초 등 평소 보지 못한 귀한 식물을 만났다. 느린 걸음으로 두 시간 반쯤 걷다 보니 밭길 한가운데 밥상이 차려져 있다. 주문한 점심이 도착했다. 돌미역과 각종 나물을 얹은 비빔밥, 깔끔한 밑반찬이 맛있다. 마치 ‘새참’ 먹는 기분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콩나물국이 더욱 반가웠다. 산등성이를 넘어 배달해주는 정성에 또 한 번 감동했다. 지역주민이 만든 도시락 배달은 좋은 아이디어이다. 코로나 19가 지나 탐방객도 많아지고 비빔밥 장사도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다시 길을 나서본다. 내려가는 길은 훨씬 자유롭다. 드넓은 고사리밭과 멀리 다도해를 바라보며 즐기며 걷는다. 제법 푸르름이 갖춰가는 고사리밭은 드넓은 보리밭을 연상시킨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 <보리밭> 가사)

ⓒ픽사베이
ⓒ픽사베이

4코스 고사리밭길 14.6 Km 중 해설사는 출발지에서부터 고사리밭 길을 지나 세심사까지 약 9Km 구간을 안내하고, 가인마을부터 적량마을 구간 5Km는 개별 탐방이 가능하다. 바래길 4코스를 완주하려는 분들은 우리와 헤어져 남은 구간을 걷는다고 한다. 멀리 경기도에서 왔다는 세분의 여성은 제주 올레길을 완주한 이력이 있는데 다녀본 중 ‘고사리밭길’이 젤 멋지다고 찬탄하였다. 얼떨결에 나선 바래길, 나중에 알고 보니 고사리밭 길은 5개 난이도 가운데 무려 4개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구간이었다. 그 길을 초보가 겁도 없이 길을 나섰으나, ‘별유천지(別有天地) 비인간(非人間)이 이곳이구나’ 생각이 각인될 정도로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었다. 

좋은 영화는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좋은 영화는 좋은 사람이랑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많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초대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에 가보지 못한 길은 얼마나 많은가.

2주 후, 서울에 사는 친구 세 명을 초대해서 바래길을 걸었다. 비가 많이 내렸는데 몸이 가볍고 날렵한 친구들은 비옷을 입고도 그 산과 숲과 바다를 훨훨 날아다녔다. 안개가 자욱한 오솔길에서 하얀 비옷을 입은 친구들은 선녀들 같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만난 비빔밥집 사장님이 “지난번에 오신 분이지요?”라고 말을 건네서 깜짝 놀랐다. 얼굴을 기억한다고 하셨다. 다도해는 해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비빔밥을 먹으며 ‘해무에 비벼 먹는 맛’이라고 좋아했다. 고사리는 그새 많이 자랐고 드문드문 수확한 흔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주 후, 좋아하는 선배들을 모시고 고사리밭길을 걸었다. 평소 운동량이 적은 60대의 언니들은 매우 힘들어하셨으나, 서로 독려하고 격려해서 무사히 다녀왔다. 비빔밥집 사장님은 “세 번이나 고사리밭길을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라며 나를 보고 웃으셨다. 고사리는 이제 쇠어가는 듯하다. 밭길이며 산길까지 왕성한 번식력으로 발아래를 특히 조심해야 했다. 이 거칠고 험한 곳까지 고사리를 따러 다니는 주민들을 생각하니 고사리가 비싼 이유를 알겠다. 

6월이면 푸른 고사리가 온 산을 뒤덮어서 흡사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4월 말, 처음 고사리밭에 발을 디뎠을 때는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붉은 밭에서 작은 새순이 오르는 게 신기했고, 5월에는 그 아이들이 생명의 기적을 노래하는 것을 똑똑히 보고 들었다. 

첫날은 비가 온 후 알싸한 추위 속에 몸을 떨었고 두 번째는 빗속에서 두 배로 힘든 보행과 두 배로 멋진 해무를 보았으며 세 번째 산행은 제법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으니, 3행 3색이다. 변화의 느낌을 말로 글로 표현하지 못해 아쉽거니와 다만 그 숲에 들수록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존귀함 거듭 감동하여 걸음걸음이 새로웠다. 

만난 사람들도 다양하다. 친구끼리 여행 삼아 길을 걷는 중년도 있었고, 부부가 함께 전국을 일주하는 커플도 많았다. 코리아 둘레 길을 걷는다는 70대 어르신 세 분은 강릉에서 출발해 해파랑길을 따라 일주일째 남해에 머물면서 바래 길을 탐방하고 있단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전국의 길을 걷고 있는데 ‘방안 퉁수’처럼 집과 사무실에만 들어앉아서 세월을 보내기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던 것은 아마 이번 걷기가 준 최대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지난봄에는 걸으면서 조금 철든 것 같아 뿌듯했다. 좀 더 가볍고 가뿐하게 길을 나서 걷고 싶은 요즈음이다. 반드시 꽃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 또한 스스로 근사하다. 꽃길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그래서 내딛는 발걸음이 꽃 걸음이고 그 길이 꽃길이다. 

길을 걸어요 이제부터 새롭게
길을 걸어요 우리모두 힘차게
있잖아요 거릴 비추는 밝게 빛나는 저 높은 태양
있잖아요 우릴 바라보는 모르는 이들의 정다운 눈길
길을 걸어요 이제부터 새롭게
길을 걸어요 우리모두 힘차게

(권진원 노래 <길을 걸어요>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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